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차는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좋은 것 중에 하나 일뿐이다. 비싸면 통장이 빌 것이고 풀 옵션이라고 해서 그 기능을 다 써먹을 것 같지도 않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무거운 물건을 들고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는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본다. 운전을 17년이나 했으면서도 아직 무섭다. 운전면허증은 국가자격증 중에서 젤 잘 쓰고 있기는 하다.
이번에 새로 산차를 타고 친정에 갔다. 엄마, 아버지의 반응은 이랬다.
엄마 : 내 차보다 더 큰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나쁘지는 않네.
아버지 :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껍데기는 괜찮은 것 같네.
남편의 지인에게 중고차 매매장보다 좀 더 저렴하게 되려 오긴 했다. 여자들이 좋아는 인기 모델이라서 가격이 좀 나간다나 어쨌다나. 암튼 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제수씨 정비를 했으니 앞으로 10년은 더 탈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도 덧 붙였던 것 같다.
다음 주부터 바빠질 것 같다. 며칠 남지 않은 나의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은 하지만 계획은 세우지 않겠다. 변수도 많고 휴식기인데 즉석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좀 해 볼 예정이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가서 먹고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면 읽기도 하면서.
월요일에는 작은 아이 하교 후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시댁에 갔다.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다. 큰 아이 학교에서 시댁이 가까워서 하교 후 데리고 집에 가면 된다. 1시간 정도가 남아서 시간을 보낼 겸 얼굴도장도 찍었다.
큰 아이와 포토샵 학원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문 닫은 학원들이 많았다.
기왕 이렇게 나오김에 어머니 아버님을 모시고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머니 자장면 한 그릇 하실래요?"
"그러자."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오라고 말했다. 좀 피곤한 기색이 긴 했지만 오랜만에 함께 하는 외식이다.
싫을 이유는 없다. 아이들도 설레어 보였다.
바빠지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그전에 미리미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중식당에서 음식이 나온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장님이 자꾸 나에 눈치를 살피는 기분이 들었다.
어색한데 눈이 마주치면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습관대로 사진을 찍어 인스타나 글을 쓸 때 사용한다.
그렇다고 홍보처럼 여기가 어디다라고 딱히 쓰지 않는다.
음료수 2병과 자장면에 올려 먹으라고 계란 프라이도 서비스라고 주셨다. 단단히 오해를 하신 모양이다.
나올 때 맛있게 드셨냐고 물어보시고 상냥한 미소를 보내셔서 마음이 좀.. 찔리는 기분? 이 들었다.
다음 날 차에 벌레 시체들이 한가득 붙어 있어서 물티슈로 닦아 내는 것에도 한계가 느껴졌다.
차도 바꿨으니 새 마음으로 세차를 하러 다녀왔다. 실내 청소도 하고 기분도 좋고 차량 볼륨도 높였다.
극장 앞을 지나오다가 뭐 재미있는 게 있나 살펴봤다.
사랑의 하츄핑, 파일럿, 행복의 나라가 상영 중이었다. 엄마와 영화 본 지가 한 참된 것 같다.
영웅 이후로 극장을 함께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 파묘를 보고 싶다고 말씀한 적이 있는데 극장에서 내려온 지 몇 주가 지나 있었다. 프로젝트와 스크린을 엄마 댁으로 가져가서 같이 볼 예정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 중이다. 남편도 보고 싶다고 해서 시간을 맞춰야 한다.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요? 우리 내일 영화 볼까요?"
"뭐 볼만 한 거 있더나?"
"여러 가지 있던데 제가 예매할게요."
동생에게 전화해서 같이 보자고 했다. 얼마 전에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조정석 배우의 영화가 2개나 있다. 파일럿을 볼까? 행복의 나라를 볼까? 고민했다.
이선균 배우도 참 좋아했는데 아쉽다. 그래서 행복의 나라로 정했다. 조조할인을 받을 겸해서 아침에 첫 상영하는 것으로 정했다. 10시라서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아이들 학교 등교 시키고 엄마를 모시러 가면 된다.
아버지는 답답한 곳이 싫다고 한 번도 같이 가신적이 없다.
TV에 나오는 영화는 잘 보시면서.. 같이 가면 좋겠는데 너무 완강하시다.
영화 보러 가는 날
아침부터 괜히 마음이 설렌다. 엄마랑 동생이랑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
이리저리 옷을 거울에 비쳐보고 화장도 톡톡해주고 립스틱도 레드로. 마무리로 남편이 유럽 다녀오면서 사다 준 샤넬 No.5 향수로 마무리. 발거음이 가볍다.
