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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왈JS Jul 07. 2023

그림 너머의 세계 속으로,

서평. 지식의 미술관_이주헌

해외여행을 가면 코스에 꼭 넣는 장소가 있다. 바로 미술관이다. 미술은 그 시대의 철학, 삶의 방식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창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지마다 그 지역의 대표적인 미술관을 찾아가는 편이다. 그곳에서 역사, 문화, 사람들까지 그 나라의 정수를 맛본다.


직관은 논리를 뛰어넘는다. 직관은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를 소비한다. 
순간적인 이미지로부터 본질을 파악하고 즉각적인 실천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실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직관에 따른 판단이 논리에 따른 판단보다 뛰어날 때가 많다는 것이다. 
- 지식의 미술관 中




작품의 직관적인 아름다움에 압도된 경험으로 미술관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감동 이후로는 막연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마음이 요동치고 온 감각이 곤두서는 사랑의 시작, 그 이후로는 대상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지는 법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무엇일까, 이런 화풍의 그림을 그린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걸까. 어떨 때는 그림의 배경이 된 지형을 실제로 찾아보며 작품 너머의 감각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뭉크의 <절규> 배경인 오슬로피오르(빙하), 모네 작품의 배경이 된 프랑스의 에트르타… 작품을 감상할수록 그 너머의 이야기들이 점점 더 궁금해지다 보니 여러 미술 관련 도서들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어떤 책보다 이런 내 갈급함을 시원하게 채워준 책이 있다. 바로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책 <지식의 미술관>이다.

 


제목에 ‘지식’이 들어가니 어쩐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만 넘어선다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아주 쉽고 흥미로운 책이다.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출신인 저자는 그림뿐 아니라 조각, 그리고 고대미술과 현대미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기자 출신답게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재미있게 쓰면서도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아카데믹하기보다는 대중들을 위한 아주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는 그는 이 책 말고도 <역사의 미술관>, <신화, 그림으로 읽기 등> 유익한 미술 대중서를 집필했다. 많은 사람이 미술에 대한 어려움을 내려놓고 조금 더 일상의 즐거움으로 누리도록 돕는 각고의 노력이 느껴져 아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책은 서른 개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트롱프뢰유(눈속임), 게슈탈트 전환(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림), 알레고리(이중적 의미), 스탕달 신드롬, CIA와 추상표현주의(잭슨 폴록), 오리엔탈리즘 등으로 키워드를 구분해 작품을 무척 흥미롭게 해석하고 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긴 시간의 미술사와 작품 사이사이에 깃든 많은 맥락, 비하인드 스토리가 넘치도록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대하고 깊이 있는 서양미술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니! 이 책은 고대미술부터 현대미술 전반을 다룬다. 그림뿐 아니라 조각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누이 이야기했듯, 단순히 지식의 양이 감상자의 감상 능력과 안목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직관을 활용해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다시 지식과 경험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지식과 경험은 구슬이고 직관은 꿰는 실이기 때문이다.”

미술의 보다 보편적인 기능은 시각적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앎과 이해, 느낌을 전달하는 데 있다는 이주헌 평론가의 글에 위로받은 것은 내가 작품 앞에서 종종 느꼈던 그 호기심과 막연한 감정들이 몹시 타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빈센트 반 고흐를 예로 들어보자. <별이 빛나는 밤>이나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 그의 그림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다. 그러나 작가의 삶 전반에 묻어나는 처연함을 아는 사람의 감동과 모르는 사람의 감동은 천지 차이다.

 


이주헌 평론가가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재미와 깊이 둘 다 놓치지 않는다. 작가의 삶과 시대의 사상, 미학적 구조, 당시의 평가와 후대의 평가까지… 밀도 있고 정연하게 연결된 그 지식의 흐름 속에서 표현 못 할 짜릿함을 느꼈다.

여행 당시 봤던 그림들이 새로이 떠오르며 가슴이 벅찼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과 교감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를 알고서는 오래 먹먹해지기도 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보았던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이제는 너무 고통스럽게 떠올랐고, 붓으로 빛의 잔치를 벌였다는 인상파 작품 설명에 모네의 노을 지는 하늘과 빛이 아롱지는 풀밭, 투명한 하늘이 눈앞에 당도한 듯했다. 이외에도 저자는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정석적으로, 한편으로는 발칙하게 소개해 준다. 보다 깊고 다층적으로 작품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직관, 경험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고대 미술뿐 아니라 현대 미술시장에 대한 분석,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미술사조에 대한 분석 또한 몹시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가 미술관에 즐겨 가는 것은 그곳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단지 작품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사람과 사랑, 고상하고 격동적이고 때론 잔인한 모든 삶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저자는 말한다. 미술은 삶을 즐기는 것이며,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미술은 자기 안의 감각을 키움과 동시에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접하게 한다. 아름다움을 누리고 내 안의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물론, 시대의 역사와 철학, 문화 등의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인문학적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 훌륭한 도움을 준다.

내가 즐기는 미술관 여행이야말로 세계에 대한 앎의 확장 그 자체 아닐까. 미술 안내자이자 훌륭한 스토리텔러인 저자의 글은 나로 하여금 다음 여정을 상상하며 마음을 들뜨게 했다.



소녀인가, 할머니인가? '게슈탈트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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