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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준비

2024.05.20. 월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쉬셔도 됩니다.

나에게 쉬는 것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에 빠지는 것.

그냥 흘러간 주말이 아까워 먼지 낀 자전거에 올랐다.

함께 따라나선 아내.

자전거가 가는 길이 잘 닦여진 안양천을 따라 고척돔까지.

왕복 3시간.

야생화 단지, 장미 언덕, 운동하는 사람 꽃을 보며. 

제주도 일주를 했던 왕년의 나는 아니나 보다.

시글시글 낮잠으로 퍼질러진 일요일.

그래도 뭔가 가득 차오른 맘, 다음 주에는 꼭 한강까지 가야지.  

   

정문에서 학생 맞이를 한다.

바쁜 일이 다 끝났다며 학생부장님도 나오셨다.

교감 선생님이 다가와서는

“많은 학교에서 전화 오지요?”

10일 정도 남았으니 치료 중인 선생님께 연락해 보시겠단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엎어진 김에 좀 쉬어 갈까?

되도록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다, 경험 없는 여고도 나쁘지 않다.

마무리해야 할 일은?

어떻게 아이들과 작별하지?    

 

종례 후에 하는 청소.

손걸레나 마대는 찾기가 어렵다.

주로 물휴지를 쓴다.

그것도 비닐장갑을 끼고.

마대는 세면대에 넣고 손으로 빨아줘야 한다.

어디 집에서 청소해 보는 아이들이 있느냐며 반쯤은 포기다.

그럼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나?

무엇이 맞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손수 빗자루를 들고 모범을 보이는 것, 팔을 걷어붙이고 지저분한 일은 대신해주는 것이 정답을 아닐 것인데.   

  

곱셈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도망가지 않고 찾아와 주는 준이.

세 자릿수 곱하기 한 자릿수에서 꽉 막혀버렸다.

아무리 답답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을 수는 없다.

몇 번이고 다시 풀어주며 설명하는데, 늘어지게 하품만 하고 있다.

집중해야 한다고 하면, 지금 집중하고 있다고 버럭 큰소리다.

어떻게 이리저리 굴리더니 한 문제 맞았다.

하나 더 해볼까? 했더니, 맞았을 때 그만하잔다.

내일 또 오겠다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

나눗셈까지는 해주고 싶은데.

저 아이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데.

산다는 것이 어디에서 굽이치고, 접힐지 아무도 모른다.     



유독 힘들었던 하루.

터덕터덕 걸어오면서 생각한다.

섬진강을 따라 구례를 넘어 간전에 가면.

도로보다 낮은 할머니가 계시는 선술집이 있고.

키 작은 긴 의자가 있고.

탁자 위에는 삐쩍 말라가는 열무김치나 총각김치.

신 막걸리 한 잔에, 휘휘 파리 날리며 우적우적 씹었으면.

코 앞, 길너머 산은 더 아득하게 멀어지겠지.

취한 막걸리병이 쓰러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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