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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 into Action Aug 16. 2023

잊을 수 없는 쇼농소 성과 여인들

프랑스 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쇼농소 성 Chateau de Chenonceau

쇼농소성은 베르사유 궁전 다음으로 프랑스 성 중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성이다. 이 성는 쇼농소 마을에서 5km, 파리에서 214km 떨어진 르와 계곡 Loire Valley에 위치해 있다. 셰르 강 Cher River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동화 속의 성 같은 독특함을 품고 있으며 건설된 다리의 아치들이 물에 반사되는 전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슈농소 성은 남성이 건축하고 대부분 남성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부를 완성, 유지하고 보존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한 여섯 여성의 노력으로 '여인들의 성 Chateau des dames'이라고 불리어진다. 방문을 했을 때 이 여섯 여인의 설명이 너무 헷갈렸었다. 나는 여행을 끝내고 이 성에 대해 내가 찾아본 궁금한 정보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여섯 여인의 손과 성에 대한 애정을 거치면서 그 화려함과 고풍스러움을 더해 가는 쇼농소 성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1. 성을 차지한 최초의 여성 - 강 위에 다리와 현대적인 정원 건축

디안 드 푸아티에 Diane de Poitiers 1499-1566

디안 드 푸아티에 photo by Jean-Pierre Dalbéra

프랑스의 앙리 2세는 1547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정부 디안 드 푸아티에 Diane de Poitiers에게 이 성을 선물했다. 그녀는 아름답고 영리하며 재략도 뛰어난 여성이었다. 1556년 그녀는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인 Philibert de l’Orme에게 셰르강을 가로지르는 5개의 아치형 다리를 건설하도록 함으로써, 슈농소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건축 스타일을 부여한다. 


Diane은 또한 넓은 정원을 디자인하도록 하였는데 거의 3 에이커에 달하는 프랑스식 정통 양식의 정원으로 지금도 그 시대에 가장 모던하고 화려한 정원중 하나로 뽑힌다.  정원 중앙에는 수백 송이의 장미로 둘러싸인 장식용 분수가 있다.


Diane의 침실은 파란색 벨벳으로 꾸며졌다.  

Diane은 쇼농소를 사랑했고 바르세유 궁전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격을 높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다. 그녀의 침실 "La Chambre des Reines 여왕 침실"은 순금으로 만든 왕실 상징으로 장식된 벽난로를 비롯한 다양한 디테일에서 알 수 있다.

Diane de Poitiers' Bedroom,  Photo by Dennis Jarvis 


이 방의 섬뜩한 점은 벽난로 위의 케서린 드 메디치 Catherina de Medici의 초상화가 걸려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앙리 2세의 아내로 다이앤과 앙리 왕이 동침한 로맨스의 침대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앙리 2세가 Diane에게 왕실 보석과 Catherine이 소유하고 싶었던 성을 선물을 함에 있어 그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을 것이고 질투는 극도에 달했을 것이다. 훗날 Diane을 쫓아낸 후에도 화가 풀리지 않아 Diane의 방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2. 성을 차지한 두 번째 여성 - 다리 위에 갤러리 건축

캐서린 드 메디치 Catherine de' Medici 1519-1589

1559년 앙리 2세가 죽자 미망인이 된 캐서린 드 메디치는 Diane을 쫓아내고, 정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면서 건축 작업을 이어 나간다. 강력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후손인 Catherine은 앙리 사이에서 10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녀의 아들 샤를 9세가 10살이 되었을 때 왕위에 올라 14년간 프랑스를 통치하였다.


Catherine은 화려한 향연을 주최하기 위해 강이 내려다보이는 다리 위에 특별한 연회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랜드 갤러리를 8년간 건설하면서 이탈리아식 호화로움을 슈농소에 접목시켰다. 바닥은 에나멜 타일로 깔았고 갤러리의 양쪽 끝에는 멋진 르네상스 벽난로가 놓였으며, 18개의 창문이 있는 갤러리는 왕의 응접실과 침실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었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녹색 집무실 Green Cabinet에서 머물며 그녀는 열 살 난 아들 샤를 9세 왕의 권위를 수립하고 배후에서 자신의 왕국을 통치하였다.


Catherine은 프랑스의 세 왕의 어머니로서 30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고 갤러리에서 1560년, 그녀의 아들 프란시스 2세와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의 결혼을 비롯하여 많은 축하 행사를 주최하였다. 


Catherine은 자신의 침실을 두 딸과 세 며느리를 생각해 "The Five Queens' Bedroom"이라고 이름 지었이다. 침실은 아름다운 르네상스 가구로 가득 장식되었고 벽은 콜로세움에서 행해지는 서커스와 다비드 왕의 대관식을 그린 귀중한 16세기 플랑드르 태피스트리로 덮여 있다. 

Catherine  침실 Photo from Wikimedia Commons


3. 성을 차지한 세 번째 여성 -슬픔으로 쌓인 검은 방

루이즈 드 로레인 Louise de Lorraine 1553-1601
            루이즈 드 로레인 Louise de Lorraine,                               Photo from Wikipedia       

루이즈 드 로레인 Louise de Lorraine 여왕은 Catherine의 며느리다. Catherine이 죽은 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인 앙리 3세는 1589년 궁전을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불과 8개월 후 Louise의 남편인 앙리 3세 왕이 살해된다. 그는 38세였고 Louise는 36세.

