미중 갈등과 코로나19가 촉발한 Exit China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탈피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2050년까지 제조강국, 군사강국,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지리적 이점을 공유하고 전략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에 세계 패권에 위기를 느낀 미국은 트럼프 시대 이후 본격적인 중국견제를 시작하였다.
중국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또한 세계적인 탈중국의 기조를 촉발하고 있다.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막론하고 융통성 없이 적용되었으며 기업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결정으로 인해 중국에 진출한 대다수 외국기업들이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였다. 한국의 전경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투자·거래 기업 700개사 중, 중국의 도시 봉쇄가 기업의 경영환경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답변이 73.8%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은 중국의 생산지연 사태 등을 겪으면서 인도의 아이폰 생산비율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계획을 세웠으며 베트남 등으로 생산지를 다변화하고 있다. 성장 측면에서는 피크차이나(Peak China:중국의 성장이 정점을 도달했다는 의미)의 우려 속에서 인도 등의 지역으로 소비 시장과 생산 시장을 이전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내수 시장보다는 제조업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로 많은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속해 있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사업의 진입과 철수의 의사결정을 내리기보다는 고객사의 의사결정이나 세계경제상황 등 상위 수준의 요소들이 한국기업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다. 이러한 최근 상황전개를 감안할 때,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은 성공적인 탈중국 출구전략(China Exit Strategy)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하 본문에서는 출구전략상 고려해야 할 노무리스크와 인사노무관리전략에 대해 저자의 중국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노무관리 리스크에 영향을 주는 5가지 요인
사업 철수 전략 수립 시 노무관리 리스크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대외 요인은 크게 정부와 노동시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과의 외교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외교적인 마찰이 심한 상황에서 대관 네트워크를 통한 정부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대기업의 사업 철수는 단순한 이해관계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관심과 사회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해당 기업이 지역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경우 경제 활성화가 필요한 현 시점에서는 더욱더 사업 철수의 수용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협조가 없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노동쟁의가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통제할 수 없을 경우, 정부의 협상 개입이 근로자 측면으로 편중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의 활성화 여부는 구조조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기업의 철수는 많은 실업자를 발생시키므로 노동시장의 인력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기업의 협상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대내 요인은 기업, 노동조합, 근로자로 분류할 수 있다. 노무관리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기업은 지불능력을 통한 협상력을 갖춰야 하며, 노동조합은 대표 기구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여 사측과 협의하고 중재할 수 있는 건전한 파트너십을 보유해야 한다. 근로자는 신분적 특수성 때문에 주도적이고 개별적인 협상 능력에 한계를 갖는다. 노동시장이 악화되고 근속이 높아질수록 재취업이 어려워 높은 보상을 요구하거나 세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요약하면, 사업 철수 전략 수립 시, 이상의 다섯가지 요인의 상호 연계성을 고려하여 리스크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노동쟁의의 특징과 위기대응 계획 수립
사업 철수에 대한 쌍방의 소통이 시작되면 근로자들은 곧바로 경제적 보상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기업과의 협상 우위를 이끌어 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압박 정책을 시도한다. 이때 근로자들은 직간접적인 성공체험을 통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노동쟁의는 크게 집단행동 유형, 개별행동 유형, 환기/언론 개입 시도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폭력시위, 파업, 태업과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언론, SNS의 활용 등의 방법을 통해 표출된다. 모든 노동쟁의는 촉발 전에 크고 작은 시그널(Signal)를 보낸다. HR은 사업 철수에 대한 소통 전후 이상징후 감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감지에 실패할 경우 손쓸 시간도 없이 파업이나 태업, 폭력 시위에 휘말려 협상 지위를 상실하고 근로자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다양한 하단의 상황을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위기대응 계획, 이하 ‘CP’로 칭함)을 수립하도록 한다. CP 수립 시 TFT(Task Force Team)을 구성하고, 아래의 8가지 유형에 대한 이행 계획과 프로세스를 정립하여 각 지원 부서별 역할을 구제화 하도록 해야 한다. CP는 실제 상황이 발생하였을 경우, 노무리스크로 인하여 의사결정 체계 및 조직이 붕괴되지 않도록 지지대 역할을 수행해 줄 것이다.
