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생, 수학과 대학원 입성기
솔직히 말해서, 난 수능 문제엔 별 재주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순수수학이나 물리학 쪽에선 늘 호기심 넘치는 학생이었다. 수능과 무관한 주제들을 혼자 파고들며, 스스로 만족하는 공부를 즐기곤 했다. 물론, 그 당시 따로 공부했던 내용이 학문적으로 진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혼자 만족하는 지적유희에 불과했던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단국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 당시 집안 어르신들은
“사범대 가면 교사라는 든든한 플랜B도 있고, 네가 좋아하는 수학도 마음껏 파볼 수 있단다!”
라고 강력히 추천하셨는데, 대학교에 발을 들이고 시간이 좀 지나며
“흠… 이거 구라였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되는 길도 생각 이상으로 치열했고, 교육학을 병행하다 보니 정작 수학 공부에만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처음엔 교사로 가는 길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다. 하지만 학기가 지날수록 내 성향은 분명해졌다.
나는 순수수학 그 자체가 재밌었다.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이 시작되자 거의 모든 수학 과목들에서 1등 내지는 그에 준하는 성적을 받았던 것 같다. 다만, 교육학 같은 다른 수업들은 B나 C를 찍어주는 바람에 전체 평점은 그렇게 좋진 않았다.
방학에는 좀 더 깊은 주제를 찾아 공부하거나, 다른 학교 시험 문제들을 풀어보았다. 나중에 대학원에 와서 돌아보니, 재능은 고사하고 노력조차 어정쩡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땐 꽤나 열심히 사는 척 했던 거다.
결국 마음을 굳혔다.
“그래, 대학원에 가서 수학을 전공하자!”
다만 수학을 전공하면 굶어 죽는다는 막연한 걱정에, 추후 데이터사이언스나 인공지능 쪽으로 살짝 넘어가기 위해 일단은 석사과정으로만 입학하는 ‘플랜 B’를 그려두었다. 지금 당장은 아는게 수학밖에 없으니 일단 석사는 수학으로 가자는, 나름 내 식대로 고민한 전략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쓰고 싶은 내용이지만, 이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말도 안되게 운이 좋아서 저런 나이브한 생각이 통할 수 있었다.)
대학원 지원은 순탄치 않았다. 카이스트는 지원 시기가 여름이라는 걸 모르고 놓쳐버렸고, 포항공대는 서류탈락했다. 그래도 운 좋게 서울대 수리과학부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
서울대 면접은 많이 운이 좋았다. 해석학, 대수학, 기하학 중 하나를 골라 교수님들 앞에서 칠판에 필기하며 즉석 질의응답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해석학을 선택했다. 당시에 나는 해석학 준비를 꽤 빡세게 했던지라, 거의 모든 정리와 증명을 달달달 외우고 있었다. 덕분에 교수님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막힘 없이 답변할 수 있었다. 그러다 교수님 한 분이 까다로운 반례를 여쭤보셨는데, 마침 아침밥 먹으며 스택오버플로우 뒤적이다가 본 예시가 딱 그거였다.
“와, 이건 진짜 온 우주가 나를 돕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나는 마치 지금 처음 고민해보는 것처럼 연기하며 능청스럽게 답변했었다. 면접이 모두 끝나자 한 교수님이 박수를 쳐주셨을 정도니, 인생 최고로 운이 좋았고 잘본 면접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합격이었다. 이제 첫걸음을 뗀 셈인데, 그 순간의 행복감은 참 달콤했다. 앞으로 다가올 시련과 고난은 모른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