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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뮤연뮤 Nov 18. 2023

14. 연극 <벚꽃 동산> 리뷰

언젠가 쓰러지고 마는 것,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포스터 - 국립 극단

2023.05.04 ~ 2023.05.28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백지원, 이승주, 정슬기, 이다혜, 강신구, 윤성원, 곽은태, 하지은, 송철호, 홍지인, 박상종, 장석환, 박진호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사랑스러운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4. 류보비와 로파힌

5. ‘벚꽃 동산’과 피르스

6. 마치며     


인물 소개

라네프스카야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류보비) 여지주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 (로파힌)

바랴  라네프스카야의 양녀. 24세

아냐 (아네치카)  라네프스카야의 딸. 17세

가예프 레오니드 안드레예비치 (가예프)  라네프스카야의 오빠

트로피모프 표토르 세르게예비치 (폐차)  대학생

피르스  하인. 87세     


1. 들어가며

우리는 흔히 연극하면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못지않게 대표적인 사람이 있다. 바로 안톤 체호프로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 동산>이라는 4대 장막극을 남긴 작가다. 그는 인생을 정직하게 바라봤고 체호프가 남긴 작품들은 시가이 지나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이 됐다.     

사진 - 국립극단


2. 스토리 라인

멀리 떠나 있던 라네프스카야 류보비 안드레예브나(류보비)는 오랜만에 옛날에 자신이 살았던 저택으로 돌아온다. 저택을 오래 떠나 있었어도 모든 게 그대로였고 벚나무로 가득한 벚꽃 동산도 그대로였다. 추억에 빠지는 것도 잠시, 류보비를 기다리는 건 가문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현실이었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려도 류보비는 과거의 부유했던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있어 돈을 빌려주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한다.     


로파힌은 체리 농원을 없애고 여름 휴양지로 만들어 부채를 해결하고 수입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벌목을 원치 않는 류보비는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심각한 분위기는 흐르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벚꽃 동산은 경매에 넘어가고 이를 농노 출신이었던 로파힌이 낙찰받는다. 결국 체리 나무는 잘리고 류보비와 가족들과 주변인들은 저택을 떠난다. 하지만, 피르스만이 모두가 떠나고 멈춰버린 저택에 홀로 남겨진다. 모두 피르스가 저택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3. 사랑스러운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라네프스카야는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은 지주다. 그녀는 아들이 익사하고 남편이 자살했던 저택을 떠났었고, 5년 만에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벚꽃 동산>이 시작된다. 지주이자 귀족이라 부유한 출생이지만 당장 그녀에게 닥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나라는 이미 많은 변화를 거친 후였고 류보비도 낭비로 인해 빚을 진 상황이었다.     


이름대로 사랑스러운 그녀지만, 다소 현실에서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말로 현실을 너무 모르는 이였다. 그녀는 지주이니 선택을 내리고 결단해야 하는 입장인데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래서 <벚꽃 동산>의 작중 분위기는 자칫하다간 지루해질 수 있을 정도로 평화롭다.     


류보비 그녀 자신부터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불안과 초조함을 느낄 텐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걱정하지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들지도 않으니 관객이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상과 환상 속에만 있어 현실을 모르기에, 현실에 찌들지 않아 사랑스러울 수 있다.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  잠도 잘 자고. 내 집을 내가세요, 야샤. 갈 시간이 됐어. 내 딸, 곧 또 만나자...... 난 파리로 간다. 거기서 야로슬라브의 할머니가 영지를 다시 사라고 보내 주신 그 돈으로 생활하게 되겠지. 할머니도 건강하시기를! 하지만 그 돈도 오래가지는 못할 거야.             - <벚꽃 동산> 

류보비의 사랑스러움은 그녀가 현실을 모르고 시대에 적응해가지 못하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나타낸다. 국립극단에서 올린 <벚꽃 동산>에서 이들이 지내는 저택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날이 춥더라도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따뜻한 유리 온실을 연상케 하는 무대 세트는 추운 러시아에서 따뜻하고 안락하게 살아왔던 류보비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 따뜻함 속에 보호받고 살아 그녀는 현실을 모르고 인생의 고단함에서 오는 구김살이 없다.     