엄마 집에 도착하니 아침 운동을 가신 모양이다. 일찍 온다고 말을 하긴 했는데 엄마의 아침 루틴은 밥 먹고 빨래 널고 집 근처 못을 한 바퀴 도시거나 낮은 산을 다녀오시는 거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습관 같은 루틴. 아버지도 운동을 가시는데 5시에 운동을 다녀와서 식사를 하신다.
몸이 아프시고 나서 운동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걷기도 힘들어하셨지만 이제는 1시간씩 걷다 오신다.
다시 한번 영화 보러 가자고 해봤지만 거절당했다.
동생도 조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고 오는 중이었다.
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9시를 넘어섰다. 마침 전화를 해보려고 하니 엄마와 동생이 동시에 도착했다. 동생 차를 타고 극장으로 고고씽~
평일이라서 그런지 극장은 한산했다. 온라인 예매를 하고 오다 보니 예전의 그 감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줄 서서 표를 사고 직원의 친절했던 응대, 고소한 팝콘 향기, 왁자 지껄 했던 사람들.
휴대폰을 들고 바로 상영관으로 입장하면 되는 것이 아직은 낯설었다.
며칠 전에 큰 아이와 영화를 보러 왔을 때는 그래도 상영관 입구에 사람이 서서 구매했는지 확인이라도 했었다.
오늘은 사람이 없다. 관객도 없어도 너무 없다.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은 파일럿을 보러 온 것 같다.
4관 입장인데 문도 안 열려 있다. 들어가도 되나? 문을 당겨 보지만 안 열렸다.
상영하는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다시 당겨 보니 열리긴 했다. 관객은 우리 셋 뿐이다.
추울 거라고 작은 담요도 챙겨 왔는데 에어컨도 안 나오고 불은 켜졌다.
10시 갑자기 화면이 켜지고 에어컨이 가동된다. 아무도 없으니 전체 대관한 기분으로 영화를 관람한다.
난 영화에 몰입하고 싶은데 엄마는 자꾸 이야기를 한다. 엄마 쉿~ 하니까 아무도 없는데 어때? 하신다.
엄마 처녀 때 남자친구랑 영화 보러 왔다가 극장에서 졸아서 너무 부끄러워 그 남자를 다시 안 만났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일하고 와서 피곤하다 보면 졸 수도 있지 그걸로 끝내 다니.. 순수하셨구먼 하고 웃었다.
이선균 배우 목소리가 너무 좋다. 조정석 배우도 익살스러운 모습을 많이 봤는데 진지한 역할도 잘 어울렸다.
행복을 꿈꾸지만 행복이 없는 나라..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 암살에 가담한 강직한 군인 박태주, 법정은 옳은 놈 그른 놈을 가라는 곳이 아니라 이기는 놈 지는 놈을 가리는 곳이라고 말하는 돈을 좇는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 후반 부로 갈수록살리고 싶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다.
대통령 암살 그 이후 이야기. 감청과 쪽지 재판. 속전속결로 이루어지는 사형 집행.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왔다. 남겨질 가족에 마음이 아프다.
조정석 배우가 맞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엄마는 아프겠다면 나 같은면 변호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뭔가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12시가 훌쩍 넘어 버려서 새로 생긴 음식점에 밥을 먹으러 갔다. 엄마는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검색하다 솥 밥집이 있어 그곳으로 왔다.
가격은 착하지 않다. 비주얼은 나쁘지 않다. 맛은 고만 고만하다. 전복 솥밥과 고등어구이, 계절 솥밥을 시켰다. 전복이라서 다 먹었다면 엄마는 별로라고 하셨다.
놀면 시간이 잘 간다 더니 눈 깜박할 사이 훅 지나간 것 같다. 다이소에 들러서 필요한 것을 사고 엄마를 모셔다 드렸다. 엄마 집 근처에 한옥 카페가 있다. 생긴 지는 좀 되었는데 가 보지 못했다. 아이들 데리고 와서 가보자고 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데리고 엄마를 모시고 온 한옥카페.
손질 잘된 잔디가 깔려 있고 오래된 집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느낌 나름 멋스럽게 잘 어울렸다.
우리는 각자 스타일 대로 주문을 했다. 뱅쇼, 딸기 스무디, 블루베리 스무디, 아포카토, 블루베리 크림 크로와상. 가격은 거의 4만 원 돈이다. 이 정도는 사 줄 수 있는다며 카드를 내셨다.
자리에 앉아서 카페 구경도 하고 통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과 고양이.
작은 아이는 고양이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넌지시 이 돈이면 차라리 맛있는 걸 먹으러 가지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