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들어가며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수동 한양대학병원에서 태어나, 학창시절과 청춘의 대부분을 동작구 상도동에서 보냈다. 서울 사람이었던 나는 한번도 서울에서 낯설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3년 초가을, 디자이너분들과 서울패션위크를 함께하면서 그들의 몸짓과 눈빛에 처음으로 내 고향 서울에서 이방인이 된 것처럼 낯이 설었다. 그 느낌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서울컬렉션 까이에쇼. 이국의 음악, 화려함이라는 단어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붉은 색감에 도취되어 워킹이 계속되는 내내 난 저 먼 이국에 있었다. 이번 쇼의 준비 과정과 작품에 깃든 이야기, 그리고 디테일에서 오는 우아함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김아영’의 이야기를 풀어 가보려 한다.
Natural elegance from detail
실루엣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우아함
디자이너 김아영
Q.
디자이너로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름다움의 정의라기보다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보시는 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특히 ‘까이에’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 또한 뷰티 브랜드를 하면서 우리만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될 때가 많습니다.
A.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마다 같은 답을 할 수 없는 단어잖아요. 외적인 아름다움은 나이, 장소, 시대, 환경에 따라 눈도 생각도 느낌도 계속 변하니까요.
저는 바로 지금,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느껴요. 그 열정이 굳이 외적으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비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파리에서 그림을 전공했었어요. 당시 현재 남편과 연예 중이었는데요. 학교 과제로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저희 집에 잠시 찾았을 때 남편이 온지도 모르고 그림 그리는데 빠져 있던 제 모습에 저희 남편이 푹 빠졌다고 고백하더라고요.(웃음) 패션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는 모습이 모델은 워킹하는 모습이, 화장품을 만드는 사람은 연구하는 모습이, 누가봐도 가장 아름다워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Q.
화장품 브랜드를 하면서 하는 많은 고민중의 하나가 익숙한 것을 다시 재해석 해야하는 것입니다. 너무 어려운 소재를 들고나오면 소비자가 반응하지 않고 너무 멀리 나가면 따라 오지 않습니다. 대중의 이야기를 작품에 녹여야 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습니다. 의상 또는 섬유라는 한정된 소재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디자이너님 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저희가 사용할 수 있는 소재는 한정이 되어있어요. 아직 작은 기업이다보니 직접 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은 되지 않기 때문에 있는 주어진 소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많은 소재를 수집한 후 서로 다른 터치감, 컬러, 패턴 등을 매칭해 보는 작업을 먼저 해요. 그리고 선택한 소재들을 조합해서 디자인에 녹여내죠. 아마도 저희 제품에 절개가 많은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선택한 소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서로 다른 것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재료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간혹 어떤 디자이너들은 도대체 그 특이한 소재를 어디서 구한거예요? 라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웃음)
Q.
이번 까이에 2024 S/S서울컬렉션의 주제는 [미스틱 인디아] 였는데요. ‘인도’라는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해석할 수 없는 나라의 판타지를 강렬한 붉은 색감으로 표현해 내신 것 같습니다. 이 작업 과정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매번 돌아오는 패션위크에서 주제를 정하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으신가요?
A.
평소 낯선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은 특히 우리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데요. 낯선 것들은 아직 내 머릿속에 특정 이미지가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컬렉션은 인도의 '자이푸르'라는 도시를 다녀온 후 인도만의 고유한 컬러와 화려한 디테일에 매료되어 이번 컬렉션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사암과 그 위로 쏟아지던 핑크빛 햇살이 아름답던 도시 자이푸르는 신비로운 자연의 색과 화려하고 정교한 인도 특유의 장식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장소였습니다. 그 신비하고 오묘한 컬러를 재해석하고, 인도 전통 의상에서 보이는 매듭, 언밸런스한 드레이프, 레이어드 등의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까이에만의 보헤미안 룩으로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Q.
디자이너님께서는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셨는데, 패션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언제부터 시작된 꿈일까요?
A.
스물넷살 때 유학을 떠났어요. 사실 처음 떠날 때는 파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꿈으로 떠났던 것 같아요. 유학만 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을 그릴 때도 패션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옷이 좋아서 구입한 옷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천을 사다가 위에다 놓고 그대로 그려서 만들어 입기도 하고… 그 때는 패턴이라는 것도 모르던 때였으니까요…
미술 학사를 마치고 석사과정으로 들어가면서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림에만 파묻혀서 작업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면서 직접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나가는데 더 가치를 느끼는 성향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패션을 업으로 하는건 어떨까 하고 전향하게 되었죠. 그림을 그릴 땐 혼자만의 작업이었다면 패션은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이쟎아요. 그리고 그림처럼 갇혀있지 않고 솔직해서 좋아요.
Q.
패션에는 작품으로서의 측면도 있지만 비즈니스의 측면도 있습니다. 패션 비즈니스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어떤 장면이 있을까요? 성취와 좌절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저는 제가 만드는 옷 한 벌 한 벌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며 디자인해요. 내 곁에 있을 땐 그 어떤 예술보다 영혼과 정성을 들여 가치있는 옷을 만들지만 판매가 되는 순간부터는 비즈니스겠죠. 아마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브랜드를 바로 론칭했는데 당시 전 만들기만 하면 다 판매가 되는 줄로만 알았어요. 비즈니스라는게 필요한지도 몰랐죠. 아직도 비즈니스가 가장 어려워요.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요. 브랜드 론칭 후 일년도 채 안되었을 때, 우연히 동대문 종합시장을 지나다가 저희 까이에 옷을 입은 분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비추는 것처럼 그 주위의 사람이나 풍경은 모두 사라지고 그 분만 제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때 그런 꿈을 꿨어요. 이 길 가득 모두 까이에로 채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이요.(웃음)
Q.
김아영 대표님은 현재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패션계의 중추로서 역할을 하고 계신데요. 디자이너로서, 사업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가요?
A.
저희 까이에가 많은 분들에게 갖고 싶은 옷, 보여주고 싶은 옷, 알리고 싶은 옷이 되면 좋겠어요. 항상 사람들이 까이에를 입은 모습으로 거리마다 가득한 모습을 꿈꿔요. 그러기 위해서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흔들리지 않고 차근차근 브랜드 스토리를 쌓아가다보면 굳이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다’ 하지 않아도 모두가 사랑해주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요?
Q.
마지막으로 프로페셔널의 길에 대해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유통 등을 포함하여 예술과 산업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기준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예측불가능한 현실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고 묵묵히 걸어가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듯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전해 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A.
어릴 적 봤던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했던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라는 대사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데요.
지금 바로 이 시간이 나의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아무리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항상 진심과 열정으로 임한다면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조금씩 조금씩 채워갈 것이라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 내내 그녀는 웃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정신없는 패션위크 무대 뒤 리허설 때도 그녀는 웃고있었다.
긍정의 힘. 그리고 거기에서 샘솟는 열정.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인터뷰라는 일로 만나 서로의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다음을 그렸다. '우리' 였다. 너와 나를 넘는 '우리'라는 단어로 그녀는 나를 포괄했다. 그녀와 함께 그려갈 다음이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