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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o Kim Apr 25. 2024

'오컬트' 영화 장르에 대한 고찰

오~~~컬트?

지난 2월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공포 영화, 나아가 '오컬트' 장르 영화 중 최초다. 덕분에 오컬트 장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오컬트란 무엇일까? 오컬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오컬트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저는 오컬트나 영화, 나아가 문화 관련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그럴싸하게 써놓은 것일 뿐입니다.)


오컬트의 기본 개념

어린 시절 금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단순히 다음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당시는 주 6일제였고 토요일은 반공일이라 학교 가는 날이었으니...) 금요일 밤 MBC에서 방영했던 '이야기 속으로' 애청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무서운 에피소드를 좋아했는데 나를 무섭게 했던 건 소름 돋는 귀신의 모습이나 기괴한 이야기 전개보다 시작 전 나오던 문구였다. 대충 '개인의 특별한 경험'을 재구성한 것이며 '과학적 설명이 어렵다'는 내용이다. 이 문구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오컬트 장르의 핵심이다.


오컬트 - [명사] 1.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ㆍ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


오컬트의 사전적 정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과학적으로 해명을 시도해 봤다는 의미다. 개인의 경험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 우연이 아닌 (어느 정도) 인과를 가진 어떤 현상인 것이다. 

단순한 개인의 경험은 공감을 사기 힘들다. 그 어떤 기괴한 걸 목격하고 경험했더라도 나 혼자만의 일이면 오컬트가 아닌 것이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거나 여러 사람에게 일어나 보편성을 가질 때 오컬트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심령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철수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의 형상이 찍혔다.'(개인의 경험+우연)
'많은 사람들이 찍은 사진에 알 수 없는 사람의 형상이 찍히곤 하는데, 이런 사진들 대다수는 인명 사고가 있었던 장소에서 찍었거나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었다.'(보편적인 현상+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것이 바로 오컬트다. 어떤 원리로 심령사진이 찍혔는지, 왜 똑같은 장소에서 찍은 다른 사진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지 등 과학적 접근으로 답을 내릴 수 없는 것들 말이다빛 번짐, 난반사, 이중 노출 등 기술적 혹은 물리적 우연이 만들어 낸다고는 하지만 과학의 기본인 실험과 증명으로 밝혀내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오컬트의 영역이다.(1인 1 카메라 보유 시대, 하루에 수십억만 장의 사진이 찍히는 오늘날 오히려 심령사진이 줄어든 건 아이러니다.ㅋㅋ)

로켓을 쏘아 우주를 돌아다니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대에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 무력감, 나아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고대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들은 똑같이 이성을 가진 존재들이었지만 천둥 번개만 쳐도 두려움에 떨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갑자기 굉음을 내며 하늘에서 대지로 꽂히는 엄청난 빛은 자신들의 경험과 이성적 탐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미지에 대한 공포'라는 인간의 본성. 오컬트는 태생적으로 이 본성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장르로서 '오컬트'가 '호러'와 자주 묶이는 이유다.


'오컬트 호러'와 그냥 '호러'의 차이

장르 영화에서는 쓰이는 소재가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장르를 구분 짓는 것은 감독의 의도다. 감독의 의도는 카메라가 무엇을 어떻게 비추느냐를 통해 장르가 결정된다. 폐가를 배경으로 귀신이나 무당이 등장해도 코미디가 될 수 있고, 우주를 배경으로 UFO와 외계인이 등장해도 로맨스가 될 수 있다. 

소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컬트 호러와 일반 호러물의 차이는 영화가 무엇에 더 집중하느냐로 나눌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으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느냐다. '악령', '퇴마', '주술', '비밀집단' 등 똑같은 소재를 사용해도 카메라가 무섭게 생긴 무언가가 벌이는 끔찍한 상황에 포커스를 맞춰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한다면 일반적인 호러 장르다. 점프스케어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2018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곤지암>을 예로 들어 보자. 도시 괴담의 중심지를 유튜버들이 직접 탐방한다는 기본틀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도시 괴담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무서운 상황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비추는데 여념이 없다.

