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스터피스는 어떤것일까?
재영이와 나는 딱 50살 차이가 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할머니와 손주라는 귀한 인연으로 만났다.
나는 재영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도전은 퍼즐이다.
아이들 장난감을 산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미국의 대중 마트인 Target 타깃에서 파는 퍼즐들은 조각이 500에서 1000개가 든 고난도 퍼즐이었는데 일단 두 개를 구입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아들네가 신혼 때 사 둔 퍼즐도 있어 우리에게 500 피스짜리 두 개, 1000피스짜리 퍼즐 두 개가 생겼다.
에펠탑이 보이는 멋진 석양의 파리 전경, 호숫가의 꽃과 새들, 산타가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크리스마스 전경, 영화 크리스마스 스토리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미지의 약 50%는 오브제가 있어 다양한 색깔과 패턴으로 조각의 위치를 찾는데 그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나머지 50%는 배경 조각으로 석양, 하늘, 숲 속 전경 같이 색깔이 비슷비슷하고 딱히 이미지를 따로 상상할 수없어 도저히 어디에다 놓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을 때다. 보호자들의 기다림의 시간은 거의 멈춘듯하다. 언제나 항암치료 중 백혈병 숫자가 낮아 특별 조치를 하거나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기 위해 수혈을 받기도 해서 기다림의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대기실에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위해 1,000 -2,000 피스의 퍼즐과 책들을 배치해 두었다. 무료를 달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퍼즐 피스를 완성하고, 흩트리고 또 완성하기를 반복한다. 긴 시간을 때우기는 퍼즐 맞추기가 안성맞춤이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글쟁이로 꼽히는 David Sedaris 데이비드 세다리스의 인기가 한창 오름세를 타고 있을 즈음이었는데 "Me Talk Pretty One Day.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가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가난한 유대인 가족의 육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데이비드의 어려서 "S" 발음으로 못하는 학생에서 커서 다시 프랑스어를 배울 때까지 자신의 자서전적 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인데 혼자 울고 웃고를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특유의 냉소적인 위트와 신랄한 사회비평으로 미국의 독보적인 유머 작가로 자리 잡았다.
3살짜리 아이가 1000개의 작은 조각의 퍼즐 맞추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워 내가 일단 한 구간을 정해 퍼즐을 찾은 다음 대강 흩틀어 놓고 하나씩 제 자리에 맞추는 방식으로 아이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는 생각 외로 퍼즐에 큰 관심을 가졌다. 나랑 얼굴만 마주치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Halmi, would like to do the puzzle with me 할미, 나랑 퍼즐 할래요? "Mom, one more piece before school, please. 엄마, 학교 가기 전에 퍼즐 하나만 더 맞추고요...!" 아들은 엄마가 시작한 게임이니 나보고 책임지란다. 괜한 시작에 나의 하루는 이 작은 퍼즐피스와의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500개 정도를 맞추고 나면 거의 색깔과 약간이나마 힌트가 있는 조각들은 다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나머지 500개 조각들은 도대체 어디를 가야 할지 길을 헤매고 있는 조각들이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다. 애기한테 너무 어려우니 그만둘까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난 꾸준히 퍼즐피스의 제자리 찾기에 더했다. 그렇게 나는 4개의 퍼즐을 완성해 나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알칸소주에서 건축회사를 다닐 때 미국 남부 쪽에 영업지점을 가지고 있는 은행 회장의 집을 디자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4시에 만나 8시까지 계획 도면을 놓고 미팅을 했다. 나의 업무 중 하나는 그의 집에 가서 그가 뉴욕에서 흥행하는 Heritage Auctions 경매장에서 구입한 19세기 가구와 유화 그림들의 사진을 찍고 사이즈를 재어 도면에 그려 인벤토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유럽에서 아름다운 석양의 자연풍경의 그림과 농촌의 전경, 바다 위를 해양 하는 배와 끝없는 해안선은 정말 아름다웠다.
한 가지 일들을 꾸준히 해 나간 분들이 이런 대가의 마스터피스로 비교를 한다면 나처럼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헝겊조각을 이어 만든 패치워크 담요로 비교를 하곤 한다.
대가의 마스터피스는 오랜 시간 심혈을 걸려 만든 작품이니 너무나 소중해 만져보지도 못하고 벽에 걸고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 하지만 자투리 헝겊조각을 엮어 만든 큰 패치워크는 시간 날 때 한 땀 씩 꿰매어 큰 담요를 만들었으니 대가의 마스터피스에 비하면 그 소중함이 훨씬 덜하지만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몸을 따뜻이 감싸 온기를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기분도 좋아지는 생활의 유용품이다.
내가 일한 대사관은 규모가 작아 대사님과 함께 뛸 수 있는 한국 직원은 나 하나였다. 마지막 될지도 모를 이 직장에서 모국어인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는 필수 요건이였으며 건축을 하면서 배운 디자인 감각으로 대사관 관련 초청장을 만들고 조리학교에서 배운 음식 지식으로 크로아티아 음식과 와인 테이스팅을 주선하면서 나의 30년간 다양한 직업에서 배운 실력들을 모아 모아 알뜰살뜰 사용했고 그래서 그 직업이 지금까지도 애착이 가는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반을 맞추고 나머지 500개를 맞추는 데는 정말 끈기와 인내가 필요했다. 이 피스가 어디에 들어가야 할지 문제는 계속적으로 발생되고 하나 맞추는데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문제들은 다 해결이 되고 모든 피스가 제자리에 들어가 앉을 때 그 기분은 정말 뿌듯한 느낌이었다. 나머지 500피스들의 제자리를 찾아주기 시작할 때는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여정을, 금방이라도 그만둘 것 같은 생각에서 조금씩 익숙해져 가며 퍼즐 맞추기는 나를 명상의 시간으로 인도했다. 그림을 보며 한 조각 한 조각 맞춰가며 인생도 어쩌면 퍼즐 맞추기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인생은 퍼즐 하나를 시작해서 끝마침을 하지 않고 중간에 다른 퍼즐들을 새로 펼치며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았다. 내가 살면서 이룩한 일들 중에서 마지막 순간 아하! 하며 내 인생과 마주 서서 악수를 나눌 그런 일은 어떤 일일까? 내 인생에 있어 나의 마스터피스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맹자엄마처럼 무식하고 용감했다. 홀어머니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려주기 싫어서, 나의 온전한 줏대로 아이들을 맘껏 교육시킬 수 있는 곳, 머나먼 미국땅을 선택했고 맞춤형과 눈높이 교육을 위해서 미국 내에서도 여러 주를 옮겨 다녔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실정을 모른 채 한국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 7년간 살면서 왜 한국이 이처럼 발전할 수있었는지, 한국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를 깨닫고자 나 자신을 교육하였다.
이제 나의 교육 인생에 새로운 쳅터가 펼쳐지는 시점이다. 다양한 국가를 다니며 배운 자녀 교육을 이제 나의 지혜로 발산할 때가 온 것이다.
남편이 어린 두 아이를 내 품에 떠 안기고 떠났을 때부터 지난 24년 동안 난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긴 시간 앉아 있는 적이 거의 없었던 내가 50살 차이가 나는 손주를 위해 흩트러진 작은 피트 1000개를 제 자리에 맞춰보겠다고 한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혼자 웃음을 지어본다.
내가 재영이에게 도움을 주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재영이가 내게 아주 귀한 교훈을 주었다.
그래 할미도 이제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볼 때가 되었다. 고맙다 재영아, 이런 귀한 시간을 허락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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