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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철학

수학의 신 가우스 본질을 꿰뚫어 보다

by 이태백

 방정식의 신, 가우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오래 걸리는 셈을 시키고는, 그 사이에 다른 일을 보려는 의도로 “1부터 100까지 더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가우스는 금세 정답을 내놓았다.

 “1과 100, 2와 99, 3과 98을 더하면 모두 같은 값이 나옵니다. 그 값을 50번 곱하면 정답은 5050입니다.”

 또래 아이들이 산수를 하고 있을 때, 가우스는 수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키는 대로 계산만 하기보다, 수의 본질을 꿰뚫은 가우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수학을 사랑한다. 수학 천재들처럼 곧잘 해내는 것도 아니고, 암산은 영 젬병이라 계산기가 없으면 계산조차 버거운 수준이지만, 수학은 어떤 일을 할 때 ‘본질’을 보게 해준다. 큰 그림에서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은 본질을 찾기보다 빠른 답을 구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이건 이래서 안 돼”라는 식으로 이유를 먼저 찾고, 단정 짓는다. 안 된다고 하는 일은 대부분 과거에 통계적으로 안 됐던 일들이다. 개인의 경험이든, 인류의 통계든, 그 ‘통계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일반화의 오류로 쉽게 빠뜨린다.

 사물의 본질을 성급히 일반화한 뒤 “이건 답이 아니니까 틀렸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학도 잘하고 산수도 잘하지만 세계적인 수학자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를 여기에 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 수학 공식, 영어 문법, 디자인 템플릿까지 외우며 컸다. 그래서인지 독창적이거나 창의적이 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공부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땐 시간을 길게 잡고 천천히 본다. 원리부터 차근히 이해하려는 것이다. 빠르게 성과를 내려는 ‘단타 전략’은 애초에 내 방식이 아니다.

 어른이 된 지금, 머리가 점점 굳어갈수록 나는 종종 가우스의 일화를 떠올린다. ‘가우스라면 어떻게 풀었을까?’ 천재 수학자의 사고방식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나름 애써본다.

 우리 회사는 지난 15년 동안 격투기 용품을 제작해 왔다. 내가 선수 출신이라 오랜 시간 다양한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격투기 용품만큼은 자신 있었다. 제품을 출시한 이후, 국내 시장에 무난히 안착했고 다양한 체육관에 납품하며 그럭저럭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못 팔고 남은 재고는 거의 0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업 10년 차를 넘기며, 변화 없이는 회사를 더 키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꿈—축구공 제작—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처음 “축구공을 만들겠다”고 말했을 때, 회사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무슨 수로?”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축구공 공부를 시작했고, 축구교실에서 2년간 직접 과외를 받으며, 지금도 축구인들과 어울려 내가 만든 공을 테스트하고 평가받고 있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제대로 된 축구공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결과, 정식 출시 후 단 두 번 만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수십 번 도전해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외려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내 방식이 어쩌면 시간 단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십여 년 전부터는 사냥용품도 꾸준히 만들어왔다. 수요는 적지만 확실한 마니아층이 있는 ‘블루오션’이라 판단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때도 컴파운드 보우를 3~4년간 직접 사용하며 철마다 사냥터를 다녔다. 사냥꾼 형님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그들이 선호하는 옷, 액세서리, 소품까지 전부 조사하고 파악한 후 제품을 기획했다.

 회사에선 내가 그냥 사심 가득하게 사냥을 하고 싶어서, 혹은 축구를 하고 싶어서 기웃거린다고 봤지만(틀린 말은 아니다), 내 입장에선 나름의 연구 기간이었다. 대표가 골프 치러 다니는 대신, 제품 연구를 겸한 여가라면 오히려 이득 아닌가.

 사실 제품 하나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유행하는 제품을 알리바바에서 서칭하고, 몇 군데 공장을 알아본 뒤 가격 맞춰서 디자인 고르고 “이거 만들어주세요”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쉽게 생겼다가, 이름 없이 사라진 브랜드가 얼마나 많던가.

 창업도 마찬가지다. 시류에 맞는 프랜차이즈 한 곳을 선점해서 몇 달 배우고 급히 뛰어드는 창업자들이 있다. 하지만 치킨집을 차리며 배달 아르바이트부터 직접 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다양한 곳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때로는 반면교사 삼으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다 운이 나쁘면 값비싼 수업료를 창업비용으로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원리’는 보지 않고, 돈 자체만, 그 가치만 보려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수학 공식을 외워 암산하던 아이들이 자라서는 메뉴 레시피만 외워 창업에 나서는 셈이다. ‘창업’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업(業)’을 ‘창조’하는 것인데, 손쉽고 간단한 창업이라는 말에 현혹되어버린다.

 피타고라스는 말했다. “All is number.”
 우리는 수학자가 아니어도, 늘 숫자를 보며 산다. 숫자를 빼고는 세상 어느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 수를 본다는 것은 가장 기초를 본다는 것이며, 곧 이 세상의 근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래서 모든 일의 시작은 언제나 ‘본질’을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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