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싱어의 저서에 나온 이야기다.
반려견을 위한 전자 목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목줄이나 울타리와는 다르다.
개에게 전류가 흐르는 목걸이를 씌우고
개가 경계를 넘는 순간 목걸이에 전류가 흐르는 식이다.
충분히 불쾌하여 따끔한 정도로.
그럼 개는 그 경계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고통이 몸에 각인되어
두려움이 개를 컨트롤하는 것이다.
비로소 개를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에 가둔 셈이다.
이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는데?
라고 말하고 싶다면,
끌까지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태어날 때의 우리를 기억해 보라
당시 우리의 의식은 하얀 도화지와 같았다.
그랬던 우리는 크면서 한계를 만들어낸다.
유년기에는 주로 부모에 의해서다.
"이거 먹으면 안 돼"
"이거 하면 안 돼" 등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 둘 경험들이 늘어가고
어떤 것에는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주하기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피하려 애를 쓴다.
그렇지만 피한다는 것은 착각일 뿐
실상은 마음 한편에 고이 저장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저장된 파편들은
전자 목줄처럼 우리를 자극한다.
몸에 각인된 두려움이 개를 조종하는 것처럼
자동차사고 이후 운전에 트라우마를 가진 한 남성이 있다고 가정하자.
사고 이후 이 남성은 운전을 피해왔다.
어느 날 남자는 상사와 출장 갈 일이 생겼고
그 출장지에서 운전을 할지도 모른다고 전해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한 남자는 괴로워한다.
운전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빨리 뛰며 초조해진다.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여기서 남자를 힘들게 하는 건
운전인가?
운전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인가?
남자를 괴롭게 한 것은 실제 사건이 아닌 '생각'이다.
이 차이를 인지하는 지점이 시작점이다.
다시 개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개에게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경계가 있다.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자유롭다 착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경계를 피하기 위해 너무나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희소식이 있다면 이 마음의 감옥은 탈출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저항을 느끼는 지점이
당신이 갇힌 마음속 감옥의 존재를 느끼는 때이다.
위에서 언급한 시작 지점이 기억나는가?
바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실제 사건이 아닌 '생각'이라는 사실말이다.
만일 개가 경계 근처로 점점 다가가면
경계에 가까이 갈수록 두려움이 커질 것이고
실제 경계에 닿는 순간
두려움은 물리적 고통으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두 걸음 더 나아간다면?
물리적 고통은 사라진다.
처음에는 의아해할지도 모르지만
자유를 위해 필요한것이 단 두걸음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내가 마주해야 할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감정일뿐이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의 실체를 바로 보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 감정은 잠시 절정에 달아 치솟아오를지 모르겠지만
이내 힘을 잃고 시들어간다.
그렇게 당신을 두렵게 만든 감정을 그저 흘려보내라
몇 번이고 익숙해질 때까지
그럼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이미 그 경계 너머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너머는 자유이며 한계 없음이다.
당신은 이를 얻기 위해 단 2가지가 필요하다.
경계에 다가설 용기와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