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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Oct 11. 2024

연가는 사치인가

오늘의 일기 : 그냥 끄적임입니다

 좋은 시절 끝났다. 연가 하루 쓰는 것도 눈치가 보여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입사 초를 거쳐, 매달 하루 쉬는 것은 기본 인권으로 여기던 호시절을 거쳐, 또다시 눈칫밥... 아니, 연가 불가능 시대가 돌아왔다.


 후... 부서에 사람이 빠지면 바로바로 채워주는 것이 기본 인사 시스템이지 않나 싶지만, 내가 '인사조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나 보다. 사람은 빠졌고, 나만 남았다. 높으신 분 행사를 하라고 해서 '당연히' 휴일을 반납하고 그놈의 '의전'을 챙기느라 허덕였는데, 이제는 홀로 대책보고서를 쓰라고 한다. 나는 사무관도 아니고 주무관인데. 누구 보조만 하다 홀로 남다 보니 누가 봐도 엉성하고 속도가 안 붙고, 그러다 보니 과장님이 거의 사무관 겸업 중이시다. "사무관이 없어 모든 일이 스톱이다." 안 듣고 싶어도 들려버리는 과장님의 통화소리에 능력이 없는 나라서 참 죄송스러우면서도 울컥울컥 울화가 치민다. 자고로 사업이 늘면 사람도 같이 늘어야 마땅한데, 사업만 늘고 사람은 그대로니 곳곳에 빈자리란다. 그래서 내 옆자리는 언제 채워줄지 모른다고 한다. 덕분에 예정된 개인 일정들은 다 어그러졌고, 어디 눈치 보여서 연가를 못쓰는 게 아니라, 연가 쓰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참 다들 힘든 시기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직원들 배려 없는 무리한 업무 지시와 차출들이 떨어지고, 또 무슨 기사,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기와 대기와 대기다 보니, 참 이 직업이 별로구나 싶다가도 밖은 정글, 야생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이 철밥통이 내 인생 최선이구나 싶기도 하다. 능력 있는 직원들은 이직 준비를 많이 한다고 하던데, 게을러빠진 나는 바쁘면 바쁘다는 핑계로, 안락하면 그 안락함에 빠져 불평만 이렇게 늘어놓고 있다. 휴직이나 하고 싶다. 


 그동안 좋다가 연가는커녕 이제 주말에도 출근해야 할 판이니 짜증이 나다 못해 편두통이 도진다. 이렇게 소소한 돈 버는데도 마음 불편히 일터에 나가야 한다니! 취준 시절에 나는 뭐라도 합격만 하면 낙원으로 갈 줄만 알았다. 그 목줄(공무원증, 사원증)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게 진짜 목줄이 되어 나를 옥죄일 줄은 몰랐다. 이번에 신규로 오신 주무관님께 어서 도망치라고 조언(?)을 하고 있지만, 전혀 귀등으로도 안 들릴걸 안다. 내가 그랬으니깐. 이런 갑갑한 조직에서 어떻게 10년, 20년, 정년을 버티는 건지. 존경을 넘어서 기이하다. 11월은 공휴일도 없는데 참 유감스럽다. 아휴, 나에게 정녕 연가란 사치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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