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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애나 Jul 22. 2023

캘리포니아 핫걸 필수 교양, 스몰토크


미국 캘리포니아 유학 생활의 첫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온 겨울, 나는 공항버스를 타기 전 인천공항에 있는 한식집으로 향했다. 



앞에 사람이 4~5명 정도 있는 줄에 합류해 메뉴판을 보며 김치찌개를 먹을까 된장찌개를 먹을까 고민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맛있는 걸 주문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김치찌개 반상 하나요." 

"된장찌개 단품이요."

"떡갈비 반상 하나요."

"비빔밥 단품으로 주세요."



드디어 온 내 차례. 주문하려는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안녕하세요."


그러고 뭔가 어색한 잠깐의 정적. 


"김치찌개 반상 하나요..." 



이걸 읽고 있는 사람들은 저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김치찌개 반상 하나요"가 주문할 때 엄청 이상한 말은 전혀 아니니까. 아마 주문을 받던 직원도 이상함은 못 느꼈을 것이다. 



근데 저 말을 한 당사자인 나는 안다. 내가 말한 저 "안녕하세요"는 "안녕하세요, 김치찌개 반상 하나요"로 이어진 하나의 문장이 아닌, "안녕하세요." 그리고 "김치찌개 반상 하나요."였다. 내 "안녕하세요"와 주문하는 문장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문장이었다는 뜻이다. 



내가 했던 "안녕하세요"는 "Hi, how are you today?"가 한국어로 번역된, 일종의 스몰토크의 개념의 안녕하세요였다. 누가 한국에서 김치찌개를 시킬 때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가 어때요?"를 먼저 물어본단 말인가? 그날의 안녕하세요는 나만이 아는 살짝 웃기고 부끄러운 일화다.



캘리포니아에서 한 학기 있었던 주제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렇게 캘리걸의 자아가 튀어나온다. 








미국의 스몰토크(small talk) 문화에 대해서는 들어본 사람들이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몰토크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로 말을 걸고 짧게 안부와 일상을 물어보거나 칭찬을 하는 문화다. 스몰토크가 가장 흔하게 적용되는 곳은 식당, 카페, 택시 등이다. 예를 들어 서브웨이에서 주문을 할 때 우리나라는 직원이 바로 메뉴부터 물어보는 반면 미국에서는 직원이 "Hi, how are you doing today?" (안녕, 오늘 하루는 어때?)부터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도 "I'm good! How is your day so far?" (나는 좋아! 너는 오늘 하루가 지금까지 어때?)라고 대답하고 다시 물어봐주면 된다. 



카페나 식당이 아닌 경우에도 스몰토크가 시작될 수 있다. 내가 길을 걸어가던 중 갑자기 지나가던 옆 사람이 "I like your outfit!" 이런 칭찬을 하고 갈 때도 있었다. 그게 스몰토크로 발전이 될 때도 있고 그냥 칭창만 한마디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이런 칭찬도 처음 보는 사람이 짧게 안부를 물어보는 느낌과 비슷해 스몰토크의 일종으로 분류한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생활을 처음 해보았기 때문에 미국은 원래 다 이 정도의 스몰토크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저번 겨울 뉴욕을 처음 방문하고 그게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알고 보니 이런 스몰토크는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특히 더 발달된 문화였던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스몰토크는 한국인이나 다른 아시아 계통에서 온 여행객들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울 수 있는 문화다. 영어를 잘하는 나도 처음에 매우 당황스럽고 적응하는데 좀 오래 걸렸다.



웃기는 건 영어가 모국어이고 미국에서 평생 살아왔던 미국인들 중에서도 이런 스몰토크를 부담스러워하고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구글에 'small talk'라고 치면 스몰토크가 쓸데없이 비효율적이고 기가 다 빨려 힘들다고 호소하는 미국인들의 의견이 담긴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스몰토크를 잘 못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스몰토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small talk guide'까지 나온다. 



