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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쎄스 버디 Aug 18. 2023

만남: 시작이 두려운 당신에게

돈은 없지만 골프는 치고 싶어

배움의 시작

나는 배우는 걸 참 좋아한다.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라기 보단, 알지 못하는 걸 새로 시작한다는 호기심, 설렘을 즐겼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공식적으로는 '엄마의 교육철학'이라 칭하고, 실상은 넉넉잖은 가정형편 때문에 학원을 한 군데밖에 다니지 못했는데, 학원을 대 여섯 군데 다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숙제가 많아서, 노는 시간이 부족해서, 힘이 들어서'라는 많은 이유로 학습지를 하고, 학원을 다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나에게는 그저 돈 많은 아이들의 투정으로만 느껴졌었다.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이 놈의 '배움 병'은 나이가 마흔이 넘어도,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애엄마가 되어가 되어도 변하지 않았다. 여행의 목적으로 시작했던 일본어, 혹시나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독학했던 중국어, 요즘 대세니까 싶어 배워봤던 1인 미디어 촬영 수업, 경단녀 극복을 위해 도전해 봤던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청소년 심리사.  비단 이런 자기 계발 류의 배움 말고도, 수영, 요가, 헬스, 필라테스, 방송댄스 무엇이든 관심이 끌리는 대로 등록하고 배웠다.


배움의 끝

무언가를 시작할 때의 베포는 어찌나 큰 지 어학학원은 3개월 등록은 기본이었고, 자격증 책은 3급에 도전하면서 2급의 교재까지 다 준비해 놓고, 운동센터는 6개월치를 한 번에 등록한 적도 많다.

문제는 참으로 애석하게, 그 무엇 하나 완성도 있게 끝까지 마쳐본 게 없다는 것이다. 1년을 넘게 배웠던 일본어는 길거리에 일식집 간판이나 겨우 읽어내는 수준에 멈춰있고, 중국어는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니취팔러마(你吃饭了吗)?'만 입에 붙어 있다. 몇 개월치를 등록한 운동센터는 열 손가락 안으로만 출석을 해내도 나 자신이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했고, 이쯤 되면 예상이 되겠지만, 자격증 역시 그 무엇 하나 취득한 게 아직은 없다.  


시작의 멈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내게, 잠깐의 멈춤의 시기가 있었다.

시작만 있고 과정이나 결과가 부족했던 '배움의 과정' 과는 다르게, 나에게 있어 돈 버는 '일'은 달랐다. 나의 일 만큼은 완벽한 결과까지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고, 그 노력에 보답이나 한 듯 성과도 잘 보여주었다. 웃기게도 배우는 걸 좋아하던 나는, 배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사업을 했다. 배움이라는 게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지, 모르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희열을 아이들에게도 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은 학원사업의 성장으로 돌아왔고, 그 성장은 나의 내면의 자존감을 채워주었으며, 높아진 자존감은 무엇이든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용기로 발현되었다.


하지만 성장도 언젠가는 끝이 있는 법.

2020년 1월. 우한발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호기롭게 시작했던 학원 사업이 주저앉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며 모아두었던 돈도 단 3개월 만에 바닥을 드러내며,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다고 느낀 나는, 알토란 같이 알뜰살뜰 잘 꾸려왔던 학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가 실행이 되고 나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순이가 되었다. 학원을 폐업한 후 반 년정도를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에 온전히 잠에 들 수 없어 매일을 맥주 두세 캔 씩 마시며 티브이만 쳐다보다 해 뜨는 걸 보며 겨우 잠이 들었고,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은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내 통장잔고는 바닥을 드러내며 멈추었지만, 나의 자존감, 활동능력, 그리고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내 베포는 바닥을 내리 뚫고 지하까지 깊숙이 처박혀 버린 것이다.


사라져 버린 의욕

'또 뭘 시작하려고?' '또 등록하려고?' '이번엔 끝까지 할 수 있어?'라고 무언가를 새로 하려는 나에게 항상 태클을 걸어오던 남편마저도 나를 방 밖으로 꺼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이미 땅 속까지 꺼져버린 나의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재밌는 티브이를 봐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사랑하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도 나는 무미건조하게 반응했다. 내 영혼은 뿌리부터 메말라 꽃잎이 쪼들아 져버린 꽃 화분 같았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도 꽃잎에 물방울이 겉돌기만 하고, 물을 흠뻑 줘버리면 뿌리가 섞어 버려 죽을 것 같은 그런 꽃화분 말이다. 이런 나를 보는 나 자신도 내심 놀랐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한순간에 시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돈을 잃어버려 속이 상함도 있었지만, 무슨 수를 써봐도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 내 일터를 보는 것이 내 가슴을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사람이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구나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내 믿음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고는 이제는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시작하는 용기

무기력병에 빠진 나를 구해준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그건 바로 남편친구 J 씨. J 씨는 남편이 동네 골프 동호회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인데, 나이가 같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만난 지 하루 만에 친해졌다고 한다.

그 후 J 씨 부부와 우리 부부는 코로나로 거리 두기가 한창이었던 시절 오아시스 같은 만남을 가지며 서서히 친해졌다. 특히나 방구석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나의 실패에 대해 시름시름 앓고 있던 나를 J 씨 본인 집으로 자주 초대를 해주었다. J 씨 부부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나는 아직도 방구석에 처박혀서 뼈아픈 실패에 대해 홀로 눈물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J 씨는 집에만 있지 말고 골프를 배워보는 건 어떠냐며, 실은 본인 와이프도 골프를 시작하게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배울 생각을 안 한다며 나와 같이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그 무엇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한사코 거절하는 내 의견을 가뿐히 무시한 J 씨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알고 있는 레슨프로에게 연락을 하고, 그렇게 나는 2021년 2월 골프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후일담으로, 사실 J 씨에게도 숨겨진 속내가 있었는데, 부인들이 골프를 시작하면, 본인들 역시 자유롭게 골프를 다닐 수 있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골프 치며 드는 비용이 더블로 늘어나는 걸 간과한 아주 단순한 속내였던 것이다.


무엇이든 시작을 쉽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려운 사람이 있다. 코로나 전에는 나는 전자(前者)였고, 코로나 후로는 후자가 되었다. 시작을 쉽게 잘했던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첫 발을 내딛는 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지를. 혼자 스스로 두 발을 디딛고 일어서서 걸어갈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때론 그 일이 힘들고 두렵고 망설여질 때, 앞뒤 따지지 않고 막무가내로 두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줄 누군가의 도움이 참으로 필요할 때가 있다. 혹여나 결과가 두려워 시작도 못 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고,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주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작심삼일이면 어떠한가. 삼일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시작이 어렵다면, 누군가가 손을 내밀 때 마지못해  못 이기는 척 그 손을 잡고 한 발 떼어봤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누군가가 방구석에 처박혀서 웅크리고 있다면, 일어나서 같이 산책이라도 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보자. 내가 내민 작은 두 손이 누군가에게는 튼튼하고 빛나는 금동아줄처럼 느껴질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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