Louise는 Henry III 왕이 그녀보다 남자를 선호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 후 성에서 은둔하고, 궁정의 예절에 따라 흰색으로 죽음을 애도하며 지체 높은 여왕의 삶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많은 시간을 독서와 기도 그리고 예술작품에 할애했다. 또한 그녀는 프랑스 왕실의 공식 애도색인 흰색만 입어서 '하얀 여왕'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난 그녀의 침실은 본 순간 너무 뜻밖이여서 한참동안 어안벙벙했다. 검은색 벨벳으로 덮여 있고 검은 나무 패널벽에는 흰색 가시 왕관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두개골과 크로스본 패턴의 십자수로 장식되어 있는 정말 암울하고 어두운 공간이다. 또 죽음의 상징은 슬픔의 흰색 깃털과 은빛 눈물 데코레이션에서도 엿볼 수있다. 

작은 모퉁이에 자리한 헨리 3세의 초상화를 보며 Louise는 남은 생애 동안 남편을 애도했다. 

Louise의 검은 방

Louise의 요청에 따라 수녀들이 성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파티는 기도로 대체되었고 Louise가 수도원으로 이사할 때까지 궁전은 깊은 침묵으로 뒤덮였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지 11년 만에 슈농소에 왕족의 마지막 존재감을 남기고 수도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가 생을 마감하자 그녀의 모든 소유물은 빚을 갚기 위해 팔렸다.


4. 성을 차지한 네 번째 여성 -문학 살롱으로 변모

루이스 듀팽 Louise Dupin 1706-1799

네 번째 성을 장악한 여성은 루이스 듀팽 Louise Dupin이다. 그녀의 남편이자 유지인 Claude Dupin이 Bourbon 공작에게서 구입하였다.

Louise는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의 지지자였으며 그녀는 쇼농소 성을 루소와 볼테르와 같은 철학자들과 몽테스키외와 베르나르 퐁트넬과 같은 작가와 시인, 부폰과 같은 과학자들을 즐겁게 하는 문학 살롱으로 변모시켰고, 갤러리 남쪽 끝에 극장을 만들어 연극과 코미디를 상연했다.


Louise는 여성의 교육과 평등 고용을 위해 싸웠다. 그녀는 철학자로 유명해지기 전에 아들의 가정교사였던 쟝-쟈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의 도움을 받아 여성의 역사와 권리에 관한 책을 쓴 초기 페미니스트였다.


현명한 대처로 그녀는 프랑스혁명 기간 동안 성을 지켜냈으며 1799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Louise Dupin은 갤러리를 본인의 문학 살롱으로 변모시켰다.


5. 성을 차지한 다섯 번째 여성 - 원형으로 복구하려는 노력 &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마르게리뜨 펠루즈 Marguerite Pelouze 1836 – 1902

기업인 부르주아인 마르게리뜨 펠루즈는 1864년, 그녀의 화려한 취향에 맞는 거대 기념물과 극장을 정원에 짓게 한다. 디안 드 푸아티에 시대처럼 재건하는데 어마어마한 자본을 쏟아부었다. 특히 그녀는 성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플라타너스 Sycomore Tree 나무를 심고 사자상을 놓아 백오십 년이 넘도록 아름다운 산책로를 제공토록 하였다. 하지만 정치적 스캔들로 쇼농소성을 비롯한 그녀의 모든 재산은 흩어지고 슈농소는 그 후 1913년까지 여러 번 소유주들이 바뀌는 불운의 시기를 맞는다. 


The two rows of trees planted by Madame Pelouze along the drive leading to the château


6. 성을 차지한 여섯 번째 여성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원으로 탈바꿈

시몬 므니에 Simonne Menier 1881 - 1972



1913년 초콜릿 판매로 부자가 된 Menier 가족이 쇼농소를 구입한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슈농소도 전쟁의 아픔을 겪게 된다. Menier 가족은 Simone과 함께 성을 군 병원으로 탈바꿈시킨 후 1918년까지 2000명이 넘는 부상자들을 보살피게 된다. 강 건너편의 아름다운 회랑에는 부상당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창밖으로 낚시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 Simone과 Mernier 가족은 또한 성을 나치 점령 지역과 강 건너편의 자유 지역 사이의 탈출 경로로 사용하여 제2 차 세계 대전에서 저항군 역할을 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갤러리는 병원으로 탈바꿈하였다. 


7. 결론

Diane de Poitiers와 Catherine de Medici가 건축과 장식하고, Louise de Lorraine의 슬픔이 산재되고, Louise Dupin이 지식인들에 오픈하고, Marguerite Pelouze가 예전대로 복원한 후, Simone Menier가 사람을 살리는 공간으로 활용 하면서 쇼농소 성은 진정 Château des Dames 여인들의 성으로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겼다.

여성스런 디자인과 우아함이 깃든 공간을 아름다운 생화로 장식해 놓으며 방문자들이 그냥 성이 아닌 숨쉬는 공간으로 감명 받을 수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참 인상적이였다. 비가 오는 날이나 보름달이 뜰때면 여섯 여성중 누군가가 이 성에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쇼농소성은 시대를 초월하는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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