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루 육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미 Jul 18. 2023

너무 무서워요!

어린 나에게 보내는 위로

"무서운 마음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휴대폰으로 검색해주세요."


잘 놀고 있던 어린이가 갑자기 다가와 티셔츠 끝을 잡아당기면서 무서운 마음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봐달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를 낮추고 얼굴을 보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책이나 TV에 무서운 장면이 나왔는지 물으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어린이를 안아 올려 소파로 갔다.


"뭐가 무서웠는데?"


좋아하는 만화라도 악역이 등장해 말투를 조금이라도 무섭게 하면 리모컨을 찾아 얼른 꺼버리거나, 눈앞에 당장 리모컨이 보이지 않으면 거실에서 제 방으로 얼른 피난을 갈 정도로 우리 집 아이는 겁이 많은 어린이다. 누구를 닮았는고 하니 엄마와 아빠, 둘 다 닮았다. 남편은 어릴 때 집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무서워 중학생이 될 때까지 두 살 위 누나에게 같이 가달라고 했었, 헬기를 타본 적도 없으면서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게 될까 봐 어릴 때부터 군대도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나 역시 해가 지고 나면 집 바로 앞에 있는 슈퍼도 혼자 가기 무서워했고 엄마의 성화로 억지로 심부름을 나가더라도 일부러 큰 사람처럼 보이려고 부모님 외투를 입고 나가는가 하면 자꾸 뒤통수를 누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전력질주하며 집에 들어갔었다. 그런 엄마와 아빠의 DNA를 물려받았으니 겁이 많은 어린이가 태어날 수밖에.


"무서운 것이 너무 많아요."


등을 쓸어주고 정수리에 입을 맞추니 조금 진정된 어린이가 용기 내 무서운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것을 직접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기에 어린이의 말에 귀 기울였다. 어린이가 무서워하는 것은 한 두 개가 아니었고, 최근 일도 아닌 꽤 오래된 일도 있었다.


무서운 것 하나. 할머니랑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거의 2주 전의 일이다) 빼빼로를 계산대에 못 올렸잖아요? 그래서 차에 타기 전에 계산 안 한걸 알아가지고 다시 마트에 가서 계산했잖아요. 계산 안 하고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경찰 아저씨가 잡아갈까 봐 무서워요. (울먹이며 빼빼, 빼빼, 빼빼로를 몇 번이나 얘기해서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무서운 것 둘. 엄마랑 혈액형 책 읽었을 때(놀랍게도 올해 초의 이야기) 서로 다른 혈액형을 수혈하면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장면이 너무 무서웠어요. 나도 잘못 수혈받아서 죽으면 어떡해요!


무서운 것 셋. 어제 국립수산과학관에 갔을 때 프루니아(피라니아를 자꾸 푸르니아라고 한다) 봤는데 그 물고기는 사람을 잡아먹는대요. 물놀이를 하다가 프루니아를 만나서 잡아 먹힐 것 같아요.


무서운 것 넷. 어젯밤에 유튜브 키즈를 보다가 무서운 영상을 봤는데, 아빠가 그 채널을 없앴는데도 또 그 영상을 보게 될까봐 무서워요.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해 봐도 무서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더 무서운 상상이 되어버린다. 어린이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을 때지만 중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학교 폭력 관련 이야기를 보고 너무 무서워서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뜬 눈으로 벌벌 떨었던 내가 생각났다. 엄마가 저리 좀 떨어져 자라고 밀쳐내도 자꾸만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무서운 생각이 안 없어져요. 그러니까 휴대폰으로 검색해주세요, 엄마."


요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같이 찾아보자며 검색했던 적이 많아서 그런지 어린이가 자꾸만 폰으로 검색해 달라고 졸랐다. 어린이가 말하는 대로 검색을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자 고개를 푹 숙이고 시무룩해졌다. 아무리 해도 무서운 생각이 없어지지 않고, 무서운 생각을 없앨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집 앞 짧은 골목길을 지나면 바로 있는 슈퍼를 가지 못해 혼이 났던 내가 보였다. 엄마가 아끼는 회색 롱코트를 몰래 꺼내 입고 품이 커서 코트 깃을 바짝 몸 쪽으로 잡아당겼다. 벌렁거리는 심장 위에 두 손을 포개어 꽉 쥐고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무사히 슈퍼에 도착해 콩나물 한 봉지를 샀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았다. 자꾸만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집까지 온 힘을 다해 뛰어갔다. 아마 운동회에서 그 속도로 뛰었다면 분명 1등을 했으리라. 그렇게 들어간 집에서는 코트가 바닥에 끌려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났어야 했다. 혼이 난 것보다 엄마가 내 마음을 못 알아준 것이 더 서러웠었다.


"많이 무서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엄마가 지켜줄게. 절대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나의 어린 어린이에게, 그리고 어린 나에게 위로하며 꼭 지켜주겠노라고 얘기했다.

많이 무서웠지? 무서운 마음은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마음이거든.


어린이가 알듯 모를듯한 얼굴로 내 얼굴을 보더니 엉엉 울었다. 어린이를 꼭 끌어안고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며 고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 살의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