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없는 날

막히는 차 안에서

by 노사임당

편의점 안으로 초등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들어온다. 갖고 싶은 건 많겠지만 가져온 건 천 원짜리 두 장. 계산대 맞은편, 사탕과 장난감이 같이 들어있는 제품이 놓인 매대 앞에 선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던 아이는 이내 물건을 찾았는지 표정이 밝다. 유행하는 뱃지지만 랜덤이라 원하는 걸 갖기 어렵다. 두 번이나 원하던 '폼폼푸린'이 아니어서 실망한 참이었다. 계산대에 물건을 올린다. 가격은 이미 알고 있다. 2천 원을 계산대에 올리며 500원을 받으려 손바닥을 펼쳐놓는다. 예쁜 봉지 속 무슨 뱃지가 들었을까 궁금해 어서 열어보고 싶다.


"띵똥"


편의점 문이 열리고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익숙한 걸음으로 계산대로 향한다. 손을 올리며 약간은 큰소리로 말한다.


"저기, 말보로 비스타 포레스트요"


계산원이 담배를 내어준다. 남자는 카드를 넘겨주려 손을 뻗는다. 계산원으로 보이는 남자, 건네는 카드를 받았지만 다음 행동이 없다.


"아저씨, 계산요."

카드를 건네받은 계산원은 멀뚱멀뚱 남자를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오늘 계산 없는 날입니다"


"예?"


"계산 없는 날이라서 계산을 못 해드려요. 죄송합니다."


"아, 무슨 소리고! 아저씨 나 바쁘니까 장난치지 말고 빨리 계산해 주쇼"


"오늘 전국에 계산원들이 계산을 못 하는 날이라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좋게 넘어갈라 했더니 이 아저씨가 지금 내하고 뭐 하자는 거야? 어? 장난해?"


"띵똥"


나이가 지긋한 단골 할아버지가 들어오신다. 집이 가까워 자주 방문하는 손자들에게 주려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길이었다. 막대 아이스크림 7개를 손에 들고 카운터로 향한다. 물건을 내려놓으며 계산원에게 찍으라는 시늉과 함께 만원을 꺼낸다.


"사장님, 얼마예요?"

할아버지 손님이 가격을 물으며 계산을 유도한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오늘 전국 계산원의 '계산 없는 날' 선포로 편의점뿐 아니라 모든 물품 판매소 계산원이 계산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네요. 아이스크림 녹는데 계산해주면 안 될까?"

뭔가 다른 상황을 바라며 잠시 지켜보던 남자가 다시 말을 꺼낸다.


"뭔 헛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이 양반아! 미친놈 아니야? 계산을 하기 싫으면 일을 관두든가. 사장이야? 사장이면 문을 닫든가! 물건은 주면서 계산은 안 해주면 그냥 가져가라고? 그러면 되는 거네?"


"그러시면 나가자마자 경찰에 신고를 하죠."


"아오 c, 별 미친 돌아이 다 보겠네. 내 이 편의점 다신 오나 봐라"


담배남자가 나가려는 그때 뱃지를 사려던 초등생의 전화기로. 담배남자의 전화기로. 아이스크림 할아버지. 계산원의 전화기에도 일제히 문자가 뜬다.


행안부.


'금일 물품 판매소의 계산원들이 계산 없는 날이라는 이름으로 계산을 거부하는 일이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온 나라의 경제가 마비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통령님께서는 계산원이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선포하시면서.."


예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휴가입니다. 설이든 추석이든 관계없이 주 5일 근무입니다. 그러니 가족과 휴가를 가면 주말만 휴가이고 집에서 쉬면 주말 휴일이고 뭐 그렇습니다. 다행히 제가 쉬어도 주말 알바가 하던 대로 열심히 일 하고 있을 테고 전국의 계산원들도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을 겁니다. 막히는 차 안에서 다들 막바지 여름휴가에 차가 막히는구나 생각하다가 계산 없는 날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네요. 저마트, GU, Officeplus뿐만 아니라 서점 식당 모든 곳에 계산원이 계산을 안 하면 어떨까 잠시 공상해보았습니다. 그럼 대혼란이긴 하겠지만 키오스크 영업장은 장사가 오히려 너무 잘 되려나? 엉뚱한 상상 해봤네요. 차가 막히는 게 정신 건강에 이렇게 해롭습니다.

1년에 한 차례 택배 없는 날이 있지요? 주말도 휴일도 제대로 챙겨 쉬지 못하는 택배노동자. 육체노동을 쉴 자유를 응원하면서 바다구경도 하고 대도시에서 쇼핑도 좀 하며 쉬다 가겠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니 가뜩이나 어려운 글쓰기가 더욱 쉽지 않네요. 산만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