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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디 Jun 30. 2023

성질 더러운 고양이가 바꾼 것들

고양이와 삽니다



유난히 날 좋은 주말 아침이었다. 요즈음에는 날이 좋으면 미세먼지가 극성이었고, 미세먼지가 없으면 날이 안 좋았는데 오늘만은 예외였다. 구름 없이 맑은 하늘에 더해 미세먼지를 나타내는 이모티콘도 푸른 미소를 짓고 있는 날이었다. 우리 집 서열 1위인 고양이도 간만에 만족스러운 듯 해 잘 드는 창가에서 한참이나 뒹굴었다. 늘어져 있는 녀석에게 코를 갖다 대자 잘 마른 햇볕 향이 났다.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는 휴일 아침이었, 녀석이 우리 집에 온 지 정확하게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고양이를 기를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따지자면 나는 고양이보다는 강아지파에 가까웠다. 천방지축에 까다로운 마이웨이 이미지의 고양이에 반해 충성스럽고 말 잘 듣는 기특한 이미지의 강아지가 조금 더 취향에 맞았다. 그래서 강아지를 기르는 것은 기억이 닿는 가장 어릴 적의 순간에서부터 내 꿈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우리 집의 형편과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이루어질 수 고, 그렇게 내 꿈은 유예되어 왔다. 학생 때는 성인이 되면 강아지를 키워야지, 수능을 볼 때는 대학생 되면 자취하면서 키워야지, 군대에서는 전역을 하면 키워야지, 취준생 때는 직업을 가지면 키워야지. 결국 내가 반려동물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된 건 회사원이 되고도 4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나는 1인 가구였고,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1인 가구가 강아지를 기르는 것은 강아지에게 못할 짓이었다. 수십 년에 거친 기나긴 과정과 마지막의 급선회를 거쳐 한 성질 더러운 고양이는 나의 반려동물이 됐다. 그리고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린 고양이는 나와 꼭 붙어 잠에 들었다. 혹여나 내가 잠결에 뒤척이다 고양이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을까 깊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녀석이 자란 후부터는 내 잠자리 옆에 여분의 베개 놓았고 녀석은 그 위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이 되면 녀석은 내 품속에 파고들거나 나를 물어 깨웠다. 난 항상 피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집은 점점 더러워졌다. 그전엔 너무 깨끗해 모델하우스 같다고 불리던 집이 고양이 모래와 털뭉치, 장난감들과 물그릇 밥그릇, 푸드트리와 스크래쳐 그리고 캣타워에 의해 너저분해졌다. 불편하기는 또 얼마나 불편한지, 나름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었음에도 이제 감생심 여행은 커녕 불가피한 출장이 생겼을 때에도 친구에게 사정사정해 고양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고양이는 내 패션에도 큰 악영향을 미쳤는데, 검은색이나 남색 같은 짙은 색 옷을 입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남자가 검은색 남색을 빼면 대체 무슨 옷을 입을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더해 아침저녁으로 화장실을 청소해 주고, 사냥놀이를 해주고, 털을 빗어주고, 물을 갈아주고, 밥그릇을 씻어주고, 발톱을 깎아주고... 말이지 열하자면 끝이 없다. 녀석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녀석을 사랑한다. 녀석이 주는 불편함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원래도 집돌이였지만 녀석이 함께한 이후로 더더욱 집돌이가 되었다. 그전에는 집이라는 곳이 바깥세상으로부터의 피로와 고통으로부터 회피하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행복을 찾아 돌아오는 곳이 되었다. 녀석이 내 품을 파고들어 골골송을 부를 때,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 때, 나에게 몸을 치대며 애정을 표시할 때 그 모든 순간들마다 나는 행복해진다. 예전에는 가끔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녀석을 쓰다듬으며 고양이 간식 쇼핑을 한다. 쇼핑에 너무 집중하느라 과하게 쓰다듬었는지, 성질 더러운 녀석이 나를 깨물고 도망갔다. 언제부턴가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손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사랑한다,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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