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의 짧은 가르침
자정이 넘어가기 4분 전. 딸에게 시간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시계를 가져와 정시로부터 몇 분 전인지 맞추기에 대한 계속된 질문을 며칠간 이어왔다. 귀찮아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해주는 자세가 마냥 대견하다. 마찬가지로 질문에 대한 아이의 대답을 진솔한 자세로 경청해주곤 한다. 이렇게 나는 가르치고 딸이 이해하고 깨닫는 과정을 반복하며 아주 충실하게 잘하는 보편적 기준의 아빠라고 내향성 오만을 부리고 있었다.
여느 집안 할머니와 손녀의 서사를 들여다보면 열이면 열 흔한 스토리가 담겨있듯 귀한 손주에 대한 과잉? 대응으로 약간 버릇없는 태도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 대치현상이 가끔 목격이 되는 가운데 딸아이에게 자성 없는 다그침을 주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단둘이 하던 중 뜬금없이 얘기를 꺼내는 딸.
“아빠, 어제는 하루 종일 짜증을 안 내보려고 노력했더니 성공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머니가 속상해하시니까. “
지금껏 무엇을 딸에게 가르치며 깨달아주길 바라고 있었던가? 세월을 보내고 그만큼 현명함을 비교적 많이 담고 있다 생각하며 기나긴 사설들을 늘어놓으며 권위를 내세우는 꼰대들을 보고, 나는 저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자부하던 내 모습이 거실 저편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무수히 많은 가르침과 현재의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팔 할의 영향을 주셨던 나의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그때의 존경심을 갖고 대한 적이 언제였던가? 아들이 어머니의 가치관에 대해 성장을 통한 객관적 판단력이 발달하면서 '전능하고 옳은 존재'가 '실수투성이의 부족한 존재'로 재인식되고 그 가치관으로부터 내 것을 분리시켜 주도적인 판단과 선택을 한다.
본인은 절대 남들 욕을 하면서 산 적 없다고 하시지만 사실 남의 집 며느리 험담은 종종 자주 들어왔고, 그런 모습들에 대한 어느 정도 절제된 비판의 말을 들으시면 곧장 듣기 싫다며 역정을 내시기도 하는 평범한 한 인간에 대해 사랑하지만 원망스럽고, 존경하지만 비판하고 싶은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 그런 인지의 전환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며 그런 과정들을 통해 스스로 부모가 되었고 어머니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임에 대한 시도조차 까맣게 잊고 살아오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관계설정도 없이 어쩌면 어머니에 대해 생성되었던 냉철한 판단에 의한 날 선 감정만이 앞서고 자신도 모르게 싸늘한 말투를 내뱉는 못된 '미운 우리 새끼'로 살고 있었다. 초1 딸의 귀여운 단언이 아버지이며 아들인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다음 날 점심시간 즈음 뜬금없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별 시답지 않은 날씨 얘기를 꺼내 들고 괜한 핀잔의 말을 듣는 이상 행동을 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어 별다른 변화가 오진 않을 것이나 평소 하지 않던 쓸데없는 표현들이 티끌이 모이듯 하루하루 쌓여갈 것이고 그런 단어들이 딸아이와의 관계에도 보이지 않게 어떤 작용을 할 것만 같다. 매일 딸아이와 사소한 대화를 하고 지켜질지 모를 반성의 마음들이 쌓여가며 별일 없이 오늘도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