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1년 프로젝트
지난 십 년 동안 난 독특한 여행을 많이 했다.
나는 다른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계획을 짜고 그 나라의 관광명소를 공부해서 가는 여행이라기보다 그 나라의 한 도시에 가서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부대끼며 생활을 체험하는 방식의 여행이 잦았다.
2014년 미국에서 Le Cordon Bleu 르 꼬르동 블루 요리 학교를 다녔는데 졸업하기 위해서는 3개월간 외부 레스토랑에서 실제 인턴십을 마쳐야 했다. 그 인턴십은 미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가 인정하는 레스토랑이면 전 세계어디어서든 가능했다. 난 대학 때 꿈에도 그리던 프랑스를 한번 못 가보고 건축공부를 마쳐야 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난 프랑스로 인턴십을 얼른 신청했다.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 보르고뉴 지방의 Nitry 니트리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미셰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인턴십을 시작할 수 있었고 레스토랑에서 숙소를 제공해 줬다. 약 한 달이 지나고 주인인 Nanou와 Serge와 친해지면서 아예 그 집 다락방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19세기 프랑스에 삶에 꼭 필요했던 직업, 예를 들어 와인 메이커, 말 거래상, 재봉사, 방앗간, 작가등을 테마로 12개의 방을 직업에 관계된 액세서리로 꾸며놓고 직원들도 19세기 의상을 입고 침구를 직접 빨고 다림질을 하기 때문에 가족과 친척이 모두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프랑스 대식구 가정에 한 식구가 되어 그들과 뒤엉켜 석 달을 살면서 정말 좋은 추억들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프랑스 사람들은 "Bonjour, ma cherie ("좋은 아침, 예쁜이"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라고 부르며 볼을 맞대고 양쪽볼에 번갈아 키스를 두 번씩 네 번을 해댄다(시골 할머니들은 두 팔을 꼭 잡고 8번도 한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이것도 일주일 만에 적응을 해 냈다. 또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면도 없지 않아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신의 감정 표출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미국 사람들은 겉으로 항상 나이스하고 자기감정을 언행에 섞어나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Nanou의 감정 기복과 엄마와 딸이 갈등을 겪을 때면 불편함이 많았는데 이것도 가족이어서 그러려니 생각하니 어느 순간 이해가 되었다.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저녁식사를 늦게 시작한다. 저녁 9시쯤에 시작을 해서 새벽 1시를 넘기는 때도 다반사이다. aperitif 아페리티프라는 식전 음주와 Gougères( 따뜻하게 반죽해서 치즈를 넣고 구운 페이스트리) 나 Escargots (달팽이 요리)로 전채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동네사람들이 디저트도 가져오고 프랑스 전통악기인 Vielle(중세시대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를 가지고 와서 음악을 함께 연주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세계에서 유명한 보르고뉴의 와인병이 식탁에 쌓여가고 Serge는 와인병을 거꾸로 들고 병바닥을 쳐가면서 "이제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는 방법이라고"라며 너스레를 떨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깔끔히 비워낸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음식 속에 사람들의 감정이 녹아나는 그 시간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이 취하면 앉아서 자다가 또 깨면 다시 이야기 속에 들어가곤 하였다. 이 경험이 바탕이 되어 난 프랑스, 크로아티아, 영국의 여러 친구집을 다니면 2주에서 한 달씩 여행을 할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난 어른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할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미국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외국 사람들과 부대끼기 공부가 많이 되었던 탓인지 난 빨리 적응해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너무 편하게 지내서 자신들도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나를 호스트 하던 외국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가 즐겁고 편하게 잘 지내기를 원했다. 내 쪽에서 지킬 것은 그들의 생활에 피해가 되지 않은 범위에서 최대한 나를 위해 "make myself at home"해서 릴랙스 하고 편안하게 지내면 된다는 걸 난 은연중에 터득할 수 있었다.
이제 나의 모든 경험을 모아 모아 아들네에서 미국 며느리와 살게 되는 대망의 기회가 내게 찾아온 것이다. 물론 집을 따로 꾸리는 방법도 있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둘 다 일을 하고 손주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약 1년은 함께 지내보기로 서로 약속을 한 거다. 미국에 도착해서 하루가 지나고 난 신선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삼대 집안의 가장 연장자로 나는 이 자리를 번듯이 차지하고 있었다.
자 이제 장기자랑 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정말 다른 가족들과 지내기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나 자신도 무척 궁금하다. 이번에 주어진 1년의 365일을 좋은 추억 만들며 후회 없이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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