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가 남긴 세 가지.
삼재 = 3년 간 재수 없음
2022년부터 2024년은 남편의 삼재였다. 9년 주기로 찾아와 3년 간 온갖 시련을 다 주고 떠난다는 삼재는 재작년 우리 가족에게도 찾아왔다. 삼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평소 이를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지난 2년 간 별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생에 처음 겪어보는 온갖 일들이 다 벌어졌다.
'방심했다. 올해는 삼재 중 가장 악명 높다던 3년 차, 나가는 해였다.'
올해 부동산 투자로 3천만 원의 손해를 보고,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을 겪었다. 둘째가 유모차에서 낙상하는 사고가 있었으며, 남편은 어깨와 목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시어머님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평생 병원을 간 적을 손에 꼽을 정도로 건강했던 나는 임산부 천식에 걸렸다. 올 한 해 두 번의 이사를 했고, 이사하는 과정 중 원상복구비 등의 요구로 골머리를 썩기도 했다.
이 많은 일들이 1년 사이에 일어났다. 자질구리한 일들까지 합치면 매일매일이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하도 일이 많다 보니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한 게 '오늘도 무탈히'라는 주문을 외우는 거였다. 심적으로 힘들다 보니, 삼재가 끝나면 멘털이 탈탈 털려 재만 남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기를 다 지나고 나니 삼재는 인생에서 꽤나 값진 것들을 많이 남겼다.
온갖 일을 겪으며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은 '이만하길 다행이다'였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가벼운 접촉사고라 다행이었고, 오밤중 시어머님께서 응급실에 실려갔다길래 혹시 암이 재발한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담석 문제라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했다.
공원 산책 중 둘째가 유모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는데, 걱정과 달리 몸에는 이상이 없어 다리가 풀릴 정도로 다행이라 여겼고, 두 달간의 심한 기침으로 폐렴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검사결과 치료가 가능한 임산부 천식이라 다행이다 여겼다.
부동산 투자에서 3천만 원의 손해를 보고 크게 낙심했었는데, 그날밤 남편이 3억이 아닌 3천만 원으로 끝나 얼마나 다행이냐는 얘기를 하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3억을 잃지 않아서가 아니라, 투자 손실을 봤어도 우리 부부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어서 말이다.
'이만하길 다행이다'는 생각은 불행을 견디고, 이를 이겨내는 힘을 키워줬다. 삼재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살면서 수많은 안 좋은 일을 겪을 텐데, 올해의 경험은 앞으로의 불행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예방주사를 맞은 것 같다. '눈앞에 닥친 불행에 잠식당하지 않고,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 돌아보니 삼재에게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예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무료하고, 따분하고, 정체된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아무 일 없이 평안하고 무탈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게 됐다.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격동적이지는 않아도, 잔잔한 호수와 같은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달콤함을 알게 됐다.
삼재라고 우리에게 나쁜 일만 일어난 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올해는 나쁜 일만큼이나 좋은 일도 많이 있었다. 축복처럼 셋째가 생겼고, 남편은 힘들어했던 소방서 근무를 그만두고 이직에 성공했다. 그리고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서갈등도 올해 끝이 났다.
삼재라고 겁낼 건 없었다. 오히려 삼재라고 신경을 쓸수록 일상 속 불행이 더 크게 확대되어 보이는 부작용이 있을 뿐이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게 우리 인생사다. 그리고 멀리 보면, 삼재의 그 3년도 그저 보통 나날의 한 페이지일 뿐이었다.
삼재가 주고 간 시련으로 올해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 것 같다. 내년까지 50여 일 정도가 남았는데, 내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고맙다. 삼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