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지 않은 버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시선은 자연스레 정류장 앞 약국으로 향한다. 늘 보이던 나이 많은 여자 대신 젊은 남자가 약국 매대 앞에 서 있다. 약사가 바뀌었나 보다. 손님에게 약을 건네준 약사는 몸을 돌려 조제실로 들어간다. 그 실루엣이 낯설지가 않다. 얼굴을 창에 바싹 붙여 보지만 거리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서서히 바퀴를 굴린다. 멀어져 가는 약국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린다.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한다.
재수란 걸 하고 대학에 들어가니 선 후배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 끊이질 않았다. 말이 친목이지 술 마시는 자리였다. 신입생 환영회, 오리엔테이션 같은 공식적인 자리 이외에도 어느 날은 호프집, 또 어느 날은 소주집으로 모이라며 큼지막한 전단이 건물 곳곳에 붙었다. 술 마실 때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통에 피하고 싶은 모임들이었지만 선배, 동기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 빠짐없이 참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콕’ 집어 한 선배가 맘에 들었다. 평범한 듯 편안한 인상이 좋았고, 억센 부산 말투가 아닌 부드러운 제주도 말을 쓰는 남자라 더 관심이 갔다. 그 선배가 웬만한 모임에는 빠지지 않으니 나도 따라 쫓아다닐 수밖에.
하루는 빈 강의실에서 모였다. 모임의 목적은 기억나지 않지만 제법 많은 인원이 빙 둘러앉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다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한 나는 두리번거리다 맞은편에 있는 그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선배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했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핑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선배 옆으로 가서 앉았다. 선배 입에서 나온 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당시 인생의 철학이 담겨있는 듯한 이 문장들이 얼마나 가슴을 파고들었던지, 그걸 말하는 선배는 또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지금 되돌아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갓 대학에 입학한 풋풋한 청춘에겐 꽤 진지한 순간이었다.
이후 난 그 선배에게 푹 빠졌다. 콩깍지가 씐 눈은 어딜 가나 선배가 있나 없나부터 찾았다. 멀리서라도 얼굴을 못 본 날은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사람처럼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내 마음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못한 채 눈으로만 쫓아다닌 시간이 2년, 어느덧 선배는 졸업했고, 3학년이 된 나는 학과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짝사랑의 기억을 애써 지웠다.
하늘이 준 기회일까? 정류장 앞 약국에 서 있는 그를 알아본 순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 부산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볼 줄이야. 인연이 있다면 혹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굴러들어온 호박 아니 인연’을 붙잡는 것일 테다.
난 작업에 착수했다. 짝사랑만으로 만족하던 이전의 소심함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너무 들이대면 달아나버릴지 모르니 조금씩 다가가야겠지?
다음날 학과 소식지를 들고 약국으로 찾아갔다. 졸업한 선배에게 학교 소식을 전해준다는 그럴싸한 명분이었다. 그 뒤에도 ‘선배, 밥 사주세요.’ 하며 몇 번 찾아가 밥을 얻어먹었다. 그러고 나니 더는 만날 구실이 없었다. 궁리 끝에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이용하기로 했다. 선배가 근무하는 약국은 내가 마을버스를 타는 곳에 있었다. 일부러 선배 퇴근 시간에 맞춰 그곳을 지나가는 척했다. 물론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학교에서부터 철저히 시간 안배를 했다. 어쩌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날은 근처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맞췄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혹은 지하철역 계단에서 마주칠 때마다 선배는 그 우연을 신기해했다. 그게 우연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인연이라는 건 나중에 선배가 남편이 되고도 말하지 않은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중학교 때 연세가 지긋하신 도덕 선생님께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부부의 인연을 말하면서 우리 각자의 배우자가 될 사람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냐고 하셨다. 그때는 결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 친구들과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연이 제주도 동남쪽 끝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을까.
20년 동안 서로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제주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가 만났다. 그리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평생을 같이 살아간다. 그 옛날 데미안을 말했던 특별했던 선배는 내 옆의 평범한 남자가 되었다. 나 역시 매일 현실 문제에 치여 그 시절의 진지함과 순수함은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서로 부부라는 인연의 끈에 묶여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소중하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인연을 붙잡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마 부부가 아닌 잠시 스치는 선후배 사이로 끝나지 않았을까.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중 누구는 귀한 인연으로 남고 누구는 기억에서조차 사라진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연이란 제 발로 찾아오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머물게 하는 건 내 몫이라는 것이다.
타인과 나의 삶이 엮이면 인연이 된다. 소중한 인연을 위해서라면 ‘자기만의 알’을 깨고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절 선배에게 용기를 내서 다가갔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