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그린 작품
2023.06.13 ~2023.09.03
드림아트센터 1관
홍컴퍼니
이지숙, 최수진, 제이민, 김종구, 윤석원, 박영수, 임찬민, 김주연, 김이후, 진태화, 안지환, 임진섭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무대 연출
4. 변동림과 김향안
5. 자존감 높은 사랑
6. 나오며
사랑은 몇 세기가 지나도 사람들이 항상 관심 가지는 주제다. 그리고 예술과 사랑은 흔히 봐온 이야기이다. 거기에다가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설정이 추가해도 별로 개성적이진 못하다. 왜냐하면 그런 작품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다만 보통 예술가의 시선에서 사랑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승화한 내용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변동림은 어느 남자와 사랑을 했다. 건축학을 전공한 남자는 머리가 비상했고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문학으로 가까워지고 사랑을 했다. 남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싶었고 변동림은 그 뜻을 응원해준다. 남자가 먼저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녀도 그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지만 남자는 얼마 못 가 사망한다. 향년 26세, 타지에서 객사한 문학인 이상이었다.
이상을 떠나보낸 동림에게 새로운 사람이 찾아온다. 이상처럼 예술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김환기였다. 동림은 그에게서 두 가지를 받는다. 하나는 그의 사랑, 다른 하나는 이름이었다. 새로운 사랑과 함께 김향안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시작한다.
그녀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이상의 뜻을 지지해준 것처럼, 세계에서 자신의 예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고 싶은 김환기의 꿈을 응원한다. 그래서 프랑스로 건너가 화가로 활동할 수 있게 발판을 닦는다. 덕분에 김환기는 세계적인 화가로 활동한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이별로 향안은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들 모두가 떠났지만, 완전한 결별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남아 곁을 지키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은은하다. <데스노트>처럼 특이하거나 <웃는 남자>처럼 동화적이고 화려한 무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곡선을 많이 사용했고 무대 벽에 비 내리는 날,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인해 물결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김환기 작가의 작품 <우주>를 형상화하였다. 예술은 남은 라흐 헤스트를 나타내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또 <라흐 헤스트>는 변동림, 김향안 이라는 여성의 하나의 이야기가 주이지만, 사실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변동림 – 이상, 김향안 – 김환기 구성이다. 동림과 향안 일적 때를 왔다 갔다 하며 진행한다. 다만 변동림이 김향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해 관객의 혼란을 야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동림은 환기를 만나며 향안으로 살아간다. ‘향안’이라는 이름은 환기에게 받은 이름으로, 그에게 어릴 적 이름이었던 ‘향안’을 달라고 동림이 원한 것이었다.
이상과 살 때는 변동림, 김환기와 살 때는 김향안이던 그녀는 달라진 이름처럼 김환기와의 삶은 이상과 살 때의 삶과 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빨리 떠나보내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결같고, 자존감 높은 사랑이 현실에서 열매를 맺은 것이다.
<라흐 헤스트>는 작중 이름을 선물 받는 장면이 있으나, 변동림과 김향안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으면 다른 사람처럼 여기게 진행된다. 아마도 일부러 노린 것일 수도 있는데 ‘김향안’이라는 이름을 받는 행위는 괴로웠던 과거를 다 잊는 것보다는 다른 의미로 보려한다.
새 이름을 가지는 건 보통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생명은 태어나면서 이름을 가지고 존재를 정의하는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환기와의 시작은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기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먼저 이상과의 사랑을 무작정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기억을 지울 순 없다. 그때 한 사랑이 남아있다. 사람은 언제까지고 죽은 사람만을 위해 살 수 없다. 이상을 지우는 게 아니라 한 곳에 두고 환기와 같이 인생이란 길을 마저 걸어간 것이다. 떠나는 것이 지우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도 다름없다.
이상과의 생활이 실패한 건 아니지만 성공했다고 하기에도 어려웠다. 하지만 틀렸다곤 할 수 없다. 변동림과 김향안으로 나누어도 결국 한 사람이다. 사랑한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이상과의 사랑한 흔적이 환기와의 사랑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변동림과 김향안의 연애사는 파격적이면서 헌신적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다, 사랑은 베풀수록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혼자 하는 사랑은 힘 빠지게 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 헌신적 사랑은 자신이 선택한 상대에 대한 믿음과 높은 자존감에서 우러나온 것일 것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이는 사랑 받고자 하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이며, 자신의 가치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서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사랑을 주려면 줄 사랑이 있어야 하고, 주고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라흐 헤스트> 속 동림과 향안은 그런 인물이다.
동림과 향안에게 후회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작성자는 그리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주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녀의 상대도 그녀를 닮아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배우자가 바뀌고,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배우자가 먼저 사망해 결말은 같을지언정 과정은 달랐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이상과 환기를 향한 사랑의 방식이다.
<라흐 헤스트>가 예술가의 사랑을 다룬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은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가를 내조한 인물을 주인공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녀 또한 수필가이다) 공연 예술계에 여자 인물의 수가, 그 역할이 남성만큼 자유롭지 않다는 현실에 이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불호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작품에서의 자존감 높은 사랑이 무엇보다도 그녀를 가치있고 빛나게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남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란 점이다.
사랑은 특정한 형태를 지닌 게 아니라서 사랑 자체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한 흔적은 남는다. 온몸으로 상대를 사랑한 그녀에게도 사랑한 흔적이 남았다. ‘라흐 헤스트’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그녀 곁을 상대가 남긴 예술이 남았다. 그러니 외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