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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쎄스 버디 Aug 18. 2023

경험: '첫' 경험에 대한 고찰

돈은 없지만 골프는 치고 싶어

첫 경험을 위한 준비

2021년 2월의 마지막 주. 나는 그렇게 골프채를 손에 잡게 되었다.

다행히 나에겐 8년 전에 시엄마에게 받았던 클럽이 있어 골프를 시작하는데 큰돈은 들지 않았다. 나와 같이 골프를 시작하게 된 J 씨의 와이프 S언니는 보통의 골프를 시작하는 미씨들이 그러하듯 남편이 클럽을 세팅해 주었다. 클럽은 골프채의 영어표기이다. 처음부터 새 클럽이 있으면 좋겠지만, 언제 그만 둘 지도 모르고 체격이나 체력조건에 따라 클럽들을 또 바꿀 상황도 생기니 중고로 시작하거나, 레슨 받는 곳에 비치해 둔 대여용 채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보통 7번 아이언으로 연습을 시작하는데, 7번 아이언만 중고로 구입을 해서 레슨을 시작해 보고, 이 운동이 나와 맞는구나라고 생각이 들면 클럽들을 구매해 보는 것도 좋다.


골프레슨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스크린 골프장 안에서 티칭프로에게 레슨을 받았다. 보통 스크린 연습장의 레슨은 1회당 약 15분 정도의 짧은 레슨을 해주는데, 나는 처음부터 50분 레슨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독학보다는 레슨을 추천하고, 짧은 레슨보다는 적어도 한번 받을 때 30분 이상은 레슨을 받는 걸 추천한다. 그래야 일관성 있는 스윙자세를 빠르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였으면 방안에 처박혀 시간만 죽치며 사업실패에 대한 뼈아픈 시련만 생각하며 애꿎은 맥주캔만 찌그러트리고 있었을 터인데, 시간이 날 때마다 S언니는 나를 연습장으로 부지런히 불러 내주었다. 지루한 초보시절 연습을 같이 할 수 있는 골프메이트가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사람인지, 그녀는 내가 힘들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를 밝은 빛으로 인도해 준 나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약 열 번의 레슨을 받으며, 닭장 같은 천막이 드리워진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연습만 주구장창 하고 있던 와중, 행동대장 남편 친구 J 씨에게 연락이 왔다. 충청도의 한 골프장을 회원가로 양도받았다며 와이프들 머리를 올리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내 계획보다 훨씬 더 앞당겨졌지만, 뭐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생각하며 앞으로 남은 일주일 더 열심히 연습을 해야겠다는 각오만이 가득했다.


머리 올리는 날

날짜는 이미 정해졌다. 멤버도 정해졌다. 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올릴 준비가 되었는지, 이대로 나가도 되는지 걱정도 되었다. 근데, 왜 첫 필드 나가는 걸 머리 올린다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공은 팔로 치는 건데, 팔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공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올리다고 표현을 하다니 말이다.

'머리를 올리다'라는 표현은 정식용어는 아니고, 골프 은어이다. 이 표현을 국어대사전에 찾아보면 첫 번째 여자의 긴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엇바꾸어 양쪽 귀 뒤로 돌려서 이마 위쪽에 한데 틀어 얹다. 두 번째 어린 기생이 정식으로 기생이 되어 머리를 쪽 지다. 그리고 세 번째 의미로는 여자가 시집을 가다 등의 의미로 정의되어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알 듯이 머리를 올리다는 말은 첫 필드 경험, 즉 첫 경험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첫 경험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첫 경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맘대로 꾸는 꿈

당신은 첫 경험이 생각이 나는가? 내가 꿈꾸어 왔던 첫 경험은 5성급은 아니지만 그대로 어느 정도 이름은 있는 어느 호텔에서, 순백의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입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양키캔들의 '비치워크'향이 은은히 퍼지고, 잔잔하게 깔리는 첼로의 선율을 느끼며 가볍게 마신 와인에 취해 발그레해진 얼굴을 부끄러워하며, 준비가 된 듯하지만, 아닌 듯, 가벼운 입맞춤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내가 꿈꾸어 왔던 필드 첫 경험 역시 비슷했다. 아주 비싼 회원제 골프장은 아니지만 조경이 이쁘고 잔디 관리가 잘 된 어느 회원제 골프장에서, 남편과 커플룩으로 맞춘 멋들어진 골프복을 입고, 첫 필드 라운딩이지만 처음 나온 것 같지 않은 여유로움과 연습장에서 처럼 보여준 빵빵 잘 나가는 드라이버 티샷을 꿈꾸었다. 티칭프로도 나에게 굉장히 감각이 좋고 초보 같지 앉은 실력을 갖고 있다며 머리 올리러 가서도 잘할 거라며 내 어깨에 커다란 뽕을 달아주었다.


