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가짜회사 이야기_팀장의 몰락

이팀장의 좌천

by 가짜회사원

출근하자마자 이팀장이 나를 불렀다.

- 가짜님 저 좀 잠깐 봐요.


딱히 잘못한 일이 생각이 나지 않았던 나는 평소와 다른 느낌의 팀장을 졸졸 따라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 나 몸이 좀 안 좋아져서 휴직을 하려고 해요. 놀라지 마요.


최근에 이팀장이 피디에게 불려 다니며 이런저런 갈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떠나는구나. 휴직하면서 이직 알아보겠지.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든든한 투자로 여유 있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개발 마감일이 슬슬 다가오면서 결과물을 내야 하는 압박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중에 이팀장이 맡았던 일은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로 전문 영역이라 다른 사람이 참견하기 어려웠다. 당시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항상 야근으로 밤을 새우며 작업물들을 관리하는 이팀장을 능력자라고 생각하며 따랐다.


- 팀장님 이건 어떻게 해야 해요?

- 그거 계약직 선미님한테 물어보세요.

- 이거 파일 열람 권한 누구한테 있는 거예요?

- 그거는 계약직 민희 님한테 있어요.


그저 바빠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걸리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계약직 직원들은 이런 일이 나한테 오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어색하게 웃던가. 어처구니없어했다.


대충 파악된 상황은 이렇다. 이팀장은 프로젝트 초기 일이 여유 있을 때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결정했다. 자기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전문영역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는 그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법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팀장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관리자의 일을 계약직들에게 맡겨버리고는 계약직들이 퇴사하면 새로 뽑을 계약직 마저 그들의 추천으로 채우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구석자리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거창하게 두들기며 하루 종일 나오지 않는 이팀장은 어쩌다 자리를 나오면 계약직들에게 큰소리로 훈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누가 들어도 수준미달의 조언을 했고. 내용보다는 높은 음량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여기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데 급급해 보였다. 계약직 민희 님은 스트레스로 종종 하소연을 했다.


이런 상황은 개발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돼서야 한계를 드러냈다. 각각 다른 부서에서 만든 것들의 조립이 시작되었고 이팀장 본인의 전문분야라고 하며 몇 년간 진행했던 작업물은 모두 폐기처분이 되었다. 쓸 수 없는 상태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절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과물이 그저 잘못되어 있었다.


사고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이팀장은 병가를 내고 규모가 조금 작은 회사로 이직을 했다. 영문도 모른 체 파일 열람 권한을 받았던 계약직 민희 님이 정직원으로 뽑힌 회사로 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나간 것 만으로 신경을 끄고 살았다. 그 후 2달 뒤 희한한 소식을 접했다. 이팀장이 이직한 회사에서 좌천됐다는 소식이다. 역시나 했지만 너무 빠른 전개에 당황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이팀장은 프로젝트를 둘러보고는 신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임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피티자리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전해 듣던 우리는 동시에 탄식을 뱉었다.


- 아 너무 빠르다….


이미 이팀장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어설프게 추측해 보는 급한 피티의 이유는 이렇다.


1. 작은 회사라 너희 하는 일이 어설프다.

2. 전회사에서 그랬듯 나의 동굴을 만들겠다.

3. 잡다한 일들 하기 싫다.


그 급하게 진행된 피티에서 허점을 지적하는 질문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계약직이었던 민희 님이었다고 한다. 정직원이 된 후 프로젝트에 남다른 애정으로 헌신하던 민희 님은 이팀장의 피티에 조목조목 따져가며 오류를 지적했다.


좌천으로 결론난 이팀장의 피티는. 작은 회사로 이직하면 생길법한, 오만으로 빚어질 실수를 예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피할 수 있는 실수일지는 확신이 안 섰다.


몇 주 뒤, 삼겹살집에서 이팀장을 만났다. 우리가 소식을 들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팀장은 오랜만에 개발다운 개발을 해서 즐겁다고 말했다. 그저 아는 형이 된 이팀장의 나이는 나보다 3살 위다. 3년은 빠르게 흐를 것 같았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삼겹살집 사장님은 나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이팀장은 좋은 프로젝트를 만나는 게 최고라며 모두에게 이직을 권유했다. 이직을 당할지 선택할지 언젠가는 올 그날을 걱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회식은 내가 팀장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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