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리서치인턴
타전공과 달리, AI 전공 대학원생들은 종종 회사에서 리서치 인턴을 한다. 일반 인턴과 다른 점은, 주로 회사 정규직 연구자들과 함께(혹은 홀로) 논문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연구실에서 하는 일을 회사에서 하는 셈이다.
나는 이 리서치 인턴 제도를 일종의 특혜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출근하며 복지와 인프라를 누리고, 대학원생 때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 논문까지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연구실 바깥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시야도 훨씬 넓어진다.
나에게도 이 기회가 찾아온 건 첫 번째 논문이 accept된 직후였다. 교수님이 “크래프톤이라는 게임회사(배틀그라운드 제작사)에 연구 인턴으로 지원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다. 회사 측에서 인턴을 추천해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내가 실용적인 주제로 막 논문을 쓴 터라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신 듯했다.
크래프톤? 솔직히 처음엔 망설여졌다. 당시에는 크래프톤 AI 센터가 막 생기려던 때였고, 회사에서 나온 논문도 거의 없어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괜히 시간만 날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합격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도 참 운이 좋았다. 지금은 입사 경쟁이 매우 치열하지만, 그때 크래프톤은 막 AI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며 석박사급 인재를 모으고 있었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저점 매수’하듯 입사할 수 있었다. 합격 후 회사에서 일하다보니 “도대체 나 같은 게 어떻게 뽑혔지”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감사한 기회였고, 덕분에 여러 뛰어난 분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Language model을 결합한 새로운 연구 트렌드를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연구 외적으로도 정말 좋았다. 밥이 너무 맛있었고(감히 국내 1위라고 생각한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뷰가 있어 강남 일대를 보며 회의할 때면 괜히 내가 뭔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GPT 관련 연구를 진행할 때는 거의 천만 원어치 API 비용을 회사에서 전액 지원해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회사가 너무 좋아서 평일엔 늦게까지, 주말에도 나와서 연구했다. 늦게 퇴근할 때는 택시비 지원을 받았는데, 가끔 커다란 밴을 타고 자취방에 갈 때면 “내가 이렇게까지 대접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나 휴일 출근 시엔 식대 지원비가 높아서 비싼 밥도 먹을 수 있었다.
이 정도 환경에서 논문을 못 쓰면 그건 100% 내 능력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실제로 논문 마감 한 달 동안 체중이 7kg 빠졌고, 마감 일주일 전엔 빨래할 시간이 없어서 출근길에 속옷을 사 입기도 했다. 마감 이틀 전에는 아예 퇴근을 포기하고 회사 침실에서 잠을 잤다.
덕분에 훌륭한 동료들과 좋은 주제를 잡아 논문을 썼고, 아슬아슬한 리버털을 거쳐 ICLR이라는 탑 컨퍼런스에 논문이 accept되었다. 논문이 끝난 뒤에도 회사가 좋아서 더 다니고 싶다고 졸랐고, 결국 인턴 신분으로 무려 8개월이나 근무했다. 퇴사 후에는 다시 쭈글이 대학원생 모드로 되돌아갔다...ㅎㅎ
크래프톤을 떠나던 날, 회사 문을 나서며 그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게 정말 고마운 회사였고, 지금도 종종 놀러 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