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감상일지:『당신 인생의 이야기』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본능이자 섭리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모든 일련의 데이터가 이를 증빙한다. TV 속 조막만한 얼굴을 가진 광고 모델. 미술관 가장 안쪽에 놓인 고가의 작품. 공연장을 뛰어다니는 발레리나. 음악 선율. 외의 모든 미학적 요소들이 우리를 아름다움이란 기로에 집어넣는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우리는 아름다움에 기민할 수밖에 없다. 그 기민함을 바탕으로 남을 평가내리고 잣대질하고 감동받고 기뻐한다. 아름다움을 쫓는 본능이란 기저 아래에 깔린 眞본능이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에게,
아름다움을 모르는 인간이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中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의 스토리 속 세상은 그럴 기회에 대해 묻는다. 소설 속 세상에는 칼리아그노시아란 기술이 존재한다. 이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기능’을 비활성화한다. 해당 기술을 작동시키면 인간은 얼굴을 구별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피부가 매끄러운 정도, 비대칭 정도, 비율의 정도를 계산하지 못하게 된다. 말 그대로 사회 속 아름다움이 무용해지는 기술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 사람들은 이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권리의 박탈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이것이 자유의 보장이라 말한다.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조 수단으로 칼리아그노시아를 보아주십시오.
이 조치는 당신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표면을 무시하고 깊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상반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논쟁한다. 칼리아그노시아 의무화에 대하여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증거를 내민다. 능력주의, 마약... 다양한 것들로 예를 들어가며 논리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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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름다움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모욕적이야.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나? 그러기는커녕 경이감을 느끼고 감탄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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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특징입니다.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그것은 수동적 노력에 불과합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칼리는 당신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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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아름다움이란 마약적 자극에 노출돼왔다. 바로 ‘초자극’. 미적 수용기는 진화로 얻은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자극을 받고 있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우리 삶을 파괴한다.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흥미로운 의견들. 그러나 공감되고 흥미로울 뿐 마음을 잡아챈 문장은 없었다. 능력주의니 마약이니 지성인들의 의견일 뿐이었다. 누군가 사랑을 토로하며 내뱉은 문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사랑을 깨달은 소녀는 사랑이란 칼리와 닮았다고 털어놨다.
사랑이란 어딘가 칼리를 닮았다는 얘기 말예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이 정말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개럿에 대해 아직 감정이 남아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개럿을 보지는 않는 거겠죠.
귀여우면서도 발칙한 문장이었다. 사랑에 빠진 이후라면 소위 ‘콩깍지’가 작동하기에, 우리가 타인에게 들이미는 아름다움의 잣대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해지며 말랑해진다는 근거라니. 아름다움이란 객관적 미의 지표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 없단 의견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 집단의 대표, 정치인, 교장들의 뛰어난 언변보다 강력한 한 방이었다.
날 웃음 짓게 만든 소녀의 이름은 타메라. 칼리를 사용한 채로 자라다가, 돌연 칼리를 껐다. 그 뒤로 세상 속 아름다움을 자각할 수 있게 됐다. 개럿은 그녀가 칼리를 사용하고 있을 때 만났던 남자 친구다. 당시에는 개럿의 외모를 몰랐으나 칼리를 끈 이후 알게 되었다. 타메라는 유난히 아름다우나 개럿은 그렇지 않음을. 그녀와 소위 ‘격’이 다름을 알게 됐다. 그러나 타메라는 개의치 않았다. 여전히 그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귀여우면서도 발칙한 문장은 이로부터 비롯됐다.
그러니 난 그녀에게 묻고 싶어졌다. 만약 칼리가 꺼진 상태에서 개럿을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현재와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씌워진 콩깍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까? 그런 사랑의 과정에 도달해도 ‘이 사람이 나에 대해 흥미를 느낀 건지, 나의 외형에 대해 흥미를 느낀 건지’란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을까?
외양을 은폐한 채로 사랑이 발화될 수 있나?
은폐한 채로 진행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인가?
그렇다면, 외모로부터 촉발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그런 사랑의 기회를 더 많이 잡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권력인가?
현대 사회엔 칼리가 없다. 우리는 평생 남들의 외모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미 자리 잡은 아름다움이란 가치가 가져온 편견과 아등바등 부대끼며 지내야 한다. 그런 사회에 질문을 던지기 좋은 작품이었다. 아름다움이란 가치가 어느 정도로 우리의 선택과 사랑을 저울질해도 괜찮은가에 대한 고뇌. 아름다움이란 가치가 세상을 어느 정도로 잠식했는가를 톺아볼 수 있는 기회. 그런 기회를 준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