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솥귀 Dec 21. 2024

지도교수를 정하다

지도교수 선택기

“수학 전공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수학도 하고 싶고, 취업도 잘 하고 싶으면 뭘 해야 하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매일같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고민이었다.


물론 수학에 재능이 넘치고, 열정이 불타오르는 사람들은 학계로 회사로 알아서 잘 헤쳐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런 재능도 없을뿐더러 막 ‘이 길이 내 전부야!’라고 할 정도의 열정도 없었다. 그래서…


“뭐. 석사 때 AI 쪽 공부 열심히 해서 취업하든가, 아니면 박사 때 전공 갈아타면 되겠지”


라는 지금 생각하면 좀 많이 엉성한 플랜 B를 세워두고 있었다.


AI를 연구하려면 기초 이론에다 코딩 실력까지 필수다. 거기에 석사 과정 동안 내 수준에 맞는 문제를 하나 골라 해결해야 했는데, 머리 좋은 친구들은 이런 거 다 알아서 잘 해내지만, 난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즉, 이걸 끌고 가줄 멘토(지도교수)가 아주 절실했다. 더 놀라운 건, 한심하게도, 정작 그때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거다.


“나랑 맞는 지도교수? 있으면 좋은 거고, 없으면 내가 혼자 하면 되지 뭐~”

이런 무모한 자신감만 믿고, ‘수학’ + ‘서울대’라는 타이틀에 혹해서 냅다 입학을 질러버렸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대학원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지도교수라는 걸 몰랐던 것이다. 그때 그걸 알았더라면 다른 학교나 학과도 진지하게 알아봤을 텐데.


그럼에도 난 또 운이 미친 듯이 좋았다. 내가 딱 입학하던 해에 젊은 조교수님이 새로 부임하셨으니까. 이 교수님은 포닥 때까지 응용수학을 하셨는데, 이제부터는 AI도 연구하고 싶어 하셨다. 나는 “오, 이런 분도 마침 임용되셨네?” 정도로만 생각했지, ‘헉,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이 여기 계셨네!’ 같은 대단한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면담을 진행했고, 교수님이 시간을 좀 줄 테니 neural style transfer 문제를 한번 고민해 보라고 하셨다. 코딩이고 AI고 전혀 몰랐던 나는 “지금 뭐라고 하신 거죠?” 상태였지만, 그날부터 자료와 논문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는 게 없으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제대로 된 결과를 내긴 힘들 거라 생각해서, 차라리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자는 전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이틀에 한 번 꼴로 진행 상황과 막히는 부분을 메일로 보고하고, 질문하였다. 대부분 헛소리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이 갑자기 Zoom으로 급하게 얘기하자고 하셨다.

당시 교수님이 내게 보내신 메일이다.

다행히도 교수님이 “함께 일해보면 어떻겠냐”라고 제안을 주셨다. 직접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아마도 이제 막 연구실을 꾸려나가는 시점이었기에 코딩이나 AI에 무지했던 나 같은 놈도 받아주셨던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연구실에 들어오려면 이런 스펙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지만, 그땐 내가  ‘저점 매수’에 성공한 셈이었다. (주식도 이렇게 날로 먹어보고 싶다)


만약 이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석사 기간 내내 별다른 가이드 없이 허송세월만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 “괜히 대학원에 왔다…”며 내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운이 또 한 번 따라줬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지도 경험이 전혀 없고 인성도 잘 모르는 교수님에게 가는 것이 나에게 모험이긴 했다. 다행히도 그런 부분에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로서는 이것마저도 주사위가 좋게 굴러갔던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