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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번 Feb 21. 2024

5년 만에 집에 가니, 집이 없어졌다

재개발로 인한 고향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 보니 해외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는 중이다. 호주에서 지내고 있지만 일 때문에 한국과 호주를 자주 왕래 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발생한 후에는 한국에 갈 기회는 어려워졌고, 그 어려움을 뚫어내면서까지 한국에 갈 이유는 없었다. 코로나 기간 중에 아기가 태어나서, 그 어린것을 데리고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면서 한국을 가는 것과 자가격리를 하는 생각만 해도 힘들어 보였다. 코로나 제한이 풀리면 가야지, 아기가 조금 더 크고 난 다음에 가야지 하는 것이 쌓이다 보니,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5년이 넘었다.


호주는 한국이랑 시차는 1~2시간 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계절은 반대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에서 한국을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로 10시간 이상을 날아가야만 했고, 내가 체류하는 호주 멜버른은 한국에 가는 직항편도 없다. 경유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16시간 정도는 걸린다. 이 모든 힘든 조건을 뛰어넘는 것을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1년에 한 번씩 가족이랑 한국에 간다고 하더라도, 조무보 님이 손자를 볼 수 있는 기회는 10번이 안될 것이라는 것이다. 조부모님이 호주로 오는 것은 힘들어하시니, 우리가 가는 방법 밖에 없다. 이 생각을 하고 난 다음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은 재빠르게 진행되었다.


호주에서 살면서 부모님에게 들은 소식이 있었다. 집을 이사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집을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고,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 2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되면서 그 지역 일대를 모두 허물어 버리고 아파트를 지은 다는 것이었다. 

재개발을 한다는 소리는 10년 전부터 들어왔었다. 하지만 재개발을 한다 안 한다 말이 나오기를 반복하더니만 결국은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재개발조합에서는 정해진 기간 안에 이사를 하면 이사비용 500만 원 이상을 지원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사 비용을 지원받기 위해서 이사를 하였다.


재개발로 인해서 출입 통제가 걸린 성남시 상대원 2동 골목길 입구


경기도 성남은 서울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성장한 도시였다. 지금은 성남시 인구가 90만 명이 넘어서서 성남 특별시로 지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말들이 나올 만큼 크게 성장했었지만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었다

1970-80년대에 서울이 급격한 성장을 시작하면서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울로 몰려드는 이유는 단순했다. 서울에 가면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부모님 또한 시골에서 지내시다가 일을 하기 위해서 올라오셨다.

하지만 서울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조차 없는 사람들은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옆에 성남에 자리 잡게 됐다.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bed town"으로 됐으며, 서울이랑 가깝다는 이점으로 많은 공장들이 성남에 자리 잡게 되었다.

성남에 있는 공장들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은 그중에서도 아주 낙후된 환경이었다. 성남시 상대원 골목길은 평지가 별로 없고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이 밀려드니 계획적인 도로정비는 할 수 없었고, 산 위에 도로를 덮어 버린 것이었다.


식구 5명이 방 1칸에서 지냈으며 1층에서 살았다. 같은 건물 지하에도 다른 사람들이 살았으며 그들도 방 1칸에 4-5명이 살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화장실도 재래식 화장실이었으며 초등학교 때까지 재식 화장실을 이용했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대문을 나와서 같은 건물의 다른 대문을 거쳐야 했다.

그 화장실은 우리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사용했었다.

밤중에 초등학생을 재래식 화장실을 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해서 부모님은 요강을 사용하라고 하셨다. 

초등학생이 푸세식 화장실에 빠지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닌, 죽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때는 다 그랬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불편함이나 불결함도 없었다


상대원의 악명 높은 언덕길. 눈이 오면 자동차건, 사람이건 어렵다


성남시 상대원은 시골 같은 모습이 아니었고 나름 현대화를 잘 따라가고 있는 곳이었다, 콘크리트 골목길에 수많은 집들이 붙어 있었고 동네에 사는 비슷한 나이 또래는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아침에 9-10시 정도 되면 각자 집에서 나오기 시작해서 술래잡기, 비사치기, 딱지치기 등등 저녁 먹기 전까지 하루종일 놀았었다.

