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수있는마음 Sep 26. 2023

엄마와 아들,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여덟 살 너와 서른일곱 나, 길리에서의 선셋 라이딩

 

길리 여행 2일 차,


오전에 거북이와 한바탕 수영을 하고 숙소에서 뒹굴 거리다 해가 질 무렵 바이크를 끌고 나왔다.

길리에선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모두가 서쪽으로 간다.

아직 바이크 운전이 서툴러서 다른 자전거를 만나거나 마차를 만나면 무조건 멈춰버리기 일쑤였지만,

용기를 내서 우리도 선셋을 보러 가기로 했다.

사람이 가장 많은 항구 쪽을 지나 점점 서쪽으로 갈수록 길은 한적해졌다.

사람도 자전거도 마차도 드문드문이라 용기를 내서 속도를 내 달리기 시작했다.

비포장 흙길을 덜컹덜컹 달렸다.

온 신경을 바이크 운전에만 집중하며 다니다 한적한 길에서 조금의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울통불퉁한 흙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지뢰를 조심하라고 신나서 외치는 아들,

적당히 찝찝하며 적당히 시원한 바닷바람,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스쳐 지나가는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안녕, 들어오세요’ 서툰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의 호객행위마저...


행복했다

가슴이 벅차도록

파워 j인 나의 여행 계획에는 전혀 없던 순간이었다.

모두가 걱정했지만 아들과 둘이 떠나 온 내가 정말 기특했다.

그러다 문득

울컥 눈물이 났다.

아이와 둘이 이렇게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 또 있을까


남편이 있지만 없는(?) 나와, 아빠가 있지만 없는(?) 아들,

우리에게는 엄마와 아들 그 이상, 어떤 동지애 같은 것이 있다.

그런 아들과 나,

앞으로 남은 우리들의 시간 중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몸도 마음도 가장 가까운 시간이겠지.


너무나도 많은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을 본 나는 알고 있다.

특히, 남자아이의 사춘기에 대해서...

엄마와 아들의 그 험난한 여정을...

그래서 나는 

'우리 아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야' 라는 희망회로는 절대로 돌리지 않는다.


나는 이미,

매일 조금씩 마음을 먹고 있다.

멀지 않은 시간엔 분명 서로가 불만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내는 날도 오겠지.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만 내뱉으며 결국은 입을 닫아버리기도 하겠지.

너는 어쩌면 꽤 오랜 시간 더 이상 나를 보며 웃어주지 않겠지.

내가 너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면 나는 절망 속에 살게 되는 날도 있겠지.


그 모든 시간들을 견디는 힘이 지금 이 순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의 이 감정을 잊지 말아야지.

네가 정말 진심으로 미워질 때,

우리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때,

여덟 살 너와 서른일곱 내가

길리에서 선셋을 보며 함께 바이크를 타고 달리던

이 순간을 떠올려야지.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언젠가 엄마가 정말 미울 때, 네 속에 나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 차는 날이 올 때,

너도 나처럼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며

엄마를 한번 봐주면 좋겠다.

 

우리 앞으로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 보자 아들.

작가의 이전글 여전히 나는 배낭만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