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흔한 제주풍경
제주에 살면서 우산을 제대로 써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비는 얌전히 내리려고 하면 바람이 가만히 두지 않고, 옆에서 뒤에서 위로 휘몰아친다.
우산을 쓰고 나가는 날이면
“엄마 있잖아요. 키득키득. 우산이요. 키득키득 뒤집어졌어요”
하며 연신 깔깔대고 웃는다.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아이들은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추운 겨울에는 비 맞고 뛰는 것은 안되지만 따스한 봄날과 여름날은 허용한다.
어떤 날은 나도 같이 비를 맞고 뛰어다닌다.
비 맞고 있는 엄마를 본 아이들은 세상 시끄러울 정도로 소리 지르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춤사위를 보여준다.
신기한 아이들.
어느 일요일 아침.
소나기가 지나고 해가 쨍 비치자 무지개 찾으러 간다며 남편과 아들은 동네 산책을 나선다.
웬걸. 얼마 걷지 않아 하늘에서 그냥 물폭탄이 떨어진다. 왕창.
흠뻑 젖은 채로 집에 들어온 남편과 아들을 마주하고는 세상 크게 웃는다.
물에 빠진 생쥐가 여기 있다.
남편과 아들, 두 남자는 물폭탄 맞은 하루가 아직도 제주도 최고의 추억이다.
살면서 비 좀 맞으면 어때. 감기 걸리면 어때. 감기약 먹으면 되지.
내 인생에서도 많은 비가 내렸고, 그 비를 피하느라 무지 애썼던 지난날들.
옆으로 막으면 뒤에서, 위를 막으며 아래에서, 휘몰아치고 우산은 뒤집어지고.
휘청거리며 지냈던 처절했던 시간들.
이제는 피하지 않고 그냥 맞으련다.
왕창. 시원하게!
어떤 삶이든 살아가다 보면 우린 늘 선택을 해야 하고 때론 그 선택에 후회할 때가 오곤 한다.
나의 삶도 그랬다. 지금도 뭐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랬다.
때론 나의 모든 선택이 후회뿐이라며 감정이 휘몰아쳐 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마음껏 분노하고 분노하다 보면 결국 나를 지키는 건 그 속에서의 작은 선택들이었다.
어느 쪽이든 후회한다면 난 덜 후회하는 쪽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후회해도 괜찮다.
뭐 어때. 후회는 지나갔고 다시 선택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