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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미 Jul 01. 2023

선생님, 저희 아빠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연휴 첫 날, 제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모처럼 긴 연휴를 맞이한 2019년의 어느 날, 아침 일찍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 때 불현듯 진동이 울렸고 뜬금 없는 문자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교범이(가명).



작년에 졸업하여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이 된 교범(가명)이는, 나와 컵스카우트 때문에 알게 되었다.

컵스카우트 담당 교사였던 나, 그리고 컵스카우트 대원이었던 교범이. 활발한 성격의 교범이는 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나와 친해졌고, 이따금 퇴근하는 날 졸졸 따라오며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이것저것 털어놓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도 몇 차례 학교로 찾아오던 아이. 몇 달 전에도 심심했는지 카톡이 와서 연락을 하던 도중, 갑자기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며 응급실에 간다고 하여 날 놀라게 했었다.



그런데 연휴가 시작된 날 아침, 갑자기 그 아이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처음엔 '얘 또 심심한가보네'하고 답장을 미룰 생각이었다. 그런데 팝업으로 보인 문자 내용은 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으켜세웠다.




[저번에 아빠 입원한거 병생활하시다가 오늘 새벽아침 3시 30분에 돌아가셨어요]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하지? 전화를 하는 게 좋을까?

고작 교사 경력 4년차밖에 안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 친한 선배교사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선배는 일단 교범이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고,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교범이의 목소리는 내 예상보다 훨씬 침착했다. 하지만 괜찮냐고 묻는 내게 아이는 "아니요.."라고 답하며 이내 울먹였다.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첫 날은 가족을 위한 날이니까, 왠지 나를 기다리는 것 같은 교범이를 위해 다음 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사실 가기 전부터 민이 많았다. 아직 나도 부모님을 여읜 경험이 없는데, 심지어 장례식장을 간 적도 많지 않은데. 이런 내가 혼자, 그것도 '선생님'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아빠를 보낸 제자를 잘 위로할 수 있을까? 먼저 남편을 보낸 어머님을 위로해드릴 수 있을까? 혹시나 실수를 하진 않을까? 중학교 1학년이 견디기엔 그 슬픔의 무게가 너무나 클텐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온갖 걱정과 생각을 하다 우선은 아이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단 생각에 얼굴을 보면 전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 속 말들을 하나씩 편지지에 적어내려갔다. 교범이와 나의 나이 차이는 고작 13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별 거 아닌 13살 차이지만, 그래도 교범이에게 나는 선생님이니까. 어른이니까. 나도 아직 많이 어리지만 그런 나보다도 훨씬 어린 중학교 1학년 제자를 위해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리고 치킨 한 마리 사먹을 수 있는 돈도 봉투에 함께 담았다.


편지를 쓰면서도 내 말들이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의심과 걱정이 컸지만, '진심 어린 마음은 반드시 전해진다'는 생각만 하며 편지를 썼다. 그저 '힘내', '괜찮아', '파이팅'이라는 말론 해결되지 않을 슬픔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저녁 5시가 넘은 시각,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부의금을 넣고 조문을 하러 들어가려는데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니 입관 중이었다. 교범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싶어 장례식장 문앞에 서있는데 때마침 어머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범이가 올라왔다.

입관을 한 직후라 모든 가족들이 펑펑 울고 있었고, 교범이도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눈물을 닦다가 문앞에 있는 날 보자마자 교범이는 와락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곤 엉엉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나름 위로의 말들을 미리 생각하고 갔는데 막상 아이가 안겨 울자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말 없이 꼭 안고 다독였다.

조문객이 너무 많이 울면 민폐라고 들어서 눈물을 꾹꾹 참았는데 울고 있는 아이를 안은 순간에 눈물을 참기란 쉽지 않았다.


겨우 진정하고 헌화를 하고. 어머님께 인사 드린 후 교범이를 다시 안아 주었다. 안 울고 싶었는데.. 울어 버려 미안했다.



밥을 먹으며 교범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내 앞에 앉아 떡도 먹고, 이야기하던 중 살짝이라도 웃는 모습을 보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편지를 전해주었다. 편지 쓰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미리 생각한 위로의 말들을 말로는 거의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삼십 분 정도 지났을 즈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서 어머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님께서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선생님께 부담을 드렸을까봐 죄송하다고 했다. 교범이가 선생님과 앞으로 쭉 연락하고 지낼거라고 했다며, "이제 귀찮으셔서 어떡해요~" 웃으며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그래도 어머님께서 웃으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와주셔서 교범이에게 큰 위로가 됐을 거라며 하필 입관 후에 오셔서 선생님도 괜히 우신 것 같아 죄송하다 하시는데 오히려 난 '내가 참 좋은 타이밍에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교범이에게 너무 큰 슬픔이 온 순간에 내가 안아준 것이었을 테니.




담임도 아니고 그저 컵스카우트 동아리 활동으로 인해 맺어진 인연인데 그런 날 믿고 의지하며 자신에게 큰 슬픔이 왔을 때 날 떠올리고 연락해 주었다는 사실에 교범이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한편으론 더 잘 위로해주지 못한 나의 서투름 때문에 미안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참 별로라고 생각하며 이 직업을 계속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하던 때였는데, 이 일로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의 의미에 대해,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며 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제자에게 첫 편지를 쓴 날. 상주가 된 제자를 위로한 날.

이런 경험은 앞으로 많지 않길 바라지만, 이 날은 내게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교범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우리는 지금도 이따금 카톡을 하며, 안부를 묻는다.

2년 뒤, 교범이가 성인이 되면 술 한 잔 사주고 싶다.

잘 커줘서 고맙다고, 정말 대견하다고. 성인이 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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