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의 숨, 그리고 소리

나는 그를 바라볼 뿐 읽을 수는 없었다

by 노사임당

택배가 왔다. 선물이다.



내 돈 주고 내 수고를 더해서 산 물건들이 배달 노동자의 손에 수고로이 전해져 집으로 온다. 나는 그것을 잠깐 잊고, 집 앞에 고이(?) 볼링공처럼 던져진 상자 혹은 비닐을 반가운 마음에 든다. 선물이 도착했다. 게다가 비닐 혹은 상자 안에 든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봉투 혹은 상자를 기꺼운 마음으로 연다. 붙여진 테이프의 배를 날카로운 칼로 정확하게 가르며 상상한다. 누가 무엇을 보냈을까.


얇다. 내 돈 주고 내 수고를 들여 산 물건이 아님에도 나는 이 비닐 속에 든 것이 무언지 대번에 알겠다. 선물이다. 내게로 온 누군가의 선물. 보통 1년에 한 번도 오지 않는 타인이 보낸 선물이다.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든다. 망설임을 알기 때문이다. 보낸 이의 마음과 정성과 긴장을 알 것만 같다. 나는 떨며 봉투의 배를 가른다. 그녀가 보낸 그것이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천장에 모였다가 백만 년 만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 내가 뱉은 숨이 떨치고 떨치고 떨친 후 몇 개의 투명한 물로 변한 채 매달려있다 내게로 왔다.


그녀의 책이 도착했다. 오랫동안 뱉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뱉지 못한 채 고이 모았던 글들을 모아 그녀가 책을 냈다. 그녀의 비밀 곳간에 고이 모여 있던 글들이 곳간 출판사를 거쳐 내 손에까지 왔다. 곳간을 열었다. 그녀가 언질을 준 적은 없으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그저 마음을 먹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곳간은 소문으로만 무성한 만석꾼의 그것이었다. 그곳에는 만 년간 배부를 수 있는 글들이 쌓이고 쌓여 발에 차인다는 풍설이 있었다. 그 풍설은 물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를 아는 사람만이 저도 모르게 들은 듯 알았다. 그녀는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써야 하는 사람이니까.



곳간 출판사의 작은 시리즈 <맨손문고> 두 번째 책이다. 김대성 편집자이자 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맨손문고는 새로운 작가, 새로운 이야기를 '미루지 않고 곧장' 내어놓'았다. 이러한 출판 강령을 드러내듯 내용과 무관한 가벼움과 크기다. 그가 말한 속도와 책의 외모는 닮았다.


<난다 출판사>에서 낸 계절 책을 좋아한다, 특히 유희경의 9월을. 난다의 아홉 번째 시의 적절 총서다. 그 책은 견본품처럼 47페이지짜리 비매품을 책방에 뿌렸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시리즈를 공짜라는 이유와 <좋은 생각> 같은 풍채에 날름 집어왔었다. 그 책을 사랑한다. 실은 그녀의 그 원본 책 보다 사랑한다.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그랬다. 그녀의 <나와 오기> 속 진액만을 뽑아낸 것처럼 진하고 진해서다. 그녀의 여름을 사랑했다. 오기를 사랑했다.


이지원 작가의 <사각사각>은 그래서 좋다. 작고 소중한 크기의 책 속에 진액만 뽑았을 것을 아니까. 그녀가 한 혼잣말들에서 김대성 편집자가 좋은 글들만 집게로 뽑았을 걸 아니까. 그녀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책까지 안내해 놓았을 걸 아니까 그렇다.


이 글은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이 고마워 그 마음을 옮기기만 한 감상은 아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의 글을. 그러므로 받자마자 아껴서 읽었음에도 저녁과 밤과 새벽을 이어 붙여 읽어버린 책의 독후감은 첨부하지 않겠다. 그건 그녀에 대한 나의 연애편지일 테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녀의 책이 오늘 세상과 만날 거라는 사실, 그 사실 하나다.


이지원 작가의 글은 공저 <살림 문학>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