@yeonmyu_0113

4. 류보비와 로파힌

<벚꽃 동산>에서 류보비와 로파힌은 아주 명확하게 다른 차이점이 있어 비교 가능한 인물들이다. 원래 고귀한 태생이었던 지주 라네프스카야(류보비)와 농노 출신이었던 로파힌은 태생부터 다르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두 인물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류보비는 지주지만 청산해야 할 빚이 많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반면 로파힌은 농노 출신이었으나 세상의 흐름을 알고 노력하여 마지막에는 류보비의 벚꽃 동산을 낙찰받을 만큼 많은 부를 축적한다. 두 인물은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뒤떨어진 귀족과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이러한 대조는 새로운 계급, 달라진 시대를 나타낸다.     


한편으로는 류보비를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고귀한 가치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로파힌이 자신의 출신에 대해 신경 쓰는 부분과 그는 자본주의를 대표하기 때문이기도 해서다. 아마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되어서라 생각해 본다.      

로파힌 -  농부였던 아버지는 일주무식의 천치였습니다. 공부를 시켜주지도 않았고, 술에 취해 나를 때리는 게 전부였지요. 그것도 꼭 몽둥이로 말입니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로 바보 천치예요. 아무것도 배운 게 없고, 글씨체도 지저분하지요. 글을 쓰면 돼지가 지나간 자국 같아서 남 보기가 창피할 정도예요.                                                                    - <벚꽃 동산>

결국 돈 때문에 벚꽃 동산은 다른 이에게 넘어가고 벚나무는 베어진다. 고귀한 것도 없애는 자본주의, 하지만  그 가치가 고귀하더라도 시류에 맞지 않다면 꺾일 수밖에 없다로 귀결된다고 본다.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오, 내 소중한, 정답고 아름다운 나의 동산! 나의 삶, 나의 청춘, 나의 행복이여, 안녕...... 안녕!                                                            - <벚꽃 동산>

끝내 류보비는 벚꽃 동산을 팔라는 로파힌의 조언을 듣지 않아 아끼던 벚꽃 동산을 잃고 저택을 떠나고 로파힌은 벚꽃 동산을 가진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5. ‘벚꽃 동산과 피르스

피르스  오래 살았죠. 집에서 저를 장가보낼 무렵, 주인마님의 선친께서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농노 해방령이 내렸을 때에는 제가 벌써 우두머리 하인이 되어 있었습죠. 그때 저는 해방을 마다하고 나리 댁에 남았어요. 그땐 마냥 즐거웠던 게 기억납니다. 왜 그런지도 모르면서 그저 즐거웠어요.
로파힌  옛날엔 퍽이나 좋았지. 두드려 맞는 건 확실히 보장되었으니까.                   - <벚꽃 동산>

류보비가 적응하지 못하는 귀족들의 대표지만, 피르스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신분제가 폐지 됐음에도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 농노 출신 로파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과거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저택이 옛날 그대로와 똑같다는 말처럼 피르스도 그대로다. 이런 피르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마지막 엔딩에서다.          

피르스  잠겨 있네. 가 버렸어... 나를 잊어버리고 갔네... 괜찮아...... 여기 앉아 있지 뭐...... 레오니드 안드레예비치는 분명 털외투가 아니라 보통 외투를 입고 가셨을 텐데...... 내가 보살펴 드리지 못했으니...... 젊은 사람들이란! 인생이 흘러가 버렸어,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눕자...... 이젠 기운도 없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에이, 이놈아...... 등신아!                           - <벚꽃 동산>

모두가 저택을 떠날 때, 모두들 피르스를 잘 모셔 줬다 생각하지만 그는 사실 소파 밑에 있었다. 벚나무가 베이자마자 흩어지는 그들의 결속력이 약해 아무도 그가 거기 있는 줄 몰랐다. 사람들 모두가 떠나고, 이제 시간과 생명이 멈춰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저택처럼 피르스도 멈춰버린 것이다. 쓰러진 벚나무처럼 피르스도 쓰러졌다. 의미가 없어진 존재의 말로다. 혼자가 된 피르스에게 벚꽃 잎이 고요히 내린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없다.     



6. 마치며

<벚꽃 동산>은 보통 갈등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대다수의 작품과는 다르게 큰 갈등이 없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류보비를 좀 관조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어 안타깝다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오히려 자기 것이 아닌 로파힌이 더 열심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로파힌과 피시크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게 행복한 미래가 있을까?     


영원한 건 없듯이 아름다운 꽃을 흐드러지게 폈다가 졌고, 벚나무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웠던 류보비의 모습은 과거가 됐다. 이런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화무십일홍

@yeonmyu_0113

* 본문에 인용된 <벚꽃 동산> 문구는 을유문화사에 2012년 6월 25일 발행한 <체호프 희곡선>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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