반면 오컬트 호러 영화는 오컬트 개념 정의에 가깝게 미스터리 한 현상에 대한 이성적 접근과 그에 대한 한계를 보여주며 미스터리를 극대화하는 형식으로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예를 들자면 비현실적인 귀신이 등장하는 대신 현실적이지만 초자연적인 심령현상을 보여주는 식이다. 주인공들이 공포를 피해 도망 다니거나, 혹은 또 다른 비현실적인 무언가로 공포를 제거하기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식이다. 

오컬트 영화의 대표작이자 '엑소시즘' 오컬트의 원형을 제시한 영화 <엑소시스트>를 살펴보자. 평범한 가정의 소녀에게 갑자기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가벼운 환청, 불안 증세 수준이다. 이때 아이의 부모는 병원을 통해 치료를 시도한다. 증상이 심해지고 심령 현상까지 목격되자 부모는 더 좋은 병원과 정신과 전문의를 수소문해 정밀 진단을 시도한다. 그럼에도 상황은 악화되고, 오히려 의사가 엑소시즘을 권유한다. 신부는 반대로 부마 의식에 회의적이며 빙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가짜 성수로 실험까지 하며 논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이처럼 <엑소시스트>는 무서운 장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 기괴한 현상이 논리적, 이성적 접근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사지를 기괴하게 꺾은 채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유명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마도 가장 무서운 장면은 과학적 권위자인 의사가 자포자기하며 비과학적인 부마 의식을 권유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핵심은 이성적 존재의 등장과 무기력함

언급했듯이 오컬트 호러 영화가 관객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방식은 그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무너뜨리고 혼란을 주는 것이다. 오컬트 호러 영화에 이성적인, 혹은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가 반드시 등장하는 이유다. 예로 들었던 <엑소시스트>의 의사와 신부가 나온 것처럼 말이다. 오컬트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이 악마에 빙의되거나 위협받는 존재에 몰입하지 않도록 만든다. 철저히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게 한다. 결국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수단으로도 이성적 존재가 필요하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에서 아가토 부제를 포함해 수많은 가톨릭 관계자들이 부마 의식을 부정하고 의심한다. 신학대 학장은 대놓고 가톨릭의 이성적 측면을 강조하며 부마 의식이 사기극임을 밝혀내려고 한다.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 밖에는 의사가 대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진짜로 뭐가 있긴 있는 게 공포.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곡성>의 주인공은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다. 흉악한 범죄자들도 감히 건들지 못하는 경찰 가족을 무심히 건드려 버리는 존재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이 수갑과 총, 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무언가에게 딸을 뺏겨가는 과정은 혼란스럽고 절망적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는 앞에서 기괴하게 사망해 버리는 환자는 덤이다. 

<사바하>의 주인공들은 논리적 수사로 사이비를 추적해 나간다

해외 오컬트 영화에서도 이성적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오컬트 제대로 만드는 감독 '아리 애스터'의 <유전>에 등장하는 가족의 가장은 정신과 의사다. 그럼에도 가족을 옥죄어 오는 심령 현상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아들은 무려 백주 대낮에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빙의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미드소마>는 주인공들이 모두 대학원생들이며 사건의 시작도 논문을 쓰기 위해 떠난 여행이다.

'최면'이라는 소재를 다룬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어의 주인공은 경찰. 그를 돕는 조력자는 정신과 전문의다. 논리적 방법으로 수사를 진행해 나가며 범인도 잡고 어떻게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밝혀내지만 그걸 막을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벌인 일인데도 경찰과 정신과 의사가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또한 영화 속 피해자(?)들 중에도 역시 경찰과 의사가 존재해 오싹함을 자아낸다.

이처럼 오컬트 호러 영화에는 다양한 이성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건에 접근하고 해결하려 하지만 결국 초자연적 현상과 미지의 존재 앞에서 무기력해질 뿐이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무기력함에 공감하게 되고 여기서 일종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오컬트 호러 영화가 일반 호러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과도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점프스케어나 고어한 장면이 오히려 관객의 이성적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물론, 오컬트 호러도 '호러'인지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이 등장하긴 한다.)


한국 오컬트 영화의 역사

오컬트 장르의 시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68년 개봉작 <로즈메리의 아기>다. 국내에서는 '악마의 씨'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미지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주인공의 심리적 압박과 주변 인물들의 광기로 표현해 낸다. 직접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큰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방식은 오컬트 영화의 씨앗이 됐다.

