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학생, 20살이 LA에서 혼자 집을 구하는 방법
사는 것은 의, 식, 주가 해결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내가 의, 식, 주를 해결하면 나의 LA 자취생활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LA 자취가 확정되면서 내게 주어진 LA 자취생활의 첫 미션은 바로 '주'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 여름에 막 만으로 20세가 된 갓 성인인 나는 한국에서도 집을 구해본 경험이 없다. 이런 내가 한국인, 유학생, 2.5 달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렌트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 첫 미션부터 쉽지 않은 거 같다. 이게 독립 쪼렙 주제에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한국도 아닌 미국 LA에서 자취를 시도한 대가인 걸까?
일단 집이 없는(?)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친구들에게 어떻게 '주'를 해결할 것인지 물어봤다. 다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친하고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과 함께 그룹을 구성해 에어비앤비를 구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좋은 생각인 거 같다. 나도 일단 나와 함께할 친구를 구했다. 계절학기와 LA 생활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함께할 수 있는 한국인 유학생 친구가 내 하우스 메이트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친구를 구한 후 바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처음으로 접속했다.
하지만 내가 순조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검색창에 원하는 지역을 쓰고 집 검색을 시작해야 하는데, LA를 가본 적 없는 한국인은 Los Angeles 내부에 포함되는 지역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원하는 지역을 적으라는 검색창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건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켜는 게 아닌 LA 지역에 대한 조사였다. 어떤 지역을 원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내가 원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떠올랐다. 일단 안전해야 했다. 차가 없으니 장 보러 가는 마트 정도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동네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야 하는 계절학기 학교에서 너무 멀지는 않은 거리여야 한다.
구글맵을 켜고 계절학기 듣는 학교를 기준으로 차로 15~20분 이내로 걸리는 거리를 표시해 동그랗게 원을 그려 봤다. 그 안에 포함되는 지역들 중 굵고 크게 표시된 Torrance, Long Beach라는 지역명들이 보인다. 큰 도시라는 것 같아 거기부터 검색해 봤다.
Long Beach는 시내 쪽에 홈리스들이 많고 치안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조금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다. 반면 Torrance는 조용한 학군 지역으로 비교적 치안이 좋은 동네라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두 지역도 상당히 넓고, 도로 하나로 분위기가 바뀌는 게 미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내가 실제로 이 지역들이 어떨지에 대해 예상하는 것은 힘겨웠다.
그래도 일단 지역을 알게 된 게 어딘가? 두 지역을 기반으로 에어비앤비를 찾아봤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번, 아까보다 더 곤란한 문제를 마주했다.
바로 금전적인 부분이었다. 한 달에 $3000(380만 원) 이상? 한국에서도 자취방을 구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아니, 과연 이게 말도 안 되는 금액일까?
사실 문제는 금액이 아니라 나였다. LA 월세의 평균적인 금액을 전혀 알지 못해 전혀 판단이 불가능한 내가 여기서 가장 큰 문제였다.
이번에는 에어비앤비가 아니라 아파트 사이트에 들어가 렌트를 알아보았다. 역시나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알아보니 한 달에 총 $2500(320만 원)은 넘었다. 하지만 같은 조건의 에어비앤비보다는 훨씬 저렴하고 내가 선택 가능한 옵션도 더 많았다.
근데 렌트하는 집들에는 lease 기간이 최소 6개월, 1년이라는 말이 보였다. Lease가 뭐지? 이건 정말 내 20년 인생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였다.
Lease에 대해 검색해 보니 이건 집을 렌트하는 최소 기간을 뜻하는 단어였다. 나는 매달 돈을 내는 '월세'라기에 당연히 한 달 치 돈만 내고 한 달만 사는 게 가능한지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매달 돈을 월세로 내는 것도 집을 최소 6개월이나 1년을 렌트하기로 결정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혹시 몰라 연락도 해봤지만, 모두 2.5달은 받아주지 않는다는 답변만 왔다.
(참고로 이건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lease가 아니었어도 내가 렌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은 렌트를 줄 때 신용점수를 확인하는데 이게 신용카드가 있어야지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신용카드가 없었고 유학생이라 미국 신용카드가 있는 가족도 없었다)
정리하자면 에어비앤비는 선택지도 별로 없고 우리의 용도에는 맞지 않으며 가격이 비쌌다. 여기서는 친구와 룸을 따로 쓰긴커녕 침대를 하나 나눠 쓰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렌트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다가 서브리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숙사가 아닌 집을 1년 렌트해 살고 있는 유학생들이 방학 때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비는 방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는 것이다. 저 lease라는 것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 있는 기간에도 돈은 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 서브리스로 들어 올 다른 사람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침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국 유학생 친구 중 LA로 대학을 간 친구가 있었다. 내가 계절학기를 듣는 학교와도 멀지 않았다. 주변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서브리스 집이 학교와 걸어서 1분 거리로 매우 가깝고 학교 안은 안전하다니 괜찮을 것 같다. 가격도 LA 평균 월세상 비싼 건 아니었고 친구와 나눠서 내면 한 달에 160만 원 정도였다.
처음에 한국인, 유학생, 2.5 달이라는 조건 때문에 구할 수 없었던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내가 한국인, 유학생, 2.5 달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어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친구에게 부탁해 서브리스를 구했고, LA 자취 생활에 맞이하는 첫 난관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내가 살 집을 내가 구했다는 부분에서 내가 독립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확 실감 났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LA의 지역들, 치안과 안전의 중요성, 지역별 평균 렌트, lease의 뜻, 신용 점수의 존재 등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성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할지 몰라도 이제 20살이 된 갓 성인에게는 처음 배우게 된 소중한 깨닮음이었다.
자 이제 집은 구했다.
하지만 LA는 내가 지금 있는 동네에서 차로 6시간이나 걸리는 데 차도 없는 나는 어떻게 이사를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