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My Name

무, 땡초, 팽이, 마늘..

by 노사임당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림 노사임당

학창 시절 감수성 넘치던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외우던 시는 몇 편 있었지요.

그중에서 아직도 선명한 기억 속 '김춘수의 꽃'이었습니다.





우리 슈퍼의 채소는 채소직원이 거래처와 바로 통화하여 물품을 납품받는 구조이다.

출근을 하니 오전에 있었다던 물품 주문 통화를 전해 듣게 되었다.


"이모, 바쁘시죠? 통화가능하세요?"

"어, 말해라. 괜찮다."

"양배추랑 가시오이하고 꽈리고추랑 주실래요?"

"뭐라고?"

"무랑 땡초도 있으면 주시고요."

잠시의 음소거.

일상적인 통화가 아님을 직감한 그녀는 상황 판단을 위해 탐문을 한다.

"니 지금 누구한테 전화했노?"

"야채이모 아니에요?"

역시다. 누군지도 모르고 전화를 한 것이다.

"니 내를 야채라고 해놨제?"

그제야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알게 된 채소직원은 눈치를 챈다.

"어! 어머, 오호호호 이모 미안해요. 발주 넣는다고 야채사장님한테 전화한다는 게 이모한테 했나 봐요."

평소에도 사람을 3,6,9로 뛰어엄 뛰어엄 보고 있어 감정이 따뜻하지는 않았던지라 느낀 점을 솔직히 얘기하는 그녀.

"그럴 줄 알았다. 이름은 어디 빼놓고! 야채가 뭐꼬?"

내가 착해서 참지. 어이구 싶다.

"미안해요 이모. 나중에 봬요. 오호홍"


1시에 출근을 하니 일거리를 푸짐하게 남겨두고 야채직원은 식사를 하겠다며 총총히 사라지고 채소언니가 어이없었던 통화사실을 알렸다.

채소직원이 우리 나이로 44살. 채소언니가 앞자리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인 법적나이로 59세. 채소동생은 15살 나이차이로 '이모'라고 호칭을 정해놓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전화기에는 '야채이모'로 저장이 되어있었던 거다. 발주를 넣으려고 통화를 누르면서 '야채'라고만 쳤더니 야채이모가 자동으로 떴고 확인도 없이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던 것일 게다.

통화사고 얘기를 듣고 비웃으며 한참을 깔깔거리다 '빵'충격이 전해졌다. 어? 나는 언니를 뭐라고 저장했더라? 헐. '과일언니'. 아 참. 바꾼다 바꾼다 한 게 이러고 있었구나. 아이고. 넘 욕할 거 없다더니. "

미안해요, 언니. 오늘부로 우리 1일 해요. 앞으로 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