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은 사람 Feb 14. 2024

저마다 짊어진 십자가가 비슷할 수 있는 이유

이 모든 게 당신 덕분

아이에게 장애가 있음을 직감했을 때.

아이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척박한지 경험했을 때.

그 장애가 우리를 어찌 살아가게 할지 예상했을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과 패배감에 허우적거렸다. 깊이 우울하면서도 또한 우울할 새도 없었다. 상처받고 보듬고 다시 일어서고 상처받기를 반복했으니까.


그런 딸이 안쓰러웠는지 아빠는 위로의 말을 건네셨다.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다.
더 무거울 것도, 더 가벼울 것도 없다.
멀리 두고 보면 다 매한가지다.


그 말을 무슨 마음에 하셨는지 짐작하면서도 독기로 가득 찬 딸은 세상에 분노를 쏟아냈다.


아뇨. 절대 공평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십자가는 한없이 크고 무거운 걸요.
누군가의 십자가는 가벼워요.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내가 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고통은 진행형이며, 전 생애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빠의 말이 맞았다.

짊어진 십자가는 저마다 다른데,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는 엇비슷할지도 모른다.


십자가의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는 엇비슷할지 모른다


돌이켜보니

내가 진 십자가를 나 혼자 짊어진 게 아니었다.

고마운 가족들이 같이 들어줬고,

살가운 사람들과 좋은 선생님들이 함께 했다.


좋은 분과 인연이 닿았고,

그 인연을 다하면,

또 다른 좋은 분이 또 우리를 응원하고 도와주셨다.


마치 릴레이를 하듯 다가와

우리에게 단비가 되어주었고,

아이에게 사랑을 주었다.


이제야 알았다.

나 혼자 짊어진 게 아니었단 걸.


지금까지 이나마 걸어올 수 있던 건

악으로 깡으로

단단하게 뭉쳐 아이를 지켜내겠다고 했던

오기와 독기가 아니라,

따스하게 품어준 많은 이들의 사랑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두 아이를 알게 되었다.

나와 남다른 인연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 형제의 앞날을 응원하기로 했다.

비루한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만은,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십자가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길 바란다.

너무나 혹독했고 외로웠던 시기가 혼자가 아니었음에 위안 삼기를.

내가 그러했듯이.


이 모든 게 다 당신 덕분이다.

모두가 정말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