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거기로 가자! 근데 영암이 대체 어디야?

2. 박 씨 가족 서울을 떠나 영암으로 가다. - 그런데 영암이 어디야?

by heawon park

아버님과 함께 2년의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목포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후,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서울과 목포가 거리가 있다 보니 일단 집을 구해야 하는데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목포에서 우리 가족이 살만한 집을 찾다 보니 대부분이 아파트였다. 남편의 여름휴가와 추석연휴를 이용해 집을 보러 다녔는데 목포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며칠 만에 집을 알아본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남편은 목포가 고향이지만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라 인터넷으로 알아본 나보다 더 알지 못했다. ) 우리가 살던 아파트 전세비용으로 40평대 아파트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서울에 비해서는 저렴한 목포의 아파트 시세였지만, 4살, 2살 남자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이왕이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주택을 구하고 싶었다.

고모가 보내주셨던 사진, 돌담과 넓은 텃밭이 있는 한옥집


어린 시절을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보낸 나는 두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키우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항상 들었다. 아이들이라면 뛰는 게 당연한 일인데, 항상 뛰지 말라는 말을 해야 하는게 나에게도 스트레스였고, 미안하고 민망한 얼굴로 올라오시는 경비아저씨들과 아랫집, 옆집에 항상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죄인이다 보니 가능하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을 찾고 싶었다.

부동산에 내어놓은 우리 집은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막상 우리가 살아야 할 집이 구해지지 않으니 조바심이 났다. 어느 저녁 목포에 살고 계신 아이들의 고모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마당이 넓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한옥집 사진 한 장과 함께.

월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우리 집 풍경



아이들 고모부 친구가 전세로 살고 계신 집인데, 본인들은 집을 지어 나갈 예정이라 2년 동안 집이 빌 예정이니 전세로 들어와 살 생각이 있냐고 하셨다.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우리가 살집은 바로 여기다!!! 싶었다.

넓은 마당의 한옥 집,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도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제지하지 않아도 되며, 마당에서 흙을 밟고 아이들과 텃밭을 일구어 여러 푸성귀들을 심어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여보 우리 거기로 가자!!! 근데, 거기가 어디야?" 고모가 보내주신 사진 속 집은 목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영암이라는 곳에 있었다. 영암?!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정을 내렸는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니

영암? 영암이 도대체 어디지?


충청도가 고향인 아빠와 찐 서울여자인 엄마가 서울에서 만나 낳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고,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지인 중 그 누구도 호남권에 사는 사람이 없었다 목포 남자인 남편과 결혼하고 처음으로 호남선을 타고 목포에 와보았으니 영암은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영암과 집 주소를 검색해 보니, 매해 봄마다 벚꽃 천리길로 유명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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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봄마다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고, 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니! 천리가 얼마나 긴지는 모르겠다만,

눈이 부시게 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영암의 사진을 본 순간,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나는 결심했다. 어딘지 모르면 어때? 가보면 되지!!!!!! 우린 영암으로 가는 거야!!!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영암에서 10년 가까이 살게 될지는, 그리고 내가 영암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영암의 모든 계절을 사랑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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