하지만 스몰토크가 없는 한국에서도 살아보고 스몰토크가 일상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살아본 나는 스몰토크를 굉장히 긍정적인 문화로 본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스몰토크가 일하는 직원들을 손님들이 사람으로 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에 와서 내가 주문할 차례가 되었을 때, 20년 인생동안 한국에서 평생 했던 것처럼 바로 메뉴명부터 말하려 했다. 근데 직원이 갑자기 "Hi! How was your day so far?" (안녕! 오늘 하루는 어땠어?)하고 내 하루를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내가 말하려고 준비한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순간 멈칫하고 당황했다. 급하게 웃으면서 "Um It was great!" 이렇게 먼저 대답하고 그다음 메뉴를 주문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내가 스몰토크에 익숙해지고 먼저 직원에게 "Hi"하고 간단한 인사라도 하고 주문을 하는 게 습관이 되기 전까지 나는 속으로 매번 당황했고, 당황하는 순간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원이 주문 전 안부를 물어보는 스몰토크는 진짜 내 하루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가게에 들어왔을 때 직원이 "어서 오세요"하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이 스몰토크가 없는 곳에서 생활하다 갑자기 생기니 이 의례적인 스몰토크가 가지는 힘과 영향력이 체감되었다.



직원의 안부를 물어보는 말에 내가 대답하고 다시 직원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과정은 지금 내가 그냥 주문하는 게 아닌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서 내가 직원을 대하는 자세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조심스러워진다. 



매번 손님에게 안부를 물어봐야 하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귀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스몰토크는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손님에게 한번 제동을 걸어주고 서로 얼굴 붉힐 일을 최소화시켜준다. 



스몰토크가 좋은 두 번째는 이유는 의례적이고 꾸며진 긍정적인 대화도 결국 정말 내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몰토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스몰토크에 들어가는 칭찬이나 관심을 갖는 태도 등이 진심이 아니고 꾸며진 것일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억지웃음도 진짜 웃음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것처럼 100% 진심이 아닌 칭찬과 긍정적인 스몰토크도 결국 내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확실히 영향이 있다. 



그냥 대화를 시작하려고, 말을 붙이려고 말한 "I like your outfit"이라는 의례적인 칭찬도 결국 칭찬이고 확실히 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서로 웃는 얼굴을 하고 스몰토크를 하고 헤어지면 대화가 끝난 후에 전에는 없던 미소가 유지되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 MBTI가 I라서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던 대화를 이 스몰토크 문화에 익숙해진 후 어느 순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래서 미국에 있으면 성격이외향적으로 변한다는 걸까?



마지막으로 스몰토크가 당연한 문화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걸고 칭찬하는 게 이상하고 어색한 게 아니게 된다. 



서울에서 길을 걸어가다 누가 날 붙잡고 "인상이 참 좋아 보여요"라고 말한다면 음.. 바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곤란한 감정이 든다. 



"인상이 참 좋아 보여요" 아닌 다른 말이라도 일단 모르는 사람이 길을 걷다가 말을 걸면 좋은 의도로는 안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걸어가는 게 일상이 되었고, 누군가 말을 건다면 이상하게 쳐다보고 경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한국에 살 때는 이런 한국의 문화를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캘리포니아를 경험해 보니 이런 우리 사회가 너무 경직되고 냉담한 것 같아 안타깝다. 



캘리포니아에 살다 보면 걸어가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I like your outfit", "I like your makeup"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아니면 좀 가까운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은 "Hello"하고 인사를 하고 가는 순간도 있다. 나에게 관심 있거나 더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칭찬이 절대 아니다. 그 말을 한 사람들도 그 칭찬이나 인사 한마디 하고 자기 갈 길 간다. 



지금도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듣는 인사나 칭찬은 기분 좋은데 아직 한국인인 나에게는 당황스럽다. 우리나라는 길 가면서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은근히 눈 안 마주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눈 마주치고 일부러 인사하고 지나가지는 않으니까. 



근데 모르는 사람에게도 지나가다 칭찬하고 말 거는 문화가 수상한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받아지는 곳에 있으니 이런 긍정적인 사람과의 교류가 사회적 분위기를 경직되지 않게 유지해 주고 사회를 더 여유롭고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캘리포니아는 길 가다가 누군가의 칭찬으로, 대화로 기분이 좋아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스몰토크와 칭찬을 시도하고, 그렇게 기분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굴레에 갇힌 곳인 것이다. 



그 굴레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고,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칭찬을 하다 보면 어느새 둥글둥글하고 여유와 긍정적인 느낌이 넘치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캘리포니아 사람'이 된다. 



나는 그런 사람으로 변화한 내가 마음에 들고, 그렇기에 캘리포니아의 스몰토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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