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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쎄스 버디 Aug 24. 2023

무한 재도전: 지루한 연습과정

돈은 없지만 골프는 치고 싶어

무모한 도전

2005년 여름쯤, MBC에서 무모한 도전이라는 예능을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한도전의 시즌1편으로, 나는 무한도전보다 무모한 도전의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중 제일 생각나는 시리즈는 차승원이 나왔던 편이었는데, 차승원과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다 같이 나와,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위 연탄을 옮겨 싣는 에피소드였다. 모델 겸 멋진 배우로 알려진 차승원이 목이 늘어난 흰 티에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나왔을 때의 충격이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특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도전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면, 왜 저렇게 무모한 짓을 열심히 하지?라고 생각했다가, 이 프로 이름이 무모한 도전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의 무한도전

첫 필드 이후로 나에게도 무한 도전이 시작이 되었는데, 다시 필드에서 멋지게 샷을 날릴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아파트 연습장의 시설도 사격장 타겟 모양의 천막에서 기계식으로 바뀌었다. 내가 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볼 수도 있고, 거리와 방향도 바로 확인이 되니 그전보다 연습이 더 재미있어졌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대한민국 특전사의 구호처럼, '안 되는 샷도 되게 하라'는 일념하나로 연습장을 매일 꾸준히 방문하였다.  

남편친구 J 씨에게 급하게 필드를 잡은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연습장에서 연습만 하기 지치고 힘들 때, 필드에서 내가 잘 못 친 샷들을 생각하면 연습을 억지로라도 하게 된다'며, 더 연습하라는 의미로 급 필드라운딩을 잡았다고 답해주었다.

골프를 치는 지인들이 늘어나면서 첫 라운딩 후 들었던 생각들을 물어보면 대게 두 가지 반응이었는데, 반 정도는 너무 재밌었고 더 열심히 연습해서 또 나가고 싶다였고, 나머지 반정도는 때려치우고 싶다였다. 물론 때려치운다고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려치우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은 한다. 그렇다 그저 말만 한다.


유한도전

사실 나는 뭐든 쉽게 그만두는 사람이었다. 시작도 금방 하였지만, 이 길이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여겨지면 딱 삼일을 고민해 보는데, 고민하는 과정도 계산적이고 구체화시켜서 결정하는 편이다. 우선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장점과 단점들을 쭉 나열한 다음 각각 항목에 대해 점수를 매겨본다. 그런 다음에, 단점의 점수가 더 높을 경우 가차 없이 그만둬버린다. 내가 운영을 해 오던 학원을 폐업처리 할 때도 그랬다. 오랫동안 끌고 온 학원에 대한 정과 학부모들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의리로 학원을 계속 존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높은 임대료와 언제쯤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에 굴복하고 학원을 폐업할 것인가를 놓고 딱 삼일을 고민했다. 그리고 폐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을 때는 곧바로 학부모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반반 잘 어우러진, 거기에 약간의 한풀이를 얹어 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폐업신고서를 낸 후, 학원을 철거시켜버렸다. 이 모든 것이 단 6시간 만에 이루어졌다. 인테리어가 참 예뻤던 학원이지만 코로사 시국에 다른 학원으로는 임대가 나갈 것 같지 않아 그냥 텅 빈 상가건물로 그렇게 학원을 없애버렸다.

주변에서는 그런 날 보고 포기가 빠르다고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결단력이 있다고도 했다. 나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는데, 나를 보는 시선에 따라 나를 쉽게 그만두는 사람으로 또는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를 하니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코로나가 3년간 지속되었을 때는 나는 내 판단에 대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었고, 엔데믹 선언 후 학원사업들이 더 잘 되는 걸 보고는 약간 아주 약간 미련도 남았다.


무리한 도전

물론 골프도 나의 고민의 카테고리에 들어온 적이 있다. 이 비싼 운동을 계속해야 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고민을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연습을 해도 확 나아지지 않는 실력과 잦은 부상 그리고 체력소진으로 인한 내 역할의 부재였다.

머리를 올리기 전에는 매일 한 시간씩 연습장에서 연습을 했다. 머리를 올리고 나서는 매일 두 시간씩 연습량을 늘렸다. 머리 올리고 약 한 달 뒤에 두 번째 라운딩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라운딩은 좀 더 많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작은 기대감으로 연습에 임했다. 첫 라운딩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잔디밭에 기가 눌렸으니 두 번째 라운딩 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마인드 컨트롤도 단단히 했다.

그러나 결과는 뻔했다. 그나마 두 번째 라운딩이라고 드라이버샷이 뜨긴 했던 것 같다. 그 걸로만 만족해야 했다. 이 정도로 연습을 하고 레슨에 돈을 썼으면 내 몸도 양심이 있지 어느 정도는 쳐줘야 하지 않나 하며 괜스레 내 운동신경을 탓했다. 그리고 연습시간도 더 늘렸다.

그러다 탈이 났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골프채 잡고 5개월쯤 되었을 때, 왼쪽 등갈비뼈(견갑골뼈) 세 군대가 골절이 된 것이다. 우습게도 골절이 된지도 모른 채, 단순 근육통인 줄 알고 한의원을 수십 번 가고, 폼롤러로 수백 번 문질러 댔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등 쪽의 뼈가 골절이 된 적이 없으니, 골절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숨 쉬기가 힘들고, 통증은 움직일 때마다 계속 있었다. 몸은 계속 아파오자 동네에서 꽤 소문이 난 중국 마사지 샵에 가서 90분 동안 마사지도 받았다. 건들 때마다 아파하자 관리사는 이 정도로 근육이 뭉치도록 어찌 참았냐며 더욱더 정성스럽게 골절 부위를 문질러 주었다. 침을 맞고, 마사지를 받고, 폼롤러로 스트레칭을 한 뒤 또 연습장엘 갔다. 미쳐도 예사로 미치지 않고서야 왜 그리 열심히 했던 걸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웃기다. 내가 이토록 미쳐가며 공부를 했더라면, 난 아마 관악산 언저리에 있는 국립대학교를 들어갔을 듯하다.


무한 재도전

여튼간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에게는 단점이 더 많은 골프라는 운동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를 놓고 하루정도 고민을 했다. 보통 삼일은 고민을 해봐야 하지만 하루 만에 결론이 났다. 결론은 당연하겠지만, 계속하겠다였다. 그 이유는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간에 시작만 있고 끝이 없던 나. 끝을 내는 것도 쉽게, 단칼에, 오만가지 이유를 핑계로 단칼에 처내버렸던 나. 그런 내가 이제는 싫어졌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골프의 끝이 어디 있겠냐만은. 코로나로 내 일도, 흥밋거리도, 가족들의 관심도 모두 끊어내 버리고 숨어 지낸 지난 나의 1년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것처럼,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 그만두고 싶지 않아 졌다.

무모한 도전의 석탄 나르기 편을 보면, 일정한 속도로 계속 쏟아져 오는 석탁들을 열심히 아무 생각 없이 그 어떤 의미도 두지 않고 열심히 나르는 멤버들을 볼 수가 있다. 우리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가끔은 어떤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무념무상으로 그저 담담히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시시비비를 가려가며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잠시 내려놓고, 당장에는 이익이 없을지라도 그냥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내게 숙제처럼 주어진 일을 그저 해 나아가 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광명이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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