내 맘 같지 않은 현실

하지만 현실은 꿈같지 않았다. 우선 커플룩 따윈 없었다. 어떤 옷이 필요한지도 몰라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 했다. 그저 인터넷에서 여성골프복을 검색한 뒤 제일 저렴한 반바지와 티셔츠를 구입한 게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8년 전 물려받았던 골프가방이 지퍼가 모두 삭아서 끊어져버려 닫히지 않았던 건 머리 올리는 전 날밤 알게 되었다. 다 낡은 골프가방을 보고 남편 한숨을 쉬며 '이런 것도 확인 안 했냐'며 신경질을 냈는데, 낸들 쇠로 된 지퍼가 삭아서 없어질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새벽 6시쯤 티오프였는데,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시간에 딱 맞게 겨우 도착해서 늘 하는 스트레칭도 생략하고 첫 홀, 티샷에 나섰다. 매번 좁은 스크린장의 화면만 보다 넓디넓은 푸른 잔디를 보니 어디를 보고 쳐야 할지 모르겠다. 티를 꽂는데 손이 달달 떨려 남편이 부리나케 달려와 티를 꽂아 골프공을 얹어 주었다. 그날 나는 어땠을까?

연습장에서 빵빵 잘 나가던 드라이버는 실상 필드에서는 뱀처럼 기어서 굴러갔고, 그나마 수만 번 휘둘러 봤던 7번 아이언이 몇 번은 잘 맞아 주어 내 체면을 겨우 살려주었다. 그린 주변에서는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공이 큰 별을 그리며 왔다 갔다 했고, 뒤에서 쫓아오는 다른 팀 때문에 그린 위에서 퍼터는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하고 공을 죽어야 했다.

원래 필드 라운딩에서 공을 잘 못 치면 본인 클럽을 들고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는 남편 말에 내가 친 공이 2-3미터 앞에 툭 처박혀 버리면 이 생각 저 생각하지도 못하고, 열심히 뛰어 바로 공을 쳤다. 여유로움은 찾아볼 생각도 못 했고, 스윙템포는 급해지기만 하고 드넓은 잔디밭을 보니 멀리 쳐야겠다는 본능이 단전부터 끌어 올라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니 공이 잘 맞을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폭망이었다.  


'첫'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두려움

머릿속으로 완벽한 첫 필드에 대한 환상만 키웠지, 그만큼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상상 속의 라운딩은 온데간데없고, 18홀 내내 '이게 아닌데'만 내리 중얼거리다 끝나버린 첫 라운딩. 이는 근사한 첫 경험을 위해 멋들어진 호텔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이미지만 그리며 부푼 기대감을 갖고 그 장소에 도착을 했는데, 그 호텔이 간판만 호텔인, 모텔만도 못 한 여인숙 같은 곳이었을 때의 황당함 같은 느낌이다.

첫 라운딩을 나가기 전에, 인도어라고 불리는 실외연습장에서 실제로 공이 떠서 가는 구질도 확인해야 했고, 집 근처 파3 연습장을 최소한 5번 정도는 가서 어프로치감각과 실지로 잔디에서 쳐보며 잔디 치는 느낌과 친해져야 했고, 내가 머리 올리려는 골프구장을 스크린 게임장에서 몇 번 경험해 보며 대충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눈으로 필드맵(map)을 충분히 익혀야 했다. 그리고 머리 올린 사람들의 경험담을 수시로 접하며 간접체험으로나마 내가 갖고 있는 환상과 기대감을 누구러 뜨려야 했다. 그랬다면 필드에서의 나의 첫 경험이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가 아니라, 재밌는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무엇이든 간에 첫 경험은 사람의 기억 속에 깊게 남기 마련이다. 괜히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첫 등교등을 얘기하며 '첫'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 첫 경험이 좋던, 쓰라리던, 아리던, 아름답든 간에 머릿속에 항상 기억되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물론 나의 첫 경험이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못했더라도, 어쨌든 그 또한 나의 첫 경험이므로,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 저쪽 깊은 곳에서 불현듯 튀어나와 피식하며 웃음거리로 되뇌어지기도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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