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병에 걸린 언론
기자들의 '단독병'에 대해서 얘기하려 한다. 단독 기사란 말 그대로 한 기자나 언론사가 단독으로 취재해 보도하는 기사라는 뜻이다. 신문 지면에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인터넷에서는 기사의 제목 앞에 '[단독]'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자들은 단독 보도를 하나의 영예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항상 눈에 불을 켠 채 '단독'거리를 찾아다니고, 단독 기사가 출고된 날이면 오묘한 행복감에 젖게 된다고들 한다. 단독 기사를 유달리 많이 써서 '단독 기자'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알아서 보도했고, 이로써 나는 국민의 알 권리 증진에 기여했다는 영웅적 심리의 일환이라고 나는 본다. 여기에 빠지면 시답잖은 기사에도 단독을 붙이는 '단독병'이 된다.
내가 단독 기사를 쓰면, 나를 제외한 모든 기자들은 '물을 먹는다'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내가 다른 기자들에게 '물을 먹인' 셈이다. 세간에서 '~에게 물 먹다'는 표현은 '~에게 속았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따라서 내가 단독 기사를 쓰는 것은 내가 다른 기자들을 속인다는 뜻이 된다. 단독 기사를 보도하는 것을, 다른 기자들을 속이는 행위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기자들을 속이는 것이 곧 영광인 기자들의 세계. 참으로 이상한 세계다.
특히 수습기자들에게 단독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수습기자가 단독을 물어오면 대우가 달라진다. 이른바 '밥 값 한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단독 기사를 취재했다는 것은, '마와리'를 열심히 돌았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캡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너희(수습기자)들이 단독을 쓰면 타사 캡들이 나한테 출처가 어디냐며 캐묻는데 그럴 때 우쭐하다'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너희도 타사 애들 물 먹이면 기분 좋지 않냐'라고. 수습기자들이 취재한 단독 기사는 대개 별 내용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단독 기사가 기자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언론계 생리 상 수습기자들의 단독 기사는 '우리 회사는 수습기자들도 잘 나간다'는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 같다.
'마와리'를 돌며 가장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다. 왜 물을 '먹으면' 하루 종일 욕을 들어야 하고, 물을 '먹이면' 뿌듯해야 하는지. 나는 항상 '타사 기자가 단독 기사를 쓰면 감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얘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넌 기자 하면 안 된다'라고 응수했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타사의 단독 기사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렇다. 어찌 됐든 누군가 알아내고 보도할 내용이었다면, 그 주체는 누가 되든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들은 어느 언론이 단독 보도를 했는지 따위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독 기사는 보도한 언론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물 먹은' 언론사에 큰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과거 경향신문의 성완종 녹취파일 보도와 같은 이례적인 경우 제외). 어차피 그 기사는 보도되는 순간 우후죽순 다른 매체에서도 똑같이 보도할 것이며, 후속 추가 보도에서 최초 보도자의 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진실의 폭은 넓어지는데, 시민들은 이를 언론의 '협업'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 기여한 언론사들은 '언론'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뭉뚱그려질 뿐이다.
단독 기사가 기자 역량의 척도로 작용하는 현상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과거 신문이 막강한 매체 파워를 자랑하던 시절, 단독 기사는 다른 신문과 차별화할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였다. 사회가 불안정한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사건 기사가 많았던 시대고, 종이 신문은 하루에 딱 한 번 인쇄되는 매체인 탓에 하루 단독기사를 내보내면 그 여파가 종일 지속될 수 있었던 탓이다. 따라서 큼지막한 단독 사건 기사를 신문에 싣는 것은 기자로서 큰 영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습기자 교육이 '마와리'로 행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기자들의 핵심 역량은 단독을 캘 수 있는 능력이었고, '마와리'는 이를 배양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의 부재 때문에 가능했다.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베껴쓰기와 실시간 보도가 너무나 쉬운 시대다. 요즘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나오는 단독 기사를 너무나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수습기자 시절 나는 짧게는 수 분, 길게는 수십 분 간격으로 네이버에 '종로 경찰서', '강남 경찰서' 등을 검색한 후 최신순으로 나열하는 작업을 병적으로 반복했다. 수습기자라면 누구나 한다. 출입처의 단독 기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최신 순 나열 후 맨 위 기사 제목에 '[단독]'이 보일 때면 바로 해당 경찰서 해당 부서로 전화를 넣었다.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추가 취재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추가 취재가 끝나면 비슷한 내용으로 기사를 쓰고 송고한다. 보도를 위해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단독 기사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취재하고 알리는 건 언론의 책무다. 다만 그 결실에 취하는 것은 잘못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해서 칭찬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단독 기사가 기자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에 대다수 기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많은 경우가 잘 형성된 인맥의 제보로 시작된다. 나 역시 기자를 그만둔 지금까지도, 수습기자 시절 만들었던 인맥들에게 제보가 들어오곤 한다. 마와리에 비례해서 단독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단독은 대중들의 신뢰를 받는 언론에게 따라오는 부차적인 것이다. 단독은 언론의 목표가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언론들이 서로 '물 먹고 먹이는' 전쟁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 먹는 것'에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물 먹이는 것'에 혈안이 되지 않는 언론에게 뉴미디어 시대를 이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독 기사는 더 이상 언론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되며, 기자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단독 기사의 개수는 더 이상 언론을 밥 먹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발표한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조사에서 JTBC가 1위를 차지했다(링크). JTBC가 단독 기사를 많이 쓴 덕분인가? 2016년 1월 1일부터 이 글을 작성하는 2016년 9월 30일 오전 3시까지, JTBC가 생산한 단독 기사는 약 625건이다(네이버 '[단독]'검색 결과, 단독 기사가 아니지만 '단독'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는 비중이 작아 무시). KBS 1,915건, 조선일보 1,358건, SBS 1,699건, 경향신문 1,676건이다. JTBC가 단독 기사로 신뢰받는 매체가 되었는가? 이래도 단독이 중요한가?
대신 언론은 단독 기사를 발굴한 타사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정확하게 인용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최초 단독 보도가 짚지 못한 영역을 추가로 취재하고 보도하여 쟁점을 확장시키고, 단독에 몰입하며 놓치기 쉬운 올바른 저널리즘의 준칙을 상기시켜 언론의 공익성을 수호하는 방식으로 어젠다를 주도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뉴미디어 시대의 올바른 어젠다 키핑 방법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언론은 시민들로부터 사랑받을 것이며, 모든 언론이 이와 같다면 한국 언론은 크게 성장할 것이고 동시에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라고 감히 예언한다. 그 시작은 단독 기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마와리' 교육 폐지로 시작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