이후 그 유명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가 1973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게 된다.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게 작용한 영화였음에도 한국에는 '무당'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해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흥행했던 <월하의 공동묘지>, <살인마> 등의 한국 공포영화들은 한국 특유의 '한(恨)'의 정서와 복수가 주를 이루었기에 전혀 새로운 문법의 엑소시스트는 큰 충격을 주었고 한국 공포영화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국 최초의 오컬트 영화로 인정받는 이장호 감독의 <너 또한 별이되어(1975)>는 딸이 빙의가 되고 이를 병리적으로 접근해 치료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권위자에 의해 비과학적 방식으로 현상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엑소시스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서양에서의 악마대신 한국 특유의 한 맺힌 여귀가 빙의의 주최라는 점, 그리고 이를 치유하는 사람이 기독교 권위자인 신부가 아니라 심령과학자라는 것이다.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여성의 한'은 여전히 유효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소재였다. 이장호 감독은 <별들의 고향>을 통해 급격히 발전해 가는 사회 속에서 남자들로 인해 타락해 버린 호스티스의 인생을 다뤘고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현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존재했던 시기이기에 종교보다는 보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심령과학자를 선택한다. 이를 통해 엑소시스트에 강하게 배어 있는 서구적, 가톨릭적 정서를 배제한 한국적인 오컬트를 탄생시켰다.

故 김영애 배우님의 젊은 시절 미모와 호연이 돋보이는 <깊은 밤 갑자기>

고영남 감독의 1981년작 <깊은 밤 갑자기>는 할리우드의 오컬트 영화가 아닌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중산층 가정의 문턱을 넘어선 젊고 낯선 여성 노동자에 대한 경계와 질투, 나아가 두려움을 하녀는 서스펜스 스릴러로, 깊은 밤 갑자기는 오컬트 호러로 표현했다. 주인공이 심리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무당', '토테미즘' 등의 오컬트적 현상과 결합해 공포를 선사한다. 정신과학, 심령과학 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질투심과 집착을 야기하는 에로티시즘을 통해 주인공이 겪는 기이한 일들을 초현실과 현실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이후에는 오컬트 호러 영화의 명맥이 거의 끊겼다. 1998년 개봉한 <여고괴담>이 한국 호러 영화계에 유의미한 존재이긴 하지만 오컬트를 다룬 영화는 아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장화, 홍련>, <기담> 등의 웰메이드 호러 영화가 선방했으나 전반적으로 호러 장르의 침체가 이어졌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장재현 감독이다. 2015년 개봉한 <검은 사제들>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엑소시즘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2019년 개봉한 <사바하>는 밀교의 실체를 추리수사물 형식으로 접근하는 독특한 영화로 오컬트에 대한 감독의 심도 있는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오컬트 호러 전문 감독은 아니지만 나홍진 감독의 <곡성> 또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수작이다. 


마치며

<파묘>의 큰 흥행은 해당 장르 팬으로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우려스럽기도 하다. 파묘의 흥행으로 인해 앞으로 오컬트 호러 장르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많아질 것으로 본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건 돈이 된다는 말. 돈이 되는 것에는 사람이 꼬이기 마련이다.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한 대한민국 특성상 파묘의 후광 효과를 노린 양산형 졸작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특정 장르의 몇몇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 그 인기에 편승해 마구잡이로 해당 장르 영화를 만들어 내고, 권태감과 피로감에 관객들은 장르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패턴. 

그러니 제대로 된 오컬트 호러 장르 영화들이 조만간 또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묘처럼 매우 한국적인 소재를 잘만 이용한다면 역으로 해외에서도 매우 좋은 반응을 얻게 될 것이다. 왜? 계속해서 설명했듯 오컬트는 결국 미지로부터의 신비로움과 두려움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음양오행, 전통 샤머니즘, 다소 왜곡된 몇몇 종교들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매우 좋은 요소일 것이다. 

부디 파묘가 한국형 오컬트 호러의 '악마의 씨'가 되어주길 바라며...


*참고문헌: 

한국 공포영화의 오컬트 장르 초기 수용 양상 연구 - 한상윤

한국영화 <곡성>과 <사바하> 속에 드러나는 오컬트의 장르적 특성 - 조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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