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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Apr 03. 2024

너도, 봄

봄은 늘 한꺼번에 온다. 회양목과 함께

뜻밖의 만남에 놀라고 반가울 때가 있다. 회양목 꽃이 그렇다. 회양목은 도로나 화단을 경계 짓는 생울타리 나무로 심고 낮은 키로 가지치기가 되어 무리 지어 심는데도 눈길을 끌지 못한다. 더욱이 꽃잎이 없는 데다 없는 듯 얇고 작은 꽃받침 황록색 암술과 수술만으로는 화려하지 않고 잎과 같은 색 때문에 설마 꽃인가 싶어 놓치기 쉽다.

     

구수한 꽃향기나 웽웽거리는 벌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한참 둘러보고서야 너였구나 하게 된다. 없을 듯한 꽃과 향기에 놀라고 그런 꽃에 몰려드는 나비벌, 이름 모를 여러 곤충이 반갑다.


다른 꽃들은 꽃가루받이 매개곤충을 불러 모으기 위해 화려함으로 치장하고 꿀 안내선이나 내려앉기 편한 구조의 꽃잎 같은 편의 장치를 제공한다. 그런데 회양목은 무슨 믿음으로 이런 꽃을 피울까?


회양목은 우선 화려한 꽃잎을 만드는 대신 많은 꽃을 피우고 충분한 꿀과 꽃가루를 준비한다. 멀리 있는 곤충을 유인할 수 있을 정도로 향기도 은근하다. 또한, 매화처럼 다른 꽃이 아직 피지 않는 이른 시기에 꽃을 피우고 개화기간도 10일 이상으로 짧지 않다. 이 정도면 겨울을 견디고 깨어난 배고픈 곤충들을 유혹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전략이다. 밀원식물로 분류하여 몇몇 지역에서는 일부러 심기도 한다.


회양목은 키 큰 나무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작은 나무도 아니다. 동강할미꽃을 보러 영월에 갔다가 오른 백운산에서 본 회양목은 그동안 울타리 경계나무로만 보아온 키 작은 나무와는 달랐다. 우람하게 크거나 굵직하진 않아도 3~4m를 훌쩍 넘고 깎아지른 벼랑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는 제법 늠름한 모습이었다.


생활 주변의 회양목은 크게 자란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해마다 가지를 잘리는 데다 워낙 느리게 자라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보다 더디 자라는 만큼 목질이 단단하다. 「궁궐의 우리 나무」에서는, 대부분 나무는 물을 운반하는 물관세포는 크고 나무를 지탱해 주는 섬유세포는 작은 데 비해 회양목은 두 세포의 크기가 거의 같아서 목질이 곱고 균일하고 단단하기까지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호패, 도장, 머리빗, 장기알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회양목 이름은 질이 노랗고 버드나무를 닮았다는 의미로 황양목(黃楊木)으로 불리다 회양목으로 바뀌었다거나 석회암 지대인 강원도 회양 지역에 많이 자라 지역 이름을 가져왔다는 설명도 있다. 내가 회양목을 자생지에서 처음 본 백운산이 위치한 곳도 석회암지대이다.

    

회양목을 보러 나왔다. 아파트 화단 언저리에 흔히 있으니 작정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오늘은 회양목이 대상이다.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거리에 이르자 벌의 날갯짓 소리도 들렸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들이 분주하다. 벌은 일정 온도가 되어야 활동하는데 아침햇살이 좋아 활동을 이미 시작했다. 가까이 가니 개미와 이름 모를 파리류와 등에류도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수선스럽다. 봄은 누구에게나 한꺼번에 찾아온다. 소란스럽게 다. 그래야 봄이다. 그래서 좋다.


부전나비가 할랑이며 날아왔다. 한발 물러나 잠시 기다려야 한다. 나비는 도망치이외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어서 꽁무니에 믿는 구석이 있는 벌보다 경계심이 많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을 옮겨 다니며 멀리 가지 않고 꿀을 땄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스마트폰을 가까이 좀 더 가까이 가져가며 초점을 맞추었다. 나비가 날아갔다. 숨죽이는 순간도 지났다. 사진 찍을 수 있게 기다려 줘서 고마워 푸른부전나비야~


<푸른부전나비, 개미, 파리류, 금파리, 꿀벌, 쌍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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