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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21. 2024

우울한 도시에서 운명 개척하기

「사랑은 낙엽을 타고」, 2023


재미있는 영화를 만났다.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는 따로 있었지만, 도저히 상영 시간표가 맞지 않아 다른 영화를 택했다. 그게 바로 '사랑은 낙엽을 타고'였다. 어쩌면, 나도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나도 모르는 운명을 개척한 게 아닐까? 


202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2024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때는, 오직 안사의 라디오에서 우크라이나 소식이 흘러나올 때뿐이었다. 내가 시간의 흐름에 무던한 건지... 영화가 너무나도 2000년 초반의 풍경을 담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그래도 이런 점이 이 영화의 앤틱 한 분위기를 살려준다!


제목도, 포스터도 왠지 마음을 들뜨게 해 준다. 사랑과 낭만이 문득 떠오르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짙어진 감정은 '우울'과 '행복'의 공존이다. 왜일까? 이유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하나, 이 영화를 뜯어보도록 하겠다.


안사 와 홀라파는 모두 노동자다. 안사는 슈퍼마켓 물류 정리 일을 하고, 홀라파는 공장에서 압축기를 다룬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문제점이 조금씩 있다. 안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식품들을 필요한 손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본인이 챙기기도 한다. 홀라파는 알코올 중독이다. 중독 수준을 넘어서서 일하는 중에도 술을 마신다. 결국 이 둘은 이 문제로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안사와 훌라파가 만나는 건 안사의 두 번째 직장인 아메리칸 펍에서였다. 펍 사장이 마약으로 인해 경찰에 잡혀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또 잃어버리고 만 안사에게, 홀라파는 데이트를 신청한다. 우울한 다큐에서 로맨스 영화로 장르가 바뀐다. 역시 데이트의 기본은 카페! 이 둘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홀라파는 다시 다큐로 바꾸려는 듯 커피에 휴대하던 술을 섞는다. 일단 '입맛이 독특하구나...' 하고 상황을 애써 넘겨본다. 이 둘의 데이트는 성공적이었으니까.


데이트가 성공적이었지만, 홀라파에게는 위기가 닥친다. 안사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잊어버렸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 가 아니라 쪽지는 바람을 타고였다. 이름도, 사는 곳도 그 어떤 것도 모르는데 홀라파에게 말 그대로 사랑이 낙엽을 타고 떠나버렸다. 홀라파는 결국 가장 고전적인 방법을 택한다. 바로 데이트의 마지막 장소였던 영화관 앞에서 계속 기다리기!


홀라파의 간절함은 알아준 건지 끝내 안사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홀라파는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 안사의 집에 초대받은 후에도 식전주 칭찬, 그리고 챙겨 온 술 몰래 마시기... 뭐든지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안사의 아버지와 오빠는 술로 인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결국 둘은 헤어졌다.


홀라파의 술은 계속해서 홀라파를 위기에 빠트렸다. 첫 직장에서도, 두 번째 직장에서도 음주로 인해 해고당했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술 때문에 헤어졌다. 결국 금주를 결심한다. 그리고 성공한다. 온갖 술을 과감하게 버리는 그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 말할 수밖에 없다. 금주에 성공한 홀라파가 처음으로 연락한 곳은 '안사'다.


이렇게 둘이 행복하게 만났다면 참 좋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울도 짙어지는 영화다. 홀라파가 기차에 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위기-극복의 순환을 타는 영화였기에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딱 들어맞았다. 위기는 또 찾아오고 말았다. 그래도 역시 영화의 결말은 극복이다. 금주로 인해 건강이 좋아진 건지, 홀라파는 꽤나 금방 깨어나 퇴원했다. 그리고 그 둘이 얘기하며 멀어지고, 영화가 끝난다.


안사와 홀라파의 얘기도 재밌지만, 영화의 부수적인 요소들이 참 좋다. 홀라파의 친구와 안사의 친구의 연애는 과연 시작될 수 있을지, 영화관 데이트가 끝나고 브레송 등 영화계의 거장들에 대한 찬사와 같은. 그저 일상 같지만 좋다. 우울한 도시에 오로지 생동감이 넘치는 부분이기에.


헬싱키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헬싱키가 궁금해질 것이다. 푸른빛과 흰 빛을 띠는 그곳에 왠지 정감이 생겼나 보다.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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