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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미 Sep 05. 2023

자식은 안되고 개자식은 돼요


우리 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있다.

미쿡에서 온 87년생 원어민 Bro(가명)


작년에 영어 전담 교사를 하는 동시에 원어민 교사 관리를 포함한 영어업무를 맡아서 Bro와는 빠르게 친해졌다. 늘 polite한 선생님들만 보던 Bro에게 "Hey~~ 36살 미쿡옵하~~~"하며 손인사하는 나는, 약간 돌아이 같지만 친근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고 어느 새 서로를 Best friend라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무려 10년을 산 Bro의 한국어 실력은 굳이 설명하기 입 아플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선생님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듣기 말하기 모두 완벽했다.

아, 몇 가지 오류만 빼면.



교사라는 직업에서 온 병인건지.. Bro의 한국어 중 잘못된 표현은 내 귀에 쏙쏙 박혔다. 그리고 '저게 찰나의 실수인지, 잘못 배운 오개념인지' 파악하기 위해 처음에는 오류를 정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월 간의 대화 끝에 마침내 그가 잘못된 한국어를 올바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을 확인한 나는,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티칭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오후, 다음 날 수업에 대한 회의를 하던 중 Bro의 오류가 또 다시 나타났다.


"음.. 이 게임은 지난 번에 한 거랑 비슷하고, 이 활동은 조금 어려운 것 같은데..."

"흠.. 구뤔 우리 이제 어떡하자~?"


잡았다, 놈.


Bro는 종종 '어떡하지?'라는 표현을 '어떡하자?"라고 했고, 나는 드디어 오류를 수정해 줄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바로 지금이얏!


"Bro, 내가 언젠가 말해야지 생각했던 건데.. '어떡하자'가 아니라 '어떡하지'야."


"으응(절레절레)~~ 그 뜻 아니고~ 나는 '우리 어떡하자~?' 뜻한건데?"



이게 뭔 소리인고 하니,

그동안 Bro는 '어떡하지'라는 표현은 혼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쓰는 것이고,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는 '어떡하자?'가 맞다고 알아왔단 것이다. 영어로 따지면... 'Let's~' 뭐 이런 느낌?


와우... 이거 꽤 설득력 있는데..?

근데 Bro. 안타깝게도 '어떡하자'라는 말은 이 세상에 없어.


진실을 알게 된 Bro놀라면서도 절망적인 표정은 팩트를 괜히 전해줬나 후회가 될 정도였다.


"Oh my god..! 나 한쿡 10년 살았눈뒈 그동안 아무도 나한테 어떡하자 틀렸다고 말 안했쥐"


그러게...ㅎㅎ; 왜 아무도 안 알려줬지^^?

아마 다들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고쳐주기 귀찮았던 게 아닐까?...



어떡하자 사건 이후, Bro는 자신이 하는 말에 또다른 오류가 있지 않나 조심스러워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의 한쿡어는 거의 완벽했다. '거.의.'



사실 내가 진.짜 고쳐주고 싶던 오류는 "자식"이었다. 학교에 있으면 정말.. 금쪽이라 불리는 애들이 많다. 티비에 나오는 금쪽이를 보면 모두들 '저런 아이 키우는 것 참 힘들겠다' 하는데 요즘 학교에는 그런 금쪽이들이 반마다 최소 한 명씩 있다.

 

우리 학교 원어민 교사는 3~6학년 모든 반의 수업을 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반 금쪽이를 경험하게 된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Bro는 금쪽이를 '자식'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면, "으... 저 boy 완전 자식이쥐.", "그 class에 자식 너무 많쥐." 같은 식으로...



물론 무슨 말인지 백퍼센트 알아듣지만,

나는 직업병을 세게 앓고 있는 8년차 교사.

언젠가 저 잘못된 표현을 고쳐주리라 다짐했는데, 하필이면 뭐라고 설명해야 좋은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 칭을 하게 되었다.


역시나 그 날도 Bro는

"어우, 걔 완전 자식이쥐~"라고 했고, 나는 말했다.


"Bro, 나 할 말 있는데. '걔 자식이지'라는 말은 잘못됐어. 그런 표현은 없어."


"What?"


후 역시나 이번에도 놀란 토끼눈의 Bro


"어... 그러니깐... 그 '자식"이라는 게 원래 부모-자식 할 때 그 자식이라는 뜻이거든? 근데 뭐 누구 욕할 때도 자식이라고 하긴 하는데.. 음.."



하.. 역시.. 준비가 다 안된 상태로 설명을 시작한 내가 잘못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을 했으니 끝은 봐야지.



"그니깐.. 음... 아..! 'He is 자식' 이라는 건 한국어로 말이 안돼! 아, 근데 He is 개자식 이건 말이 돼!"


오마이갓. 내가 지금 뭐라는 거니.

이건 설명을 하는 것인가. 혼란을 주는 것인가.

역시나 Bro의 얼굴은 점점 더 물음표로 덮여갔다.


"'걔 완전 자식이야' 이건 없는 말이야. 근데

 '걔 완전 개자식이야' 이건 말이 돼! 어, 왜냐면...

 음... 그냥 외워 !!!"


하.. 미안해 Bro

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봐



후로도 한참동안 Bro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끝끝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자식은 안되고 개자식은 된다는 말에 더 심한 욕이라 되는 거냐는 Bro에게 나는 결국 사과와 함께 설명 못하겠으니 그냥 외우라고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혹시

이거 설명할 수 있는 분..?

댓글에 남겨주시면 제가 다시 한번 도전해볼게요.

한국어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여러분

세종대왕님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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