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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12. 2024

일단 글을 써보자

내가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길에는 글쓰기라는 꽃이 항상 펴 있었다.

나는 하기 싫은 일에 있어서는 의지력을 상실한다.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어지고, 잘해서 인정받고 싶겠다는 전투력도 마이너스가 된다. 한 마디로 축 늘어진 나무늘보 자세를 취한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해본다는 대외활동에 도전해 봤다. 막연하게 방송 프로그램 기획 일을 해보고 싶어 막연하게 콘텐츠 기획 활동을 주로 하는 대외활동에 지원했던 것 같다. 합격했을 때는 앞으로 다가올 고생을 모른 채 기뻐하기만 했다. 인정받은 기분은 언제나 짜릿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마케팅


이 분야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지했던 만큼 나랑 적성이 맞을지 안 맞을지에 대해서도 감이 오지 않았다. 직접 부딪혀보니 멀리서 바라봤을 때랑 차원이 다르다고 느낄 정도로 다른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신기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 세계를 바라보지 못했다.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은 채 빨리 탈출해버리고 싶은 세계였다.


- 혹시 무슨 과세요?

- 광고홍보학과입니다.


이런 대답이 계속해서 들려올 때마다 '아, 내가 발을 잘못 디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적어도 다들 마케팅 기획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왔다고, 마치 그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동기가 아니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만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애정도 없다. 비행기에서 똑 떨어져 보니 이방인들로 가득한 외국에 온 느낌이다. '콘텐츠 기획'이 '마케팅'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원해린 내 손을 탓해야지 어쩌겠는가.


초반에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난생처음으로 내가 팀에 도움이 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팀 플레이에서 항상 리더 역할을 맡거나 1인분 이상은 해내는 내면의 안정감을 가졌기에 이러한 나 자신이 낯설게 보였다. 아이디어 채택도 못 받고, 디자인 능력도 없고, 마케팅 용어는 다 처음 들어보고, 혼란스러움의 연속을 직격탄으로 맞았다. 화상 회의 중간 몰래 인터넷으로 급하게 용어를 검색해 보면서 혼란한 감정을 잘 숨길 수 있었다. 회의 종료 화면이 뜬 후 곧바로 침대로 쓰러져 이불을 눈물로 적시면서 감정을 표출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아이디어 회의나 기획하는 절차에 익숙해졌고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보인 순간도 많았다. 대기업 임원진들 앞에서 기획한 아이디어를 발표할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소중했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결과가 뿌듯했던 것이지, 과정에서 뿌듯함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즉, 과정 속에 참여하고 싶다는 동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방송 기획과 적성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회의감도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하루종일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과정도 심리적인 부담감이 클 것 같았고, 무엇보다 기획자로써 가지는 '큰 그림 그리기' 능력이 나에게는 부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일하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일과 재미가 어떻게 공존하겠냐고 묻겠지만, 드문드문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내 밥벌이를 책임져야 할 일이 기계적이고 싶지 않다. 고통스러운 순간도 나를 위한 성장통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일을 이어나가고 싶다.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로 마케팅 분야로는 발가락도 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글'과 관련해서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입생 때 힙합 동아리에 들어가서 직접 가사를 쓰고 랩을 했을 때나, 21살에 잠깐 팟캐스트 대본을 쓰고 팀원들과 녹음했을 때의 눈빛은 반짝였던 것 같다. 가사이던 대본이던 쓰기 힘들다는 생각은 들어도 쓰기 싫다는 생각은 적이 없었다. 글쓰기는 나를 항상 빛내주곤 했다. 좋아하면서 잘할 있는 일. 가장 찾기 어렵다는 교집합을 희미하게나마 발견하게 되어 방향성을 다시 잡은 요즘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전을 안 해보고 가만히 있었다면 적성이 안 맞는 활동을 하면서 마음고생을 안 했겠지만, 마음고생으로 얻은 새로운 꿈을 갖게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직 내 진로는 추상적이고 흐릿해서 불안한 감정이 꿈틀대며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도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긴 소설이 되었던, 짧은 수필이 되었던, 일기가 되었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에서 글을 쓸 것이다.


내가 행복했던 길에는 항상 글쓰기라는 꽃이 활짝 피어 있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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