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재혁이는 모든 일에 자동적으로 '죄송하다'로 답하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게 아니고. 엄마는 설명하는 거야. 엄마 말투가 너무 무서워서 그러니?”
"......"
언제부터였을까? 재이는 모든 일에 ‘죄송하다'라는 말로반응한다.
내 말투가 또 무서운 걸까?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은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그렇게 말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또 착잡한 마음이 든다.
어릴 때는 잘못을 해 놓고도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안 해서 애를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에게 하듯이 '미안해, 아! 아니 미안합니다. 아 아니지, 죄송합니다.' 라며 그 한마디를 찾는데 빙빙 헤매더니,
이제는 모든 일에 '죄송'으로 일관한다.
너무 속상하다. 애를 또 기죽게 한건 아닌지. 그리고 화도 난다. 이 정도도 타이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훈육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지.
"왜 죄송하다고 하는 거니?"라고 심호흡을 고르면서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요. 엄마 표정이 무서워서 내가 잘못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이젠 내 표정도 문제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전에 잘못을 많이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습관이 된 걸까?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도 고치고 싶고 뭔가 필요한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나 스스로도 잘못했다는 착각이 든다. 정말 싫다.
엄마는 죄송한 것만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한다.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벌써 '죄송합니다.'는 입 밖에 나와 버렸다. 엄마가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가르쳐주기 위해서 말한다는 것을 안다.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도 안다. 휴... 죄송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걸까?
그런데 학교에서도 같은 상황이 많다. 특히 툭하면 친구들에게도 ‘미안하다’라고 한다. 예를 들면 지나가다 톡 치게 되면 ‘어 미안 미안.’이라고 먼저 말한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어 그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신경이 날카로운 친구는 ‘됐어!’ ‘신경 쓰지 마’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라며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에게 잘못을 덮어 씌우거나 이런 건 아직 없다.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서 모든 일에 ‘죄송’으로 답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은 정말 잘못한 경우에만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에서야 내가 이해해 준다지만 학교에서 애들 사이에서도 죄송하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반응한다면 왠지 애들이 재이를 얕잡아 보거나 혹은 그들의 잘못을 덮어씌우지는 않을지 무척 걱정이 된다.
그런데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또! 무작정 죄송하다고 하지 말라니깐.’이라며 무서운 얼굴과 말투로 반응하니 이어서 계속 ‘죄송하다’가 나올 뿐이다. 하지 말라는 것은 말하지만 해야 할 것을 말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의 의사소통 이해하기
출처: 이보연 깨알 육아 아스퍼거증후군과 커뮤니케이션 (sangdam.kr)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는 의사소통이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잘 정리된 사이트가 있어서 내용을 발췌하여 재정리하여 드립니다.
1. 말이 장황합니다.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 그 과정이나 불필요한 정보까지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이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재이는 '하교 후 뭐 하고 놀았니?'를 물어보면 정말 아라비안 나이트의 천일야화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끝도 없습니다.
2.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즉 말 뒤에 숨어있는 뜻이나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질문자의 의도와 다른 답변을 하거나 의도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최근 재이가 쓰레기를 바닥에 버려서 제가 "쓰레기봉투에 넣어야지."라고 했더니,
입구가 묶여있던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입구를 묶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재이야, 아까 묶여 있었으니 다시 원상태로 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버리라고 했지, 묶어 놓으라고는 안 했잖아요."라고 하더군요.
3. 아주 '생뚱맞은' 표현을 씁니다. 간혹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애어른과 같은 표현을 씁니다. 반면 대상에 적절치 못한 언어사용도 많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은 친구들이나 가족들 간의 관계에서보다 책이나 미디어에서 언어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가끔 재이에게 시아버님의 말투가 느껴져.... 좀 어렵기도 합니다. ㅠㅠ 또 복싱에서 친구와 스파링을 하기로 했는데 안 나타난 것을 ‘친구가 발 뺌 했어요’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4. 자신의 관심분야를 상대가 듣든 말든 일방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주제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또한 반응에 상관없이 계속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다시 돌아와 이야기합니다. 재애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는 한번 시작되면 대화의 주제가 변환이 되어도 계속 되돌이표처럼 돌아옵니다.
5. 말을 할 때 틀린 문법이나 발음이 자주 발견됩니다. 언뜻 보면 말을 굉장히 유창하게 하는 것 같지만, 미묘하게 단어의 한 음절을 틀리게 발음한다던지, 주술어가 불일지 하거나, 시제가 혼재되기도 합니다. 제일 어려워하는 게 높임말 쓰기입니다. 재이는 한동안 '이모'를 '고모'로, '학교'와 '학원'을 지속적으로 틀렸습니다. 미묘하게 '이모'와 '이모부'도 바꾸어서 성별까지 바꾸어버리는!
6. 자기의 생각을 작은 목소리로 독백하거나 상대방이 말을 반복 후 대답합니다. 재이는 "아,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으니깐.. 과자 먹어야지. 그리고 숙제하고 유튜브 봐야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이걸 이해 못 한 저는 "넌 맨날 먹는 거, 유투부만 관심이냐!"라며 화를 내었습니다. 다시 한번 되뇌면서 기억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혹은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것도 같습니다. 화내지 맙시다!
7. 말은 잘하는데 이해력이 떨어집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아이들 중 말도 유창하고 어려운 단어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말하는 수준과 격차가 매우 큽니다. 또한 상대방의 얼굴표정이나 음성, 몸동작에 신경을 써 중요한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흔합니다. 또한 이렇게 놓친 경우 다시 묻는 다던지 혹은 확인하는 질문을 하는 것도 미숙합니다. 재이는 제가 뭘 물어보면 제 표정과 손을 쳐다보면서 정작 질문을 듣지 못하여 여러 번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또 폭발하겠지요. 화내지 맙시다!!
8. 아스퍼거 증후군의 아이들은 비언어적 표현에 개인별 독특한 특징을 보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언어적 표현을 중심으로 의사소통하기에 종종 언어적 표현의 문맥에 부적합하거나 관련 없는 비언어적 표현을 쓰게 됩니다. 또한 시선을 맞추는 방법도 독특해서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얼굴을 지나 칠 정도로 빤히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재이는 이야기를 할 때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급하다던지, 혹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라는 것보다는 자동적인 것도 같고, 딱히 긴장할 상황이 아닌데도 보여서 그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재이도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재이가 스스로 솔루션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특히 엄마가 이런 부분에서 도와주기를 요청했습니다.
- 자동적으로 나온 ‘죄송하다’ 후에 시간을 갖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 내가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를 했을 때 이렇게 말해주세요.
“이건 죄송한 게 아니야. 그냥 다시 하면 되지” : 정확히 죄송한 상황과 아닌 상황을 구별해 주면 배울 수 있어요.
“우리 생각해 보자. 이거 죄송한 일인가? “ : 이렇게 물어봐주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나 스스로 구분할 수 있어요.
- ‘1, 2, 3초’ 생각 후에 이야기하기: 3초 정도 생각하고 말하면 죄송하다는 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 첫 번째 ‘죄송합니다’는 큰 의미를 두지 말고 생각해 보고 대답하는 ‘죄송합니다’를 늘려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