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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갑작스러운 퇴사 축하드립니다!

시아버님이 30년 운영한 사업을 접으셨다.

by 심연

61년생으로 올해 예순다섯 되신 아버님은 최근까지 화물 운송 및 알선 사업을 운영하셨다. A회사의 물건을 화물차에 실어 B 장소로 옮겨주는 일이었다. 아버님은 주로 화물차 배차 업무를 하셨지만, 가끔씩은 직접 트럭으로 물건을 옮기기도 하셨다. 그런데 지난달, 아버님이 사업을 정리하셨다.


사업을 접기 직전까지도 아버님네 회사는 아주 잘 나갔다. 관세 전쟁으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수출이 막혀, 회사가 어렵다 할 때도, 아버님 회사에는 매일 일거리가 쏟아졌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아버님 입에선 늘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당시 아버님의 퇴근 인사는 "오늘도 금 한 냥 벌어왔어~"였다. 금값이 무려 100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던 그때 말이다.


토요일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우린 이 호황이 꽤 오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끊기는 건 아무도 모르게, 예고 없이 갑자기 훅 들이닥쳤다. 아버님네 가장 큰 거래처가 다음 달부터 다른 곳과 계약하기로 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그날은 아버님의 예순다섯 번째 생신 날이었다.


물론 아버님도 일을 그만할 때가 됐다는 건 알고 계셨다. 연세도 있으니 체력적으로 힘들어지기도 했고, 산업 자체가 하향세라 팔 수 있을 때 회사를 정리하는 것이 득이라고 생각해 오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올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누군가에 의해 일자리를 잃는다는 건 직장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님을 보니 스스로 퇴직시기를 정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자영업자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칠십까지 일을 하시겠다던 아버님은 거래처 사정으로 인해 퇴직 시기가 5년 앞당겨졌다.


아버님은 사업을 접고 난 뒤, 꽤 오래 우울감이 있으셨다. 그동안 마땅한 취미생활도 없이 성실히 일만 하셨던 터라, 갑자기 맞이한 방학이 좋기보단, 어색하다고 했다. 아버님의 퇴직은 가족들에게도 여러 감정을 남겼다. 우린 아버님께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마음껏 쉬세요!"라고 말했지만, 준비 없이 맞이한 퇴직은 우리에게도 왠지 모를 헛헛함을 남겼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 끝에 어머님, 아버님 두 분께 일본 여행 패키지를 선물로 드렸다. 그동안 일 때문에 길게 여행 한 번 못 가보신 분들이니, 이젠 마음껏 즐기셨으면 했다. 두 분은 "너희가 무슨 돈이 있다고..."라며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셨지만, 그래도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마음의 잔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넉넉해진 것 같았다.


사업을 접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쉬는 게 어색하다던 아버님은 매일 다른 것들로 하루를 채워가며 조금씩 퇴직자 라이프에 적응하고 계신다. 어머님과 같이 등산도 다니시고, 보고 싶으셨던 드라마도 몰아보시고, 가끔은 아르바이트 삼아 트럭 운전도 하시며 말이다. 지난달까지 어두웠던 아버님 표정에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다시 조금씩 빛을 찾는 아버님의 표정을 보니, 이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버님, 이제 배차 말고 배낭 메며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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