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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힌스 Jun 20. 2023

갓 전역한 여군입니다.

초급 장교들에게 군대가 가혹한 이유

보름 전, 전역을 했다.

전역식을 마치고 부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데, 홀가분하면서도 묘하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지난 3년 6개월이라는 군 생활을 되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동시에 나도 성장해 있었다.

소위 시절 늘 아쉬웠던 점은 멘땅에 헤딩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초급장교에 대한 매뉴얼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전역 후에는 예비 학사장교와 군인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입대 전에 읽어두면 좋을 정보들에 대해서 글로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사장교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지원동기는 참 다양하다.

이왕 군대에 가야 하는 거 장교로 임관해 병력관리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또는 군대에 천천히 입대하고 싶어서 늦게 학사장교로 지원한 경우, 여자의 경우엔 장기복무로 안정적인 군 생활을 하겠다는 큰 포부를 갖고 들어온다. 이와 다르게, 내가 군에 입대한 이유는 그냥 '하고 싶어서'였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26살, 입대하기 5개월 전으로 상당히 많이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초성만 들어도 아는 유명 여행사에 다니고 있었고, 경기도-서울을 오가는 왕복 4시간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출근해야 되는 탓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늦은 시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쉬던 중에, 인터넷 사이트 광고배너에 '공군 144기 학사장교 모집'이라는 공고가 뜬 것을 보았다.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었지만 그 공고를 본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미친 듯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회사에 가서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무모하고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고 해도 새로 하려는 일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은 채 퇴사를 결심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광고 포스터 속 정복을 반듯이 입은 깔끔한 인상의 장교 모습에 홀려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닐까 싶다.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나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kida 시험기출문제를 풀었고, 저녁마다 달리기 연습을 한다고 아버지와 온갖 동네를 뛰어다녔으며, 체력검정 때 사용할 푸시업 바와 가장 동일한 기구를 사서 푸시업 연습을 했다.

현역이었던 아버지가 계신 덕분이었는지 나는 아주 수월하게 최종합격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진주에 있는 훈련소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 안은 마치 하나의 작은 마을 같았다. 그곳에서 4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12주 동안 바깥 사회와 소식과는 단절된 채로, 오로지 임관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훈련에 임해야 했다.

소대장과 교관들은 말에게 채찍과 당근을 주듯이, 훈련생들에게도 잘하면 과자를 주었고, 못하면 동기부여를 받게 했다. 훈련 1-3주에는 땅과 물아일체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기간에는 잘 하든 못 하든 엎드려

뻗쳐를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당시 훈련받았던 내용들은 앞으로도 풀어나가겠지만, 그때는 소대장이 과자만 손에 쥐어줘도 나라를 가진 기분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땅에서 구르다가 임관하자마자 첫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집 근처에 있는 부대였는데, 국직 부대라서 육, 해, 공군이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해군 선배 한 명이 무언가 두툼한 파일철을 건네주며 "자, 이거 외워." 했던 것이 생각난다. 마치 쏘우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오는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같은 느낌이었다.

군대는 회사에 있는 사수와 같이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 친절한 선배는 없었다. 내가 전속 왔을 때 전임자는 이미 다른 부대로 전속 가고 없을 확률이 높으며, 그들이 인수인계서를 남겨 놓고 떠났으면 감사한 일이다. 내가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건 선배가 첫날 주었던 파일철에 들어있는 업무메뉴얼 뿐이라, 앉은자리에서 하루 이틀 동안 달달 외웠더니 이곳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감은 잡히게 되었다.

소위에게는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상황도 자주 찾아온다. 부사관 선임이거나 준위와 같은 준사관들은 소위에게 경례를 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눈에는 아마 우리가 '본인이 입대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핏덩이'로 보여 무시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동기 중에 감독관들이 본인한테 경례를 잘 안 한다고 기분이 나쁘다며 대놓고 따지다가 출근할 때마다 그들과 얼굴을 붉혀야 되는 상황이 생긴 적도 있다.

2,30년 근무한 4-50대 베테랑 준, 부사관들과 갓 임관한 2-30대 어린 나이지만 장교라는 위치에 서있는 두 계급의 입장차이인데, 장교라고 해도 군 경험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베테랑인 준, 부사관에게 업무적으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린 장교라고 해도 장교는 장교다. 준, 부사관을 근무평정을 평가하는 평정권자이기 때문에 서로 상호 간에 존중하면서 일하다 보면 분명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교는 보기와는 다르게 처리해야 될 행정업무가 많다. 본인이 원하는 특기에 들어갔으니, 특기와 관련된 전문성 있는 일들을 하고 싶겠지만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다. 공군은 모든 업무를 서면화하여 보고하고, 문서로 작업해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소한 업무여도 꼭 보고서를 통해서 지휘관에게 보고를 해야 하고, 업무 협조를 할 때는 사전에 협조를 요청하는 문서를 보내야 한다.

또한, 장교는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니 만약 현장에 나가 장비를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경험치를 쌓고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부사관으로 지원하는 것을 추천한다.

단지 정복이 멋있어서, 군인이 멋있어서 라는 생각으로 들어오게 되면 생각과는 하는 일이 너무 달라서 후회할 수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꼭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지원하기를 바라며 서론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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