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이 10억의 값을 할 때까지
Sigrid 시그리드
고대 노르드어 Sigríðr에서 왔다.
sigr는 승리를 뜻하고, fríðr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시그리드"라는 이름은 북유럽 지역의 여성 이름이라 합니다. 속 뜻을 찾아보니 아름다운 승리로 풀이됩니다. 여러 애칭이 있는데요. Siri(시리), Sigga, Sig, Sigi 등 다양합니다.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스타벅스 상품권을 보상으로 한 <닉네임 공모전> 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열 분 정도 응모를 해 주셨고 그 중 최종 낙찰된 이름이 '드로우맘' 이였지요. 도전하는 엄마의 이미지를 담은, 꿈을 그려나가는 맘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 싶어 그간 애정 어리게 사용해 왔습니다.
드로우맘 명칭으로 브런치스토리 작가 등록을 하였고, 크몽에는 명언 전자책을 시범 삼아 출판해 보았습니다. 동일 명의로 인스타그램도 시작해 보았고요.
새로운 브랜뉴 기분으로 닉네임을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간단하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더군요. 다시 블로그 초창기 상황으로 리셋된 것 같았어요.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으면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그런것 말입니다.
몇 가지 떠올랐지만, 탐탁지 않아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며칠 후면 8월도 다 가는구나 싶던 찰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뭐 하냐며, 시간 되면 지금 만나자 합니다. 안될 거 없기에 그러자, 하고 외출 준비를 마치고 바로 집을 나섰습니다. 성수역 2번 출구에서 5분 거리면 도착하는 코끼리 베이글. 특이한 이름을 가진 베이글 맛집이지 말입니다. 닉네임 변경을 생각하다, 코끼리 집까지 왔네요.
어찌되었건. 최근 들어 지금의 닉네임을 바꾸고 싶어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맘.이라는 미사어구 때문인데요. 아이 엄마 이미지의 페르소나로 굳혀져가는 듯해서, 한번 떼어내보자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그 어느 누가 신경 쓰랴, 싶지만 말입니다.
코기리 집에서 만난 캐나다 교포이자 서울에서 남편 사업을 돕고 있는 친구. 여느 때와 같은 수수한 차림으로 먼저 도착해 있네요. 이른 아침 번개로 만난 것이 반갑고도 즐거운 두 여자입니다.
그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근황 토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해결되지 못한 닉네임도 그중 하나였고요. 외국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친구에게 유니크한 영어 이름이나 어울릴만한 단어로 추천 좀 해달라, 조르듯 얘기했네요. 그랬더니 종이 있냐 묻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꺼낸 종이 위에 떠오르는 이름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미아 Mia, 소일 Soil, 레이 Ray를 시작으로 토토, 두두, 두둥, 둔둔, 든든, 핑코, 차차... 미궁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말을 멈춘 친구. 말할까 말까 하는, 초조한 망설임의 눈빛 감지했지 말입니다.
'뭔데? 뭔데 그래. 빨리 말해보시오.' 다그쳐봅니다. 아니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치네요. 어랏. 더 궁금해집니다. 계속해 추궁하듯 물었고 결국 실토하며 말하기 시작하는 캐나다-한국 사람의 이야기인즉. 본인의 한국 이름을 영어 이름으로 바꿔볼까 하고 맘에 들어 적어둔 글이 있다는 겁니다. 이름을 적어둘 정도라니, 빨리 말해보라 다그치니 핸드폰에 메모해둔 이름을 말합니다.
시. 그. 리. 드.
이름을 듣는데, 아! 전율이... 사실 전율까지는 아니지만, 이름 듣자마자 맘에 쏙 듦은 속일 수가 없더군요. 이름이 특이하고도 뭔가 강하고 꽤나 멋지게 들렸습니다.
'헬렌(이전 회사에서 사용하던 영어 이름) 한테 잘 어울리긴 하다. 에잇, 어쩔 수 없네. 좋아. 이 이름 팔께. 지금말고 이름값하는 2년후에 줘. 보너스도 같이주기다.'
무더운 여름날 코끼리 베이글 먹으며, 10만 원에 산 이름 : 시그리드 입니다. 생애 처음으로, 닉네임을. 이름을 사 왔지 말입니다. 북유럽 여자 이름이자, 아름다운 승리라는 깊은 의미도 담고 있다 하네요. 설렙니다. 왠지 좋은 일들이 가득 펼쳐질 것만 그런 느낌적인 느낌. 듭니다.
닉네임 고민도 끝났고, 이제는 활용하고 사용할 일만 남았습니다. 아직 입에 붙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매일 같이 부르고 쓰다 보면 곧 적응되리라 봅니다.
시그리드의 날들이 펼쳐질 것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들며 설레어옵니다. 그럼 이제, 1년 동안 꾸준함을 뒷받침해 준 드로우맘에 고마움을 실어 보내며, 앞으로는 더욱 전진하는 '시그리드'로 성장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