그러는 중 1990년대에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이사 간다고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분당이라는 곳을 들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는 경기도 일산 다음으로 제2의 신도시로 지정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오그 막길, 내리막길이 없어서 다니기 편하다고 들었었다. 동네 친구가 분당 신도시로 이사 간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 보다는 친한 친구가 이사 간다는 서움함이 더 컸었다.

예전에 분당 사는 사람들에게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분당에 산다고 했다. 분당이 성남시의 지역구였지만 분당은 성남하고 다르다고 생각하는 시기도 있었다. 선거철만 되면 분당을 성남시에서 분리시켜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이 항상 나왔었지만,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친구집에 놀러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분당에 가보니 모든 도로가 반듯했고 평지였다. 오르막길 내리막길도 없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어도 잘 산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에서 산을 가로지르는 대원터널을 이용하면 분당까지 15분 정도 걸렸었다.

비록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터널만 지나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수많은 아파트가 세워져 있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서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을 받았었다.


상대원에 살고 있으면 이곳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지역이었다. 주거 환경 때문에 전세 및 집 값이 다른 지역보다 저렴했지만, 서울 강남에 30분 만에 갈 수 있는 이점과, 다양한 대중교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원 밑에 있는 단대오거리에서 지하철 8호선을 타면 서울 잠실까지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간다면 이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았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성남은 본격적으로 도시 정비사업에 들어가게 된다. 지하철 8호선이 생기기 시작하며, 교통적으로도 접근이 용이하도록 다양한 도로들이 정비 및 새로 생기기 시작했다. 지하철 8호선이 생기기 전에는 하천이 있었으며, 하천에는 쓰레기 반, 물 반이었다. 어릴 적에는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했었다.


하천이 흐르던 곳은 현재 지하철 8호선 노선이 되었다. 저곳에서 물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출처 : 성남 다이어리 블로그


성남시 상대원2동에는 초등학교가 1곳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국민학교였으나, 고학년으로 가면서 학교 이름이 대원 초등학교로 변경이 됐다. 상대원에 거주하는 인원이 많은 만큼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또한 많았었다. 1반에 학생번호가 55번까지 있었다. 12반 까지 있었으며, 학년이 6학년까지였으니, 전교생이 대략 4000명쯤 되는 큰 학교였다. 재학생수는 많았지만 건물은 그 숫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초등학교 때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대원 초등학교에는 항상 학생들로 바글바글 했으며, 학교 앞에는 문방구점이 많았다. 그 앞에서 불량식품도 먹고, 조그마한 게임기 앉아서 게임도 했었다.

스마트폰도 아닌 핸드폰도 없었던 시기여서, 학교에 가면 자동적으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일과였다. 초등학교에서는 노는 거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었다. 현재 대원초등학교는 재개발로 인해서 폐쇄가 된 상태이다. 상대원 2동 재개발은 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빼곡한 주택사이에 대원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30년 전에도 있었던 생각하는 동상은 현재까지도  그 자리에 있었다. 30년 전에 매일 봤었던 동상을 다시금 보는 느낌은 옛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상대원 2동의 모든 것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대원초등학교만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평생을 살아오다가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무작정 떠났던 유학으로 인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고, 호주에 정착하면서 옛 동네 상대원은 필자의 기억 속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머나먼 타향살이를 하면 자연스럽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간다. 가까이에 있으면서 안 가는 거하고, 멀이 있어서 못 가는 거하고는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 어릴 적에 놀던 골목길은 어린이한테는 크게 느껴졌었지만, 성인이 된 후 그곳을 다시 가면 모든 것은 예전과 동일했지만 ' 이렇게 골목길이 좁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그대로이지만 나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했는지도 모르고 지내왔던 어린이가 성인이 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고향을 다시금 방문해서 옛집과 놀이터, 어린 시절을 느낄 수 있어서 아쉬움 속에서도 작은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유년시절, 추억, 상대원 2동은 역사의 일부분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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