사업 철수를 위한 인력 운영
사업철수를 위한 인력운영에는 일시적 구조조정과 순차적 구조조정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만약 생산 물동의 지속적인 감소와 퇴직율이 비슷하게 유지될 경우 소수의 인원만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최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업 철수는 사전 소통이 수반되기 마련이며, 근로자에게 정보가 공유될 경우 퇴직율은 급감하고 경제적 보상 심리는 증가한다. 생산 종료와 구조조정의 시점이 동일할 경우 일시적 구조조정을 통한 빠른 사업 철수가 이상적이겠으나, 생산을 병행하는 순차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할 경우 생산에 지장이 없도록 철저하고 단계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의 파산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고객과 합의하여 기업의 철수를 확정한다. 이 때 자재 재고 정리, 사후 서비스(AS) 제품 생산, 완제품 재고 확보 등의 이유로 추가 생산이 필요하다. 기업은 인력운영 전략을 수립하여 향후 구조조정의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생산을 마무리하기 위해 적정인력을 지속적으로 산정하고, 단기 계약, 파견근로자 활용 등의 방법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인위적 구조조정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단기 계약직 또는 파견근로자의 활용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단기 근로 후 퇴직할 수 있도록 근로계약을 진행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청산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충성도가 높은 근로자가 자산 매각 등의 정리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대상 인원에게는 별도의 구조조정 패키지를 제안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진정성 있는 소통 전략 수립
소통 계획 수립은 가장 중요한 준비사항 중의 하나이다. 소통의 대상은 크게 정부, 노동조합 또는 사원협의체, 근로자로 나눌 수 있고 사업 철수가 결정된 후에는 사업과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소통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사업 철수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도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부의 수용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소통전략을 수립할 때에는 각각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정부와의 소통을 진행할 때에는 기업 철수가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근로자 보상, 노무리스크 관리, 재취업 기회 제공, 계열사 사업 확대 등의 전략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근로자 소통은 사업 철수의 배경과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회사의 지불능력을 고려한 보상 수준을 논의하도록 한다. 소통할 때에는 논리적으로 접근하되 근로자의 정서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정서적 교류와 노무관리가 잘 이루어진 기업의 사업 철수의 경우, 법인 대표자는 근로자에 대한 최고의 보상을 위해 노력하고 근로자 또한 사업 철수의 불가피성을 고려하여 법인 대표자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례도 있었다.
노동조합은 전략적 파트너 인가?
1978년 중국 헌법 내에 ‘공민은 파업의 권리를 갖는다.’라는 규정이 있었으나, 1982년 개정시 파업의 자유권에 대한 조항을 폐지하였다. 또한 현행 노동법 및 노동조합법에서도 파업에 대한 근로자와 노동조합의 권리에 대해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업정지, 태업이 발생되었을 때는 노동조합이 대표가 되어 기업과 협상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중국 국유기업의 노동조합은 위상이 낮고 근로자를 위한 복지정책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외자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의 위상이 증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노동조합이 근로자의 권익 보호에 대한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며, 균형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세력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은 국내에서의 노동조합의 강성화 및 어용화로 인하여 중국 내 노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에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건전하고 합리적인 인물이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고 진지하게 소통하면서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파트너로 상호존중한다면 기업과 동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노동조합을 기업 내 분쟁해결 창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업 철수 또한 노동조합과의 협의 없이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기업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관계 유지 및 소통 전략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근로자의 생활안정 측면의 보상금 측정 (N+1의 함정)
2008년 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근로자의 노동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동계약법을 발효하였다. 노동계약법의 발효 이후, 기업이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한 경우 「경제보상금”N” (직전 12개월 평균 임금 × 근속연수)」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의 철수 또한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경제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지급률은 법적으로 강제성이 없어 근로자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지급 수준을 산정할 때에는 산업집적지(Cluster) 내 이력을 참고해야 하며, 협의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산정할 경우 파업 리스크가 높아진다.
경영진과 보상금 지급에 대해 논의할 때 한국기업들은 N+1의 보상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상금은 근로자의 정서적 측면과 기업 노동환경의 관리 수준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실제 사업 철수의 협상 과정에서 노무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옵션이 검토되고 있으며, 외자 기업의 경우 중국 기업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의사결정이 수반되어야 근로자와의 분쟁을 피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의 경영층은 N+1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HR 영역, 적을 알고 나를 알아도 백전백승은 없다
현지 근로자는 국내에서 파견된 전문가보다 본인의 처우 결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생계와 직결된 근로자의 현실적 문제 앞에서 HR은 어떠한 전략으로 기업과 근로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HR은 답이 없는 수학문제를 풀어가는 과정과 같다. 수많은 변수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고 때로는 오답을 적어 내기도 한다. 정답이 없기에 어렵지만 다양한 풀이법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HR 영역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를 말하라고 한다면, 감히 ‘사업 철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과제이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의 풀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막막함을 느낄 것 같다. 필자는 20년이 넘게 중국을 공부하고 체험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되거나 정답을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고민하면서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면 이것이 정답이 아닐까?’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중국 사업의 시작과 끝! 세계 어느 곳에서도 HR은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 국가의 법규를 준수하고자 노력하고 근로자를 수단이 아닌 인격으로 대하는 기업가 정신이 발현되어 녹아 있는 기업은 조직문화와 근로자의 공감 능력이 노사관계의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2023년 중국의 리오프닝 (Re-opening)
중국의 소비는 2019년 대비 50% 수준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코로나19 이전 10%대 성장율에서 코로나19 발생 이후 매년 0~4%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표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 중국의 소비는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경제활성화 노력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에 따른 경제적 영향은 정치에서 해법을 찾기보다는 내부에서 자구책을 찾는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치적인 관계 악화 속에서도 시진핑 정부는 미국과 유럽의 CEO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Apple, 아마존, 화이자, 폭스바겐, 벤츠의 CEO가 화답하였다.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도 글로벌 공급망으로서의 역할과 구매력 측면에서의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국가이다. 미국의 대중 무역액은 2022년 6944억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다. 양국의 경제적 의존도는 정치적 분위기와는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기업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10년을 제외하고 역사적으로도 지속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한 국가이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서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기업의 사업 철수는 철저하게 준비는 하되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