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어느 평범한 날의 저녁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놀아주고 있던 남편에게 목포에 계신 시어머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아들 며느리 배려하신다고 웬만한 일로는 늦은 시간 연락을 하신 적이 없는 터라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고 있을 때, 남편의 수화기 너머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가 아프다"
지난 설연휴 목포 시댁에 내려갔을 때 평소보다 수척해지신, 아버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명절이면, 가족 중에 가장 바쁘고 부지런히 움직이시던 아버님이 지난 명절에는 자주 자리에 누워계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 아버님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남편에게 아버님이 언제 건강검진을 하셨는지 확인도 했었기에 아버님이 아프시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불안한 예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식사를 잘하지 못하시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서 내과에서 피검사를 하셨고, 당장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현대 아산병원으로 진료를 보기 위해 올라오셨다.
아버님의 병명은 혈액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혈병. 보통의 경우 항암과 수혈을 병행하면서 치료할 수 있지만, 아버님의 경우는 전 세계에 1.5% 정도밖에 없는 희귀한 경우여서 아직 연구 단계에 있기 때문에 치료할 수 있는 약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했다. 아버님께 남은 시간은 2년. 길게 보면 2년이라고 했다.
평소 감기나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셨던 아버님이시기에, 90세가 넘게 건강하게 지내시다 주무시듯 돌아가신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덕분에 농담처럼 우리는 장수 가족이라고 말하던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아버님의 암판정과 남겨진 2년이란 시간을 받아드리기는 쉽지 않았다.
남편은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며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된 남편. 직장 생활할 때는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와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부모님. 대학교 입학하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목포에서 서울로 올려 보내고 집으로 내려오시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아버님.
처음 결혼 피로연을 하러 목포에 내려갔을 때 말없이 나를 차에 태우시고 목포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시던 아버님, 잔치 날 아침에 거실에서 내 한복을 정성스레 다려주시던 아버님, 두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까 봐 직접 마늘까지 까서 빻아 택배로 보내주시던 아버님. 두 아이들 출산할 때마다 나와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아버님, 항상 존재만으로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주시던, 우리에게 깊고 넓은 사랑을 항상 흘려보내주시던 존경하는 아버님. 아버님과 우리에게 남은 2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잠 못 드는 며칠 밤을 보낸 후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목포로 내려갈까? 2년 동안 아버님 옆에서 행복하고 좋은 기억, 많이 남기자!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든든하게 아버님 옆을 지켜드리자!"
내가 남편에게 목포로 내려가자고 한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남은 2년의 시간을 아버님과 함께 후회 없이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우리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남편의 직장문제.
"여보, 2년 동안 설마 우리 네 가족이 굶어 죽기야 하겠어? 우리가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나면 뭔가 새로운 길이 생기지 않을까?" 맞았다!!!!! 남편이 회사에 아버님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기로 했다고 말씀드리니, 감사하게도 회사 측에서 먼저 재택근무를 제안해 주셨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가정을 배려해 주신 회사 분들께 감사드린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016년 12월.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