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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Sep 23. 2024

"모르겠어요"라는 말

오늘의 일기 : 그냥 끄적임입니다

 모르겠습니다. 과장님이  답변서를 작성해 보고한 나에게 "왜 이런 질문이 들어왔어요?"라고 물었을 때의 내 답변이다. 바로 사무관님이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서 작년에 발표한 대책에 이러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질문한 것 같다고 설명하셨다. 부끄러웠다. 나는 왜 "알아보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당차게 내뱉었을까. 잠깐 합리화를 해봤다. 작년에 내가 없었는데 당연히 모르지. 난 사실대로 말한 거야!

 진짜 부끄러웠다.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의 무능을 상징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연금도 박살 났고 그다지 사명감이 있지도 않고 보람도 없으니 그냥 월급만큼만 일하자고 늘 다짐했었다. 그럼에도 내가 무능하게 보이는 것은 아직 참지 못하겠는가 보다. 이것도 공직사회에서는 버려야 할 자존심인지 모르겠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알아보겠습니다"를 되뇌었다. 무서운 상급자였으면 알아보겠습니다라는 말에도 담당자가 왜 즉시 대답을 못하냐고 했을 텐데 "모르겠습니다"라니. 너그러운 과장님과 일해서 천만다행이다.

 일한 지 5년 차가 다되어 간다. 짬이 차 가는 게 실감이 된다. 승진도 못하고 짬만 차가니 뭔가 리프레시되는 것도 없고 회사가 늘 따분하다. 그냥 하루하루 일을 무마하며 살면 될 뿐이라는 심정으로 출근을 하다 보니 뭔가 더 알아보고 해 보려는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지 오래다. 오늘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내뱉고 잠깐 내가 어떻게 회사를 다니는지 자각했다. 적어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는 않게, 내 알량한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 업무에 대해서는 고민해보기도 하고 찾아보는 미세한 열정이라도 끄집어내 봐야겠다. 오늘의 자각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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