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실패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보증을 서준 이가 있었다. 도망치면 그가 다친다. 파산 선고를 하면 갚을 돈이 제일 작아지지만 그러려면 법인 폐업을 해야 한다. 난 법인 대표였다. 폐업하면 바로 보증인에게 불이익이 간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신용 회복에는 "프리워크아웃, 워크아웃, 개인회생, 파산"의 4단계가 있다. 뒤로 갈수록 원금과 이자를 많이 감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워크아웃이었다. 워크아웃은 3개월간 연체를 해야만 신청할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제도가 그러했다. 3개월간 연체를유지하면 3개월간 매일 독촉 전화를 받게된다. 다행히 주말에는 오지 않는다. 석 달간 평일엔 폰을 무음으로 해두고 받아야 할 전화는 나중에 내가 걸었다. 3개월, 정확히 90일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전화가 오지 않는다. 이때 해방감에 기뻐하는 나 자신이 한스러웠다. 늘 쫓기던 심정에서 벗어난 것이 기뻤나 보다. 91일째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채권추심 권한이 신용회복위원회로 넘어갔다. 수개월의 심사 후 언제까지 매달 얼마를 갚으라는 말을 들었다. 내 경우 88개월이었다. 7년이 넘는 세월이고 아직도 좀 남았다.
망한 지 두 달 만에 운 좋게 취직을 했다. 망하기 전까진 늘 한길만 걸었다. 새 출발은 전혀 다른 분야였다. 재기에 의의를 뒀기에 새로운 분야인 것이 되려 잘된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1년 뒤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고 그때 난 회사에서 잘렸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내 자리가 애초에 그리 필요하지도 않았고 운영 방식도 크게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날 자른 사람은 친구의 아내였고 난 또 갚아야 할 빚이 생겼다. 잘리기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실패가 아버지의 병과 죽음에 큰 작용을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버진 발병 당시 폐암 말기였다. 발병 후 임종까지 6개월간 출근길마다 버스 뒷자리에 파묻혀 소울음, 헛웃음을 반복했다. 최근에서야 아버지는 그때 그리 도와주시고 기뻐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원망은커녕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시며.
먹고사는 것이 급해 잠시도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급하게 일자리를 알아보고 또 운 좋게 한 달 만에 취직을 했다. 월급 없는 기간을 한 달로 최소화했다는 데 안도했다. 이 한 달을 버티려 또 빚을 졌다. 다시 취업한 곳은 예전에 한길만 걸었던 분야였다. 빨리 적응했고 확실히 자리 잡았다. 취직 후 1년 만에 2개 팀을 맡았다. 팀 동료도 많고 본연의 업무도 많고 행정 업무도 많았다. 이때 신임 대표가 오고 내가 속한 본부가 바뀌었다. 그렇게 넘치는 일 속에서 폭풍 같은 1년을 보냈다.
우리 회사는 주인 없는 회사다. 그룹사의 임원이 대표로 오는 식이다. 대부분 업계 비전문가이고 전문 경영인도 아니다. 이렇게 오는 자들은 그룹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보여주기 식 치적을 쌓는데 주력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2~3년을 넘기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중장기적으로 진행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도 꼭 해야 할 일들이 진행되지 못할 때가 많다. 회사의 다른 임원들 다수도 이런 대표에게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속한 본부장도 그러했다. 그래서 많이 부딪혔다. 그 결과 난 1년 뒤에 인사 평가에서 본부 꼴찌를 했고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됐다. 좌천되어 다른 팀으로 발령났다. 연봉이 천만 원 넘게 줄었다. 내겐 그들이 비상식이고 그들에겐 내가 비상식이었다.
실패, 재기, 실패, 재기, 실패...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다 보면 넘어져 다칠 수 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일은 다시 일어나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할 때 벌어진다. 실패라 불릴 만큼의 시련을 겪게 되면 누구나 지푸라기라도 잡게 된다. 문제는 그 지푸라기가 또 다른 실패의 원인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재기하는데 첫발을 디뎠다 생각할 때 또 다른 실패로 첫발을 디딘 셈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일은 방향을 잘 잡아도 벌어질 수 있다. 사람이 시련을 반복하여 겪게 되면 점점 헤어나기 어렵게 된다. 여러 번의 담금질로 쇠가 단단해지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내 경우는 그러했다. 상처가 쌓이면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주변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화선지 한가운데 흥건히 쏟아진 시커먼 먹물처럼 실패는 순식간에 주변을 삼켜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 종이는 다시 쓸 수 없게 되는데 가족, 친척, 친구, 선후배 누구든 그 안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잘못된 방향인 것을 그 시점엔 알 수가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이런 상황에선 더 그러하다.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다. 잘 지나치고 긴 호흡으로 돌아보면 그저 과정일 텐데, 성공과 실패는 한 시점의 형상일 뿐 인생 전반의 결과는 아닐텐데 하며 버틸 수밖에 없다. 이 길이 또 아니면 어떡하나 늘 두려워한다. 더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다.가끔 힘들단 말을 하는 동료에게 이런 나도 산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왜 사냐고? 그냥 삶이 내게 주어졌을 뿐이다.과정이라 믿고 살다 보면 마지막에 그 해답에 가까워지겠지 하며.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말이 있다. 실패해도 그 책임을 개개인이 다 지지 않을 수 있을 때만 유효한 말이다. 아니라면 그저 위인전에 나올만한 말로 여기는 게 낫다. 창업 환경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사업에 실패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온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실패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으로 일어나며 여러 곳에 영향을 끼친다.이 나라에서 사업에 실패하는 것은경제적인 사망 선고를 받는 것과 같고 이는 진짜 죽는 것보다 때론 더 힘든 일일 수 있다.실패는 당연히 두려워해야 하고 도전은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모든 것을 잃은 뒤 재기